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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모습

GHOST IN THE SHELL : SAC_2045

by 아라베스크


오늘날 내가 접하는 대중문화에서 소외된 주제 중 하나는 영혼에 관한 물음인 것 같다. 영화 랑종 정도가 중반까지 공포로 영혼의 성격을 보여준 것이 최근 몇 년간 내가 본 작품에서 영혼을 마주한 경험의 전부였다. 공각기동대 연작을 제외하면.


공각기동대는 20년 전, 아니 원작 만화가 태동하고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 공개되었던 90년대부터 줄곧 이 영혼에 관한 물음을 해왔다. 세기말을 앞두던 80년 말 90년대는 이런 성격의 작품이 매우 많이 등장했고 보였었는데 이젠 그러한 물음이 고루하고 지난한, 어찌 보면 쓸모없는 놀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예고되었던 멸망을 지나 새로운 삶이 시작됐기 때문일까? 예언이 거짓으로, 삶은 사실이자 현실이었기에 인간의 인생이 매우 복잡하고 다채로운 고도의 사회화가 되어버려서 그럴까? 리얼(Real)과 넷 (Net), Online과 Offline 이 우리 삶을 구획하고 설정하는 오늘날의 사회에 영혼은 무가치한 자리만을 차지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공각기동대를 보는 시간은 좀 특별하다. 무가치한 영혼의 물음이 다시. 삶에 가장 중요한 물음으로 잠깐이나마 무거워지기에. 오늘날에도 쿠사나기 소좌와 바토, 토구사와 아라마키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을 쫓으며 자신들의 영혼을 되돌아본다. 특히나 이번 작품의 부제인 S.A.C. 즉 Stand Alone Complex가 머리 위에 자리한 세계관에서 우리의 인물들은 영혼이 무엇이냐는 집요한 물음으로 영혼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과 생각, 그리고 언어가 인간의 특징이라면 고스트라 불리는 우리의 영혼은 어쩌면 넷상을 떠도는 데이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무량한 패턴과 법칙이 집적화될 수 있다면 인간의 인간적인 행동 또한 충분히 구현 가능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으로 인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육체? 그것 또한 의체라는 것으로 구현 가능하다면, 오직 뇌라는 장기만이 인간을 규정하게 되는 것일까? 그러나 그렇게 알았던 내가 내 머리를 스스로 열어 보였을 때 두터운 두개골 안에 매우 작은 칩 하나가 놓인 것을 알게 된다면 영혼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공각기동대는 전뇌 (Brain-Computer Interface, 전자화된 뇌)와 네트워크, 그리고 로봇이란 의체가 일반적이고 가능한 시대에서 이러한 영혼의 물음을 쫓는다. 나는 오래전부터 영혼은 기억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감성이라 여겨왔다. 바로 이 감성의 성격을 인간은 오랫동안 흑과 백, 블루와 레드라는 색채로 채색하길 좋아했고, 그로써 보다 더 쉬운 이해를 할 수 있던 것도 사실이다. 좀 더 언어적으로 다가가, 지울 수 없는 피를 씻는 손이나 묘지를 지키는 정원사를 부활하신 그분으로 느끼며 전쟁에서 전사한 내 소중한 아이가 다시금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도 나는 영혼을 느끼곤 했다. 누군가 연금술사란 책에서 보이는 꿈으로, 예언자란 시 속에서 무스타파란 인물로 감동을 받았다면 그건 영혼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각기동대에 이르러, 오늘날에 이르러 내 단언은 와해된다. 기억 또한 데이터로 환원되고, 인식이 아직도 시야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오늘날에 만약 모든 것이 조작 가능하다면? 공각기동대의 전뇌화한 인물들은 시야를 해킹당해 헛것을 보고, 보존된 데이터를 기억과 혼동하며 현실을 견뎌 나간다. 영혼은 누군가의 의도로 다르게 채색되고, 감성은 보이는 것에 자유롭지 못하기에 왜곡된 정보로 거짓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이 진실이라는.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이란 과연 무엇일까?


진실은 사실과 다르기에 때론 거짓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래서 거짓이 때론 진실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러한 진실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공감이나 이해라는 말로는 이 불가능을 설명하는 것이 부족하다. 진실을 따라가는 인간은 반드시 한 번쯤은 다음과 같은 자문을 하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캄캄한 망망대해에서 내가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저 별빛이 과연 올바른 길일까? 그러나 모든 예술의 태동이 그렇듯, 만약 이러한 자문에 스스로 답을 찾은 사람이라면 아마도 차폐된 누군가와 진실을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2045 S.A.C의 핵심이다. 한 객체가 접속되지 않고 차폐된 상태에서는 네트워크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진실은 차폐 상태, 오직 스탠드 얼론 모드로만 접근할 수가 있다. 조작과 왜곡이 난무하는 온On 라인line, 각기 다른 진실을 소유한 타인들과 그만큼 수많은 거짓들이 이어진 실이 내 삶을 관통하고 있는 상태에선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게 된 진실이 사실이 되려면 타인과의 공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 공유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이 불가능의 가능성. 거기에 흔들리는 인간의 모습에서 나는 영혼의 존재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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