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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라클 Jan 09. 2024

포용력

나 자신을 먼저 감싸 안아야지 남도 넓은 마음으로 안을 수 있다

"내가 평생을 여기서 살았어. 이제는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했으면 좋겠어. 병원에 어서 가. 내 모습이 싫어"

밥도 먹지 않고 얼굴은 웃음기가 없어지고 있다. 평소 같으면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그녀이다. 한 번씩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마음의 병으로 평생을 요양 시설에서 지내고 있는 그녀는 손님이 찾아오면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된다고 한다.  여자로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술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요양 시설에서 삶은 그리 만만하지는 않다. 똑같은 일상 속에서 살다가 자신을 힘들게 하고 있는 이모님들을 보고 있으면 나 또한 마음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을 느낀다. 

공동체를 이루고 살다 보니 한 명의 아픔은 모두의 고통으로 전염되기도 한다. 


산이 집 근처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마음이 흩어지듯 힘들 때는 숲속을 거닐면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숲에 있는 친구들이 함께 하고 있고 나를 품어주고 있다.

봄에는 마른 나무 사이로 솟아나는 새싹이 대견하다.  발걸음을 멈추고 눈길이 머문다. 겨우내 나무속에서 묵묵히 지내다가 나온 새싹이 나를 위로해 준다. 여름 막바지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라도 하듯 목청껏 울어대는 매미도 있다. 매미의 울음이 나의 마음을 대변해 준다. 가을에는 푸른 하늘과 형형색색인 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 속에 어떤 것도 부럽지 않다. 나를 사시사철 품어주는 숲에서 포용을 배우게 된다. 


포용은 감싸 받아들이는 힘이다. 남을 너그럽게 감싸주거나 받아들이는 힘이 포용력이다. 나 자신을 먼저 감싸 안아야지 남도 넓은 마음으로 안을 수 있다. 강은 바다를 수용할 수 없다. 태산은 자기보다 큰 흙덩어리를 안을 수 없을 것이다. 가는 물줄기가 큰 물줄기를 수용하지 못하고 얕은 산은 큰 산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작은 그릇으로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나 자신의 그릇은 어느 정도이고 어느 정도의 물을 담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력을 기르기 위해 바다와 큰 산에게 배움을 가져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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