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영미 May 31. 2023

비오고 난 후

귀촌일기 21


어제는 종일 비가 내렸다.

모내기가 한창인 요즘 정말 반가운 비가 아닐 수 없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우리는 고구마줄기를 사다가

마늘과 양파를 캐낸 자리에 두둑을 만들고 

고구마줄기를 심었다.

시기적절하게 잘 심은 것 같아 뿌듯함까지 밀려왔다.

올해 고구마는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멧돼지만 오기 않기를~~

작년 저장창고 위쪽으로는 잡초가 무성해 발길이 뜸한 곳이다.

올해 초 남편은 마사를 두 차 들여서

꺼진 부분은 채우고 야문땅 흙은 마사와 왕겨를 섞어 텃밭을 만들었다.

창고 뒷쪽으로 서 있는벚나무 아래로는 판석을 깔고  쉼터를 만들었다

그곳에 테이블과 의자를 갖다 놓으니 딱 안성맞춤이었다.

남편은 그곳에 텃밭을 만들면서 

"00엄마 일루와 봐~" 하며 몇 번을 불러댔는지 모른다.

"여기에 오이를 심으면 좋겠지? 아니 토마토를 심을까?"

"지지대는 어디에 설치할까?"

"대파는 어디에 심을래?"

"고추도 여기다 심어라"

"아래 텃밭에까지 고추 따러 다니기 싫다"

해 싸면서  서너 평 되는 창고 지붕 작은 텃밭에 

오만 작물을 다 심을 것처럼 난리였다.

내가 보기에는 키가 낮은 상추나 대파 정도 심고 주변으로 꽃을  

심어주면 좋겠구만~

어쨌든 남편은 이 작은 텃밭만큼은 본인 손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고 가꾸었다.

상추 모종을 옮겨심을  때도 남편이 했고

따먹는 풋고추 모종, 가지 모종, 토마토, 토란 구근까지

모두 남편 손을 거쳐 이 텃밭에 심어졌다.


남편은 다른 텃밭에 물 주기는 게을러도

이 창고옥상 텃밭엔 매일같이 물을 뿌려주며 "쑥쑥 자라거라 기특한 것들"하며

이곳 작물들을  유난히 애정을 쏟으며 챙긴것 같았다.

매일 물을 뿌리다 보니 창고 지붕 처마 끝에서  똑. 똑.  물이 떨어져 

아래 땅이 패여 작은 돌까지 물받침으로 줄을 세워놨다.

매일 아침 물은 줘야 되겠고 귀찮고 싫증이 났는지

어느 날은 수관 시설을 해 놓고

"00엄마 일루와 봐~" 또 불러댔다.

" 멋지지?" 

"아이디어 괜찮지 않나?"


저녁을 먹고 마당을 산책할 때 이 텃밭은  필수 산책코스가 되었다.

동네 이웃이 마실왔을 때  차를 마시는 공간도 

이 텃밭  벚나무 아래 쉼터에서 마셔야 한다.

 비가 그친 후 오늘 아침 

남편은 제일 먼저 이 텃밭에 올라갔겠지?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아래 텃밭 농막에서 양파 세 개 꺼내고

쑥 자라있는 청경채 몇 뿌리 뽑아 집으로 올라왔다.

수돗가에서 정말 낯선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오 ~~ 웬일?'

'드디어 남편이 변하고 있는 건가?'

'스스로 상추를 다 씻다니~~'


남편은 바구니 가득 상추를 뜯어와 씻고 있었다.

창고 위 텃밭에 상추가 비를 맞아 축축 늘어져 있어 뜯어왔단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다.

남편이 씻어놓은 상추를 단도리해 냉장고에 넣으려고 들여다보니

에고고~

연약한 상추잎들이 종일 비에 맞아  상처가 나고 멍이? 들었다.

아까워도 쌈을 해먹기 좀 그렇다.

나 같으면 뜯어내 다 버렸을 것 같은데  

생전 해 보지 않던 일을 해놨는데 확 내다 버리질 못하겠다.

언젠가 누군가 상추도 장아찌를 담으니 맛있더라는 말이 생각나

장아찌물을 끓여서 상추 장아찌를 담았다.

그 많던 상추가 장아찌물을 뒤집어쓰고는 확 줄었다.




작가의 이전글 고등어 두 손과 조기 세 마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