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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행

영화 리볼버의 리볼버

by 아라베스크



영화 속 모든 인물들에게 불행은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자 약속된 미래였고 모두가 고통 속에 빠져든 모습을 조금도 감추려 하지 않기에 이야기의 모든 시간들은 자기 몫의 불행을 견디며 살아가는 군상으로 점철된다. 어머니와 아들, 배신당한 상사, 동료에게 거절당한 형사, 전남편에게 메여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술집 여자. 여러 인물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안정을 얻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찾아다니며 방황한다. 만나서 서로에게 자기 고통을 전가하기에 모두가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비애를 부여받은 건 임석용이란 인물뿐이다. 임석용은 자기 불행의 크기와 시기를 감지하고는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와 다르게 하수영은 자기 불행 위에서 처절하게 유영하며 관련 인물들의 삶을 조각내지만 정작 자기 삶의 조각들을 행복했던 시절의 형태로 복원하지 못해 비로소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는 불행에 침잠한다. 그녀가 마지막에 내는 술값은 대가로 받아내야만 했던 액수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는데, 이로써 관객은 그녀가 되찾고 싶어 했던 것이 약속의 액수가 아니라 어쩌면 오랜 기간 행복할 수 있었던 시절을 환기하는 그때 그 숫자가 아니었는지를 생각한다. 2년을 감옥에 있다 나오면 받는 보수였던 7억. 행운과 완전함의 숫자.


약속도 보상도 불행을 벗어나게 해주지 못하고 행복도 불행 위에선 환상이며 오랜 시간 살아온 인간에게 바꿀 수 없는 지난 과거는 불행의 단초마저 된다. 영화에서 행복은 딱 한 번. 수영이 아파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는 행위에서 포착된다. 드디어 내 집이란 문장으로. 그것뿐이다. 그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조차도 하수영의 지금에선 불행의 단초일 뿐이다. 7억. 행운과 완전함의 숫자, 행복한 미래를 보상해 줄 거라 기대했던 숫자도 불행의 트리거일 뿐이다. 영화 리볼버에서 하수영이 갖고 있는 리볼버는 과녁을 맞혀도 맞추지 못해도 수영을 행복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이것의 우화는 이렇다. 우린 리볼버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기에 누군가에게 쏘지 못했다는 후회만으로도 인간은 괴로울 수 있다. 또한 언젠가 누군가를 쏘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은 불행에 빠질지 모른다. 하지만 버릴 수 없다. 맞혀도 맞추지 못해도 행복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는 나만의 도구를. 그것은 나를 지켜줄 수 있기에. 그래서 불행은 인간에게 필요충분조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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