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오래전 기억으로 오늘 이 영화를 추억한다. 난 이 영화가 탈피를 말하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허물을 벗고 살아가는 감각에 경주되는 것. 죽음을 잊고 쾌락으로 환희하는 것. 영화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나는 당시 그렇게만 이해하지 않았다.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경수가 되돌아간 감정을 이어 나도 왔던 길을 되돌아 가고 있는 중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래야 숏컷을 하고 딱 달라붙는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인이 나를 지나쳐 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늦었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였음에도 모든 게 늦었다고 알았다. 하지만 끝에 이르러야 되돌아갈 수 있기에 어떻게든 끝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끝에 이르자 지나온 삶이 잘려 버려진다. 나는 나나미 겐토처럼 많이 지쳐있었고 많이 피곤했다. 적은 월급으로 보람 없는 직업에 종사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삶이 너무 오래되었고, 내 눈앞에 놓일 풍경도 지나온 곳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문학과 영화, 사진과 음악, 공연과 만화, 애니메이션과 철학이 한 인간을 무너지지 않게 지탱하는 인생이었다. 난 내가 이렇게 살고 싶었던 건지, 어린 나에게 묻고 싶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인지 내 아버지와 어머니께 답을 듣고 싶었다. 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길가 어느 계단 디딤판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너무나 더워 숨이 막히는 한낮에. 살아가는 것들을 혐오하는 것만큼 강렬한 햇살을 피해서.
그때 검은색 가죽 미니스커트를 입은 단발의 여자가 내 앞을 지나간다. 그녀는 곧 내 눈에 걸렸지만 그 그물을 찢고 나아간다. 내 상상 속 그녀는 나와 다른 시간에서 어느 역사 화장실 좌변기에 앉아 마스터베이션을 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세찬 장대비 소리에도 묻히지 않는 교성을 내지른다. 뱀을 품는 것이다. 난 그걸 듣는 나 자신도 떠올린다. 세상을 메우는 빗줄기가 교성을, 쾌락을, 뱀의 움직임을 더욱더 고무시키는 듯 점차 거세진다. 하지만 여자의 교성도 더욱 커질 뿐이다. 더욱, 더욱더.
난 여자의 교성을 들을 수 없을 때까지 6월의 뱀을 상상하다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달을 바라본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이미 유월을 지나 팔월의 달을 내보이고 있다. 나는 6월의 뱀을 본 적이 있었는지 자문해 본다. 검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그녀가 선글라스 너머로 나를 흘긴 적이 있는지를. 언젠가 나는 아직 그녀가 내 앞을 지나간 적이 없다고, 그러니까 그녀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인생을 되돌아가겠다고 적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6월의 뱀은 나를 지나친 적이 없다, 유월을 지나 팔월의 달을 보고 있음에도 나는 그녀를 본 적이 없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이젠 내가 그것에 슬픈지 기쁜지도 알 수도 없다. 다만 그냥 살아갈 뿐. 인생이란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