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바라바
탈무드에는 머리가 두 개인데 몸은 하나뿐인 사람이 한 사람인지 두 사람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나와 있다. 한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 보면 된다고. 뜨거운 물을 맞은 머리만 소리를 지른다면 두 사람이요, 물에 닿지 않은 머리도 고통으로 소리를 지른다면 한 사람이라 한다. 탈무드가 강조하는 현상의 양면성과 그에 따른 해학은 보편성과 공감으로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중요한 요소를 생각하게 한다. 고통과 아픔을 느낄 수 있느냐는 점이다.
나는 바라바가 카타콤베에서 길을 헤매는 순간을 자주 떠올린다. 그가 길을 잃고 표류하는 곳은 광휘란 환상이 사라지는 곳. 믿음으로 현현한 빛이 적멸하는 곳이다. 죽음의 땅. 바라바는 공포에 휩싸인 채 그곳을 서둘러 벗어났지만 혼돈으로 가득 찬 방황이 그가 벗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했을 때 삶은 믿음을 광기로 치환한다. 바라바는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회의하고 불을 지른다, 보라. 주님의 왕국이 왔다! 보라, 주님의 왕국이 왔다! 온 세상이 불길로 타오르고 있다고 환희에 차 있지만 실상 로마 시내 일부분에 지나지 않은 저택의 한 창고를 태우는 불길로 바라바는 종말과 구원이란 환상을 보게 된다.
조하르가 밝히는 깨달음의 길. 태초의 광휘는 말씀의 비밀이 그러하듯 천천히 퍼져 나가다 이윽고 바퀴 한가운데 난 둥그런 굴대 구멍처럼 된다 하였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은 모든 것을 반기시고, 모든 것은 신의 본질과 일치한다는 정신적 개혁을 이뤄냈다. 하지만 이런 관념은 우리가 왜 인간임을 알려주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인간성을 시험받게 되는 곳이 있다면 그건 바라바의 설화가 시작되는 곳일 것이다. 바라바는 그가 그리스도 대신 풀려나 십자가에 매달린, 자신에게 서로 사랑하란 말을 했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의 하느님, 하느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분을 믿는 모두와 함께, 그분의 단말마를 듣게 되는 그곳에서. 고통과 아픔으로 나의 가슴과 마음이 무너졌던 곳에서. 나 또한 아버지의 아들로서, 바라바란 이름으로, 광휘란 환상이 사라는 곳으로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