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살아남기 #8 런던에서 런던으로 이사하기
한국에서 자취할 적에도 이사는 가기 싫었다. 미니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보니 방 한 칸에도 얼마나 많은 짐이 들어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런던에서 첫 번째로 정착한 집에서 8개월 정도 흘렀고, 되도록 이사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음, 역시 이사는 피할 수 없었다.
나는 한국인과 살기 싫었다. 되도록 나를 영어에 노출하고 싶었고, 최대한 낯선 환경으로 도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깔끔 떠는 성격도 아니고, 예민하지만 내 방에만 침범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무던한 편이었기에 쉐어를 선택했고 나쁘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동양인과 쉐어 하기를 선호하는 이유는 확실히 이해했다.
더러움에 대한 기준이 매우 다르다. 서양권에도 깔끔한 친구가 당연히 있지만, 평균적으로 동양권에서 자란 친구들이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기 위해 공용공간은 깔끔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요리를 하면 뒷정리를 하고, 설거지는 최소 다음날에는 하고, 쓰레기가 다 차면 알아서 비우고, 그런 것들. 같이 살던 친구 중 한 친구가 유독 깨끗하지 못했고, 한 달에 한 번 청소하러 오시는 분이 계셔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냈지만, 점점 부엌에 되도록 가기 싫어졌다. 그리고 영국의 다른 친구 집에 방문했을 때 깨달았다. 아, 우리 집 부엌 더러운 거 맞았구나.
남과 같이 산다고 독서실처럼 조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이니까 편안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파티를 하던, 노래를 크게 틀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방문을 닫으면 안 들리기도 했고. 문제는 늦은 밤 자주 그러던 친구가 있었는데, 방에서 나갈 때마다 시원하게 울리는 소리를 들을 때면 생각이 많아졌다.
이러한 문제로 계약 기간이 끝나면 이사를 가기로 결심했다. 근데 마침 친구가 같이 살기를 제안했고, 빠르게 이사를 결정했다.
계약 기간은 1년이었고, 그전에 이사를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계약서를 다시 확인했다. 계약할 당시엔 무조건 1년을 채우겠다는 마음이었는데, 역시 무조건은 없었다. Break Clause는 6개월이었고, 6개월 동안만 계약을 이행한다면 이후에 미리 계약 종료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었다.
Break Clause란?
약속한 계약 종료 시점보다 미리 계약을 종료할 수 있는 권리이다.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행사할 수 있으며, Break Clause가 6개월이라면, 계약 시작 후 6개월이 된 시점부터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은 6개월이 되었을 때 계약을 종료할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며, 이를 행사하기 위해선 6개월이 되기 전 미리 알려야 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 사실을 몰랐고, 미리 확인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일반적인 Break Caluse의 개념과는 달랐지만, 난 세입자였고 소송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아예 계약 종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를 대신할 새 세입자를 구하면 계약을 미리 종료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부동산 측에서는 세입자에 대한 까다로운 기준과 함께 월세를 올려 받기를 원했다. 시세와 비교했을 때 분명히 비싼 금액이었다. 그래서 나의 경우, 그냥 포기하고 월세를 내는 중이다. 세입자를 보내봤지만 부동산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시세보다 비싼 금액이 너무 화가 나 그냥 계약 기간을 다 채울 때까지 월세를 내려고 한다. 아마 내 계약이 끝나고 부동산이 직접 다음 세입자를 구할 땐 나에게 제시한 월세보다 낮은 금액을 받을 거라고 확신한다.
혹여라도 계약을 미리 종료할 상황을 위해 계약서를 작성할 때 Break Clause를 어떻게 행사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확실하게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사를 할 때 Uber XL을 이용했다. 짐칸이 충분할까 걱정했는데, 10~12인승 차량이라 짐을 싣고도 공간이 엄청 남을 정도로 컸다. 외국에서 Uber를 이용할 때 이상한 기사님을 만난 적이 종종 있었는데, 이 기사님도 이상한 사람이었다.
분명 도착지에 내린 후, 짐을 내리고 웃으며 마무리했다. 그런데 얼마 뒤 갑자기 내가 차량을 대기시켰다면서 waiting fee를 요구하는 게 아닌가. 분명 난 미리 나가있었고, 심지어 차가 진입할 때 인사까지 했었다. Uber 측에 낼 수 없다고 하니 갑자기 그 기사님이 내가 무례한 행동을 했다고 컴플레인을 걸었다. 내가 욕을 하고 불친절하게 대했다고 했다. 오, 그냥 너무 말도 안 되는 모함이라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난 친절하게 Uber 측에 1) 난 욕을 한 적이 없으며, 2) 내가 기사님께 운전 중 건넨 말은 '죄송한데 볼륨을 살짝 줄여주실 수 있을까요?'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넘어가려고 했던, 운전 중 발생했던 경미한 교통사고(오토바이와 우버가 아주 살짝 부딪혔다)까지 얘기했다. 기사님은 왜 관련 없는 얘기까지 하냐고 했고, 결국엔 Uber license가 취소되었다. 그리고 Uber 비용도 환불받았다. 정말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