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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政과 정情

영화 킹덤 3: 운명의 불꽃

by 아라베스크


킹덤 영화 시리즈는 원작 내용 중 전장을 집중으로 전개된다. 다만 일본 영화, 인물 위주 이야기로 과장과 왜곡이 있어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진시황이 되는 정이 일본말로 대의를 말하는 장면은 거부감이 상당하다. 영화 영웅에서 무명이란 자객 앞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마음을 고마워하는 인물과 킹덤에서 자기가 살아야만 하는 목적을 말하는 정은 완전히 다른 감성으로 하나의 미래를 말한다. 이 모습들은 국가관, 민족, 그것으로 구별되는 세계관의 차이를 보여줘 흥미를 갖게 한다. 그리고 킹덤 영화 3편 운명의 불꽃엔 의외의 에피소드로 영화의 전반부를 할애하는데 아마도 대륙을 통일하는 진시황의 명분을 인간적 면모로 보이려는 의도 때문일 것이다.


역시나 무필한 이야기다. 영화 전반부의 주된 이야기는 조나라 침공으로 진왕 정이 왕기에게 대장군을 부탁하는 과정으로 시작된다. 왕기는 대장군 임명을 핑계로 진왕 정을 시험하고자 독대로 왜 중원 통일을 바라는지 묻는다. 정은 한 사람과의 약속 때문이라고 답하면서 조나라를 어떻게 탈출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실제 사기에는 정의 부친 자초가 여불위의 금 600돈으로 조나라를 탈출했고, 아내인 조희와 아들 정은 조희가 조나라 부호의 딸이라 화를 면하고 진나라로 올 수 있었다고 적혀 있다. 당연히 영화 속 시카란 암상인과 그들의 탈주극, 그리고 시카와의 약속은 허위다. 다만 이 부분에 영화 전반을 할애한 건 의미 있는 선택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에 따르면 정은 진나라의 장평 대학살 탓에 볼모로 있던 조나라에서 모멸과 박해를 당했기에 태자로 봉해지자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조나라에서 갖은 수모를 겪은 인물이 진나라의 왕이 되면 조나라를 가만두지 않을 거란 판단으로. 그래서 정은 도검을 필두로 시카, 아문과 함께 조나라를 벗어나고자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왕의 자격이 있는지를 자문한다. 나는 어떤 이유로 신체적 고통을 못 느끼게 되었는데 이런 사람이 왕이 될 수 있느냐고. 이것은 나의 고통도 못 느끼는데 타인의 고통을 알 수 있겠냐는 물음도 되는데 이때 시카는 달빛으로 자신과 같이 감동을 받았다면 당신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정을 설득한다. 이 설득은 달빛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백성들의 고통들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논리였다. 그리고 탈주하는 과정에서 모두가 정을 위해 희생하고 정은 혼자 진나라로 돌아가게 된다. 이 탈주극에서 도검, 아문, 시카가 정에게 바라는 건 오직 훌륭한 왕이 되어달라는 뜻이었다. 정은 모두의 희생으로 비로소 그 뜻을 받아들인다.

이 전반부 이야기는 정이 어떤 마음을 갖고 세상의 고통을 끝내려 하는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영화로서 킹덤이 영화 영웅과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곳이다. 하나의 뜻. 천하를 통일해 몇 백 년간 이어졌던 전쟁과 백성들의 고통을 끝내겠단 대의를 어떻게 결심하게 되는가, 킹덤이 아름다움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나와 함께한 사람들의 고통으로 백성의 고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라면 영웅은 자신을 죽이려는 자객이 천하라는 자신의 뜻을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하였다는 아이러니로 검의 극치, 검이 손과 마음 그 어느 곳에 없어도 장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것이 곧 평화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통일을 다시 한 번 결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객은 검의 손잡이로 왕을 찌른 뒤 깨달은 검의 극치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며 죽음으로 걸어간다. 즉 킹덤은 사람이고 영웅은 세상이다. 둘 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 아마도 킹덤 원작은 영화 영웅을 동기로 삼았을 것이다 - 극명한 건 정이 무엇을 느끼냐는 것이다. 킹덤에 정은 역사 기록에서 볼 수 없는 것, 정情을 느낀다.

이 정서가 영화의 서사를 관통한다. 내가 킹덤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은 과장과 왜곡이 어떻게 거대하고 끝없어 보임을 종식시키는지에 있다. 전장에서 주인공 신이 소수 정예로 대규모 적군 장수를 노리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은 목표에 가능함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과장과 왜곡이 성공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정 때문이다. 이 도식은 묘하게 때로는 세상의 진리처럼 보여 흥미롭다. 비록 그것에 선과 악이란 구분을 할 수 없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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