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유년기

병아리 돌보기

by 분홍소금

'나리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 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

개나리가 한창이다. 가느다란 줄기마다 빼곡히 달려서 별처럼 쏟아져 내린다. 봄 한철 허락된 지상의 별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귀퉁이라도 감지덕지, 함께 어울리고 싶어 축제의 상차림 위에 '달콤 쌉싸름한 추억 한 조각'을 얹어 본다.


주인공은 어미닭과 병아리와 병아리를 돌보던 아이, 바로 ‘어린 나‘이다. 배경은 농촌 마을, 때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때맞춰 개나리가 시골 집 뒤란에서 앞 다투어 피기 시작하는 따뜻하고 나른한 4월의 봄, 딱 이맘때이다.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3월이 오면 엄마가 닭장을 자주자주 살펴보았다. 그 때는 암탉의 알자리에 지푸라기도 넉넉하게 넣어주고 물통의 물도 자주 갈아주었다. 엄마는 암탉이 알을 품을 때가 된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암탉이 닭장에서 나오지 않고 알자리에 앉아 있으면 엄아는 모아둔 알을 닭의 둥지에 넣어 주었다. 열 개에서 열다섯 개쯤 넣어주면 암탉은 그 알들을 품기 시작했다.


암탉은 알을 품기 시작하면 둥지에서 나와서 돌아다니는 법이 없었다. 아주 가끔 모이를 쪼아 먹거나 물을 마시는 것 빼고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몸에 난 깃털들을 한껏 펼쳐서 장차 병아리가 될 알들을 소중하게 품었다.


알을 품은 지 스무날하고 하루가 되면 그동안 어미닭의 따뜻한 품에 있는 알 속에서 무럭무럭 자란 병아리가 어미에게 신호를 보낸다. 튼튼한 부리로 제 앞을 가로막고 있는 더 튼튼한 알 껍데기를 쪼아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비좁아서 이 안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어요."

그러면 단단했던 알에 구멍이 생기고 틈 주위로 금이 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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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이제나 저제나 때를 기다리고 있던 어미닭이 바깥에서 알을 쪼아 주었다. 그러면 알껍데기가 이리저리 부서지며 축축한 몸을 한 병아리가 삐악거리면서 나왔다


어미 닭은 언제 병아리를 도와주어야 하는지 정확한 때를 잘 알고 있었다. 어미닭은 금이 가지 않은 알을 결코 쪼는 법이 없었다. 열 개가 넘는 알들이 하루 만에 태어나지는 않는다. 시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알을 까고 나오는데 보통 2일이 걸리며, 간혹 3일이 걸리기도 했다. 삐악삐악 병아리들이 알을 까고 나오는 장면을 보며, 어린 마음에도 신기함을 넘어, 뭔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생명탄생의 깊은 감동 같은 것을 받곤 했다.



대개는 3월 중순 쯤에 암탉이 알을 품으면 4월 초에 병아리가 태어나는데, 그 때가 바로 요즘처럼 개나리꽃이 만개하여 절정을 이룰 때 인 것이다.

시골 집 뒤란에 개나리가 활짝 피었는데 어미닭이 먹이를 찾아서 뒤란으로 가면 병아리들이 종종걸음으로 따라 갔다. 병아리들이 보는 앞에서 어미닭은 개나리줄기 사이 수풀을 부지런히 헤집는다. 어미닭은 거칠 것이 없다. 닭의 발은 그곳이 마당이든 뒤란이든 가리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힘세고 용감하고 부지런한 사람처럼 파헤쳐 버린다.


병아리는 어미닭을 열심히 따라 다녔다. 어미닭이 찾아주는 모이를 먹기도 하고 어미닭처럼 물을 마시기도 했다. ‘물 한 모금 입에 물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또 한 모금 입에 물고 구름한 번 쳐다보고.’ 종종 호기심쟁이 병아리가 혼자 돌아다니거나 뒤처지기도 할라치면 어미닭은 꼬꼬댁거리면서 병아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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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식구들이 태어나면 어미닭만 바쁜 것이 아니었다. 집안에서 아이들도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새로운 일거리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병아리가 태어나면 집에서 누군가는 병아리를 지켜봐야 하는데, 들일로 바쁜 어른들 대신 아이들이 그 일을 했다. 시골 농가에서는 병아리를 노리는 고양이와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개들이 언제 병아리를 채 갈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병아리가 태어나면 병아리를 지키는 것은 으레 내 차지였다. 엄마가 아침에 학교 가는 나의 뒤통수에 대고 학교 갔다 와서 병아리 잘 지키라고 하시면, 두말없이 그렇게 했다. 그렇다고 병아리에게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본 것은 아니었다. 가끔씩 어디 있는지 찾아보는 정도로 돌보면 되었다.


낮 동안의 병아리 돌봄이 끝나고 해거름이 되면 병아리를 병아리 집에 들여야 했다. 갓 태어난 병아리를 닭장에서 키우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매우 위험 했다.그래서 따로 병아리 집을 만들어서 병아리가 클 때까지 어미닭과 함께 가두어서 보호해 주었다.


병아리 집을 시골에서는 동우리라 했다. 대나무 줄기를 가늘게 가닥으로 만들어 촘촘하게 엮어서 만들었는데 둥그렇고 커다란 대나무 바구니처럼 생겼었다. 운동회 날 공굴리기 할 때 공을 반으로 자른 모양에다가 크기도 그것과 비슷했다.



나는 병아리를 가두기 전에 동구리를 먼저 축담(마당에서 마루로 올라갈 때 신발을 벗어두는 곳으로 마당보다 조금 놓이 편평하게 다진 흙바닥)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나서 동우리를 반쯤 들고 준비해 둔 모이를 동우리 안에 널쭈면서 ‘주주주주 주주주주’ 하고 어미닭을 불렀다. 어미닭이 모이를 보고 동우리 안에 먼저 들어가면 병아리들도 어미를 뒤따라 들어갔다. 병아리를 세어보고 숫자가 맞는지 확인이 끝나면, 동우리를 땅에 내려놓는다. 어미닭과 병아리들을 병아리 집에 들이기를 마친 것이다.



그 다음에는 병아리 가족이 들어가 있는 동우리 위에다 큰 돌멩이를 올려서 눌러주면 되었다. 족제비나 고양이 같은 포식자가 동우리를 열지 못하게 단단히 방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돌본다고 해서 그 해에 태어난 병아리가 모두 무사한 건 아니었다.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고양이나 개가 벌써 물고 도망간 적도 있었고 학교 갔다 오면 2~3마리가 없어져 있을 때도 종종 있었다. 더러는 비를 맞고 우장을 쓰고 있다가 병이 들어 죽기도 했다. 그래서 열댓 마리의 병아리가 열 마리도 채 안 남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병아리 농사야 원래 그러려니 했다.


나는 병아리 돌보기가 귀찮거나 지겹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지도 않았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집안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아리를 동우리에 들이는 일을 끝내고 나면, 바쁜 부모님을 도와서 집안 일 하나를 해냈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몰려왔다. 부모님이 병아리걱정을 안 해도 되는 것이 내 덕분이라고 생각하면 나도 부모님께 꽤 쓸모가 있는 존재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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