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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그리고 5월로

신카이 마코토와 현실 재구성론

by 아라베스크


지브리의 현실 재구성론의 적자는 신카이 마코토일 것이다. 현실 재구성론이란 현실의 모든 것이 애니메이션에서 구현될 때 단순 복제 단계를 벗어나 작품 성격과 주제에 맞게 변형하여 작품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말하는 것으로 지브리 세계의 건물, 음식이나 가구, 옷과 신발들이 각 작품 감성과 어울리게 구현되는 것을 뜻한다. 지금 유행하는 지브리 사진들을 보면 배경과 주변 사물이 인물과 조화되게 변환한 것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 재구성론의 요지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우리 세계가 사실 모든 게 아름답다는 데에 현실 재구성론의 근거가 있다고 했다. 빛바랜 벽지. 낡은 서랍. 저물어가는 해가 비추는 공터. 들여다본다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이 세상에 없다면서.


신카이 마코토는 이 부분에 있어 현재 그 누구보다 탁월한 대가일 것이다. 최초 작품부터 신카이 마코토의 강점은 현실 세계의 묘사였고, 어느 부분에 있어 현실을 초월하는 묘사로 이야기의 흐름을 극적으로 변환시켜 갔다. 대표적인 것은 초속 5센티미터의 하늘일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가 그리는 하늘은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혜성의 궤적이 커다랗게 하늘을 가르고 주변을 밝히는 부분에서 그렇다. 이야기 전반에 묘사되는 생활 용품과 실제 거리, 음식과 건물은 매우 현실적이지만 이야기 흐름이 극적으로 변환될 때 하늘은 초현실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 부분이 현실 재구성의 구현이다. 난 초속 5센티미터의 세탁기와 폴더폰, 그리고 벚꽃 묘사를 너무나 좋아하는데, 모든 게 그려진 것이라 현실적이어도 초현실적이며 무엇보다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감성이 초속 5센티미터에서 만날 수 없음을 뼈에 사무치듯 느끼게 한다. 배경의 감성들이 내 마음의 편견을 해체시키고 거기에 만날 수 없는 두 사람의 모습을 새겨 넣는 것이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기에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언어의 정원 GV 당시 모든 사람들이 질문을 빙자한 사랑 고백을 하기 바빴다. 놀라운 건 그 열렬한 감성을 토해내는 사람들이 전부 남자였단 사실이다. 정말 모든 사람들이 감독의 작품을 넘어서 감독을 향한 사랑을 고백을 하기 시작했는데, 가만히 듣는 나도 충분히 그들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냐하면 감독의 작품들, 특히나 언어의 정원까지 작품의 주된 시점은 소년과 남성의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초속 5센티미터는 철저히 소년일 수밖에 없는 남자의 작품으로 남자가 아니고선 절대, 완벽히 그 감성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시점이 언어의 정원, 너의 이름은까지 이어졌는데 변화는 너의 이름은에서 시작되었다. 소녀로 조금씩 시점을 옮겨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날씨의 아이와 최근 작품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신카이 마코토는 소녀가 되었다. 이 소년에서 소녀로 변환되며 사라진 건 아련함이었고, 나타난 건 활력이었다. 신카이 마코토도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세상은 소녀와 여성으로 약동하며 생동한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일까?


난 초속 5센티미터를 좋아하는 것만큼 언어의 정원을 좋아한다. 두 작품은 내 마음속에선 연작이고, 이 세상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세계다. 내가 벚꽃을 좋아하는 건 초속 5센티미터 때문이고, 하이쿠를 읽게 된 건 언어의 정원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언젠간 만날 거라는 신카이 마코토의 결말을 너무나 좋아한다. 이것이 내가 초속 5 센티미터와 언어의 정원을 연작처럼 여기는 이유다. 이제 곧 벚꽃이 내리는 4월이 온다.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을 표현하는 언어에 비가 내리는 5월이 올 것이다. 삶이 반복이어도 이야기 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나 다가오는 계절에 설렌다. 내가 그렇고, 아마도 이 세상 어딘가에 사는 누군가도 그럴 것이다. 내 마음속 계절로 살아가는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물들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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