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길어 올리기
2010년에 개봉했던 영화는 복원과 매체 변화란 기로에 놓인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하고 제목으로 표현되는 정성, 진정성을 표현하는 걸로 끝을 맺는다. 실화에서 비롯된 이야기는 복잡하게 짜이고 거기에 감독 본인 입장을 - 영화감독으로서, 한 세대로서 - 조심스레 위치시켜 고민을 드러낸다.
완성된 작품 개봉일이 몇 개월이나 미뤄진 것을 두고 나는 관계자들이 회의적인 생각으로 영화를 판단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 수익은 그러했다. 개봉 후 관객들 반응도 좋지 않았고 관람객도 적었다. 나는 취화선 이후로 임권택 감독 영화는 반드시 개봉관에서 찾아가 봤는데 달빛 길어 올리기는 그러지 못했다. 지금도 후회가 되는 건 내게도 사람들 비평과 그로 선입견이 생겨 개봉관을 찾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하는 느낌 때문이다. 일관성 없던 효경 - 예지원 - 연기. 갑작스러운 필용과 - 박중훈 - 과 과장 - 진경 - 관계 변화. 의미 있는 고민이 호도되는 결론. 이런 점들이 문제 되었지만 이런 것들을 제쳐두고라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었다. 감독은 당시에도 좀 늦은 듯한 고민, 필름과 디지털 영상 사이에서 조선왕조실록 복원을 앞두고 한지를 만드는 장인들의 현실적 고충을 대조하고 옛것과 현재 편의로 만들어진 것들을 대비해 무엇이 더 낫고, 무엇이 못한 것인지를 고민한다. 이야기 면으론 필용과 효경 부부 관계 문제를 더 하고 거기에 지원이 기록이란 과정에 집착하는 것으로 영상 매체 변화를 견주어 바라보게 했다.
한지와 화선지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은 동양 시학 정경론과 맞닿으며 하나의 가치를 확립한다. 단지 보기 좋다는 것만은 오래도록 보전되고 길이 남을 것에 비하면 하찮다는 기준이다. 한지 옹호론에는 필자 필력이 그대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고결함이 한지에 있다 하지만 여기에 반대의견도 있다. 필력을 돋보이게 하는 보기 좋다는 특성이란 - 화선지 특징이자 기능 - 과연 나쁜 것일까란 반문이다. 이건 필름 영상과 디지털 영상 차이를 비유하는 것으로, 영화는 이 차이를 짚고 다음 관점으로 넘어간다. 필름 영상이란 한지의 고결함, 필자 필력 작가 작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매체지만 보전 기간과 수명이 좋지 않은 매체임에 반해 디지털 영상은 화선지처럼 더 보기 좋게 하는 기능이 있음에도 보전이 영구적으로 가능한 매체라는 점이다. 다만 움베르트 에코 말처럼 저장 매체의 변화가 이전 매체의 영구성과는 별개로 매체 자체를 도태시켜 단종시키는 경향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CD가 반영구적 매체임에도 더 간편하고 생산 단가가 낮은 저장 매체가 등장해 CD를 구현할 롬을 폐기시키기에 CD 또한 보존 기간 한계에 다다르기 전에 사라질 거란 얘기다. 지금 우리의 저장 방식은 디지털과 패킷의 연산과 상호 시그널이지만 새로운 방식이 도래하면 보존 기간과 별개로 이것들도 우리 주변에서 사라질 것이다. 물론 이전 데이터와 기록이 현재 디지털 변환처럼 새로운 매체의 변환 방식을 거쳐 명맥은 이어가겠지만. 이러한 사려까지 나아가면 필름과 디지털 대조는 표현 편리와 표백성, 접근 가능성 정도로 국한될 것이다. 그렇다면 발전이라는 걸로 도래하는 보편화가 과연 나아짐의 징후일까? 다른 분야로 유비시켜 답에 접근해 보자면 현재 우리 건축 기술로는 황룡사 9층 목탑을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담론이 생긴다. 과연 그러한 목조 건물이 현재 콘크리트 건물과 비교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란 문제다, 이런 문제 제기가 진정한 발전의 기로라고 나는 여긴다.
영화에서 이런 기로에 본부인과 첩을 중첩시키는 건 좀 의아했지만 화선지의 수성양화적 성격 때문에 그런 병치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나는 이해했다. 마지막에 이르러 중혼적 뉘앙스를 풍기며 정성으로 화합을 도모하는 호도는 어색했고 예상으론 결국 시대 흐름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나약하고 노쇠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것만큼은 놓지 않으려는 절박함 때문에 상식이 결여된 게 아닐까 추측했다.
감독의 101번째 작품이라 광고를 하고 평론을 하는 사람들을 제법 봤다. 모두가 숫자에 의미를 두었고 부당하게 작품은 숫자 때문에 내용과 괴리되었다. 감독 업적에 정당한 평가를 내리고 싶었다면 작품으로 표현되는 것과 의미를 고려했어야 했다. 정말 숫자를 강조하고 싶었다면 80이 다가오는 나이에도 청년과 다름없이 변화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숙고하다는 점을 말했어야 했다. 101번째 작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도 고민하지 않으려는, 할 수도 없는 가벼운 작가 의식을 질타하는 감독의 절박함을 얘기했어야 했다. 그래서 작품으로 한 폭의 조선 회화와도 같은 달빛을 담아낼 수 있었다는 것을 개유했어야 했다. 예술가의 고민은 예술이란 보석의 박편이다. 다른 말로 투박해도 깊고, 바래도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생의 충동, 젊음 때문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