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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지 파크 레스토랑

말레이시아 쿠알라 룸프르

by 아라베스크


나시 르막은 기름진 밥이란 뜻으로 코코넛 밀크로 지은 밥을 오이, 삶은 계란, 튀긴 멸치나 볶은 땅콩과 함께 삼발 소스에 비벼 먹는 말레이시아 음식을 말한다. 삼발 소스는 고추와 후추를 빻아 각종 향신료를 첨가해 만드는 소스인데, 만드는 방식과 재료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말레이시아 쿠알라 룸푸르 (Lumpur) 흙탕물이 (Kuala) 만나 합수하여 흐르는 곳, 페털링 자야란 지역에 빌리지 파크 레스토랑이란 식당이 있다. 이곳은 나시 르막 아얌 고랭으로 유명한 식당인데 각종 유명인사부터 많은 외국 관광객까지 발길을 이끄는 곳이다. 아얌 고랭은 닭튀김을 얹은 나시 르막인데 항간에 나시 르막에 닭튀김을 같이 주는 건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의 영향이라고 한다.

우리가 쿠알라 룸프르에 도착했을 땐 해가 넘어가는 중이었다. 햇살은 저물어가는 태양빛으로, 세상을 바랗게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하늘도 건물도 사람도. 하지만 택시를 타고 얼마 가자 비가 내렸다. 말레이시아 소나기는 오후 한두 시간 강렬한 폭우와 천둥, 번개를 동반한 스콜로 유명하다. 빗속을 뚫고 나아가는 택시 창문으로 하얀 수막과 수많은 오토바이에서 내린 사람들이 다리 밑에서 비를 피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러한 스콜에도 배달을 가는 기사들도 보았다. 과연 이게 잠시 내리고 마는 비인가 싶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이럴 때 사람은 하늘과 신, 하느님과 하나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고 나는 생각했다.


오래된 상가 건물 한편에 빌리지 파크 레스토랑이 있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아님 우리가 문을 닫기 직전인 5시에 도착해서 그런지 주변은 한산했고, 몇몇 배달 기사들만 주문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착석해 주문을 하고 기다리니 얼마 되지 않아 음식이 나왔다. 나시 르막 아얌 고랭. 처음엔 하나만 시키고, 다른 걸 이것저것 주문해 같이 먹을 생각이었는데 조금 먹다 보니 생각이 바뀌어 하나씩 주문해 먹기 시작했다. 그러길 정말 잘했다고 먹고 나서 생각했다. 너무 맛있어서. 3500원 정도 되는 가격이었다.

이곳을 방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나시 르막 아얌 고랭을 먹고 맛있다고 표현한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맛있다고만 하기엔 굉장히 부족하다. 너무라고 덧붙여 말해도. 내가 느낀 감정은 이 맛은 다시 먹게 하는 맛이라는 것이다. 오늘 먹었다면 내일 다시 생각나게 할 맛이고, 이틀 뒤에 다시 먹게 할 맛이다. 일주일 뒤에도 쿠알라 룸푸르에 있다면 반드시 다시 먹게 될 맛이다. 혼자 있으면 혼자서라도 시켜 먹고, 같이 있다면 같이 가서라도 먹을 맛이다. 내가 그곳에서 매우 먼 대한민국 서울에 있어도 생각이 나는 맛이다. 아마 나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 때 빌리지 파크 레스토랑에서 파는 나시 르막 아얌 고랭이 먹고 싶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살아가게 하는 맛. 나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치킨의 염도 견과류의 달콤함 밥의 식감과 삼발 소스의 밸런스를 설명하는 것보다 그 모든 걸 하나로 먹는 맛을 나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식당을 나오자 해가 저무는 저녁 무렵이 다 되어 갔는데 한 아주머니가 식당에서 밥을 포장해 나왔다. 아이와 함께. 영업시간이 좀 지났는데도 식당에 사람이 제법 있었고, 배달도 계속 이어졌다. 난 구글맵의 영업시간 정보가 잘못되었나 생각했지만 이내 쓸데없다 생각했다. 누군가에겐 운이 좋은 날일수 있다. 우리처럼. 우리도 오후 5시 전에는 도착해 먹을 생각으로 공항에서 짐을 갖고 바로 온 것이었는데, 아직까지도 영업해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니. 배달을 받아줘 고맙다고, 지금도 포장해 줘 저녁으로 먹을 수 있어 고맙다고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 맛이라고. 누군가와 함께. 그리고 이젠 같이 먹었다면 좋았을 사람도 생각난다. 아마 좋아했을 것이다. 그 동생은 나처럼 단맛을 좋아했으니. 이곳을 다녀온 내가 이러저러한 감흥을 전했다면 한 번은 이 나라 이곳에 와 한 번은 먹어봤을까. 만약 그랬다면 세상이 힘들었던 언젠가 한 번은 이곳을 떠올리고 먹고 싶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힘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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