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베센트 재무장관이 아주 흥미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는데요. 바로 1990년대의 영광을 이끌었던 '그린스펀 모델'을 2025년에 다시 소환하자는 제안이죠. AI가 가져올 경이로운 생산성 혁명이 과거 인터넷 혁명처럼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을 가능하게 할 테니, 걱정 말고 금리를 낮추자는 주장입니다. 정말 귀가 솔깃해지는, 달콤한 제안이 아닐 수 없죠.
실제로 90년대는 '골디락스'라 불리던 꿈의 시기였습니다. 강력한 성장과 안정된 물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죠. 당시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은 기술 혁신이 가져온 생산성 향상을 믿고, 경기가 뜨거운데도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대담함을 보여줬습니다. 이 성공 공식이 다시 한번 재현될 수 있다는 기대감, 어쩌면 시장은 이 유혹을 쉽게 뿌리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90년대의 화려했던 파티만 기억해야 할까요? 그 파티가 끝난 뒤 찾아왔던 지독한 숙취는 벌써 잊어버린 건 아닐까요?
우리가 '그린스펀 모델'을 평가할 때, 90년대의 호황뿐만 아니라 그 끝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반드시 함께 봐야 합니다. 바로 '닷컴 버블'이라는 거대한 재앙이었죠. 그렇다면 왜 이 모델은 필연적으로 버블로 이어졌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값싼 돈'이라는 연료에 '신경제'라는 강력한 불쏘시개가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린스펀의 저금리는 시장에 엄청난 유동성을 공급했고, 이 돈들은 당시 가장 뜨거웠던 '인터넷'이라는 꿈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흘러 들어갔습니다. "닷컴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투자금이 몰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장은 '비이성적 과열' 상태에 빠져들었죠.
이 공식을 2025년에 그대로 대입해 보면 아찔한 그림이 그려집니다. 행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연준이 금리를 낮춘다면 '값싼 돈'이라는 연료는 이미 준비된 셈입니다. 그리고 'AI'라는 내러티브는 90년대 인터넷보다 훨씬 더 강력한 불쏘시개가 될 수 있죠. 결국 '그린스펀 모델을 재현하자'는 주장은, 자칫 '닷컴 버블의 전제 조건을 다시 완벽하게 재현하자'는 말과 사실상 동의어일 수 있다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물론, 90년대와 지금은 경제의 기본 운영체제(OS)부터 다른데요. 당시에는 '세계화'라는 거대한 순풍이 불었죠. 기업들은 가장 값싼 곳에서 물건을 만들어 전 세계에 팔면 그만이었습니다. 중국 같은 저임금 국가가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주니 물가가 오를 틈이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미국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나 반도체 지원법에서 보듯, 이제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는 '탈세계화'가 대세입니다. 이는 기업의 생산 비용을 구조적으로 높이는, 물가에 아주 비우호적인 역풍이죠. 여기에 팬데믹을 거치며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정부 부채는 경제의 기초 체력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빚이 많은 경제는 작은 금리 변화에도 크게 휘청일 수밖에 없죠. 이런 근본적인 차이 앞에서 과거의 성공 모델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오래된 지도를 들고 완전히 다른 대륙을 탐험하려는 것과 같이 위험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I가 가져올 혁신의 호황은 누리되, 버블이라는 파국은 피할 방법은 없는 걸까요? 이것이 바로 오늘날 정책 당국이 풀어야 할 핵심 과제입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90년대에는 없었던 '경험'과 '도구'가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라는 뼈아픈 경험을 통해, 중앙은행은 '거시건전성 정책'이라는 새로운 무기 세트를 얻게 되었죠. 독자분들이 궁금해하실 그 '핀셋'이란 구체적으로 이런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자산 시장(주식, 부동산 등)에 돈이 과도하게 몰리면, 그 자산을 담보로 빌릴 수 있는 돈의 비율, 즉 LTV(주택담보대출비율)나 증거금률을 조정해서 '빚내서 투자'하는 흐름에 직접 제동을 걸 수 있습니다. 혹은 은행들에게 '경기대응완충자본'이라는 저축을 더 쌓게 해서, 경기가 좋다고 흥청망청 대출을 늘리지 못하도록 미리 방어벽을 치는 방법도 있죠. 경제 전체를 타격하는 '금리'라는 망치를 휘두르기 전에, 이렇게 과열된 부분만 정밀하게 식힐 수 있는 도구들이 생긴 겁니다.
결론적으로 '그린스펀 모델'을 다시 꺼내 드는 것은, 과거의 영광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다시 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고속도로의 끝이 낭떠러지였음을 기억하고, 그 낭떠러지 앞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작업이 되어야 합니다. 기술 혁신이라는 액셀은 부드럽게 밟도록 허용하되,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위험 구간에서는 언제든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브레이크는 과거처럼 경제 전체를 급정거시키는 것이 아니라, 과열된 바퀴에만 작동하는 정교한 시스템이어야 하겠죠. 혁신과 안정, 이 두 가지 상충하는 목표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는 것. 그것이 2025년 '진화된 그린스펀 모델'에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