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할 수 없는 사투리

번역할 수 없는 사투리

by 분홍소금

지난겨울에 ‘달콤쌉싸름한 유년기’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는데 중간에 그만 막히고 말았다. 오빠가 눈 오는 날 꿩과 토끼를 사냥하는 이야기인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사냥에 쓰는 찔레열매를 마련하는 부분인데 아무리해도 그때 일이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찔레열매는 서리를 맞으면 허물허물해지는데 오빠는 한 겨울에 탱글탱글한 찔레열매를 어디서 구했을까?’ 한참을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그 부분은 당사자인 오빠가 제일 잘 알 것 같아서 오빠한테 전화를 했다.


“오빠 어릴 때 한겨울에 찔레 열매에 독극물 넣어 갖고 꽁하고 토끼 많이 잡았잖아, 그 때 이야기 좀 자세히 해조.”

오빠는 말했다.

“알아서 뭐할라꼬? 나는 마 그렁거 엉성시럽다.”

오빠는 그렇게 말했다.

내 고향은 서부 경남 쪽에 위치한 시골이다. 사투리를 많이 썼다. 어린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편하게 썼고 무슨 말을 하든 잘 알아들었다.


우리는 아버지를 아부지, 엄마를 옴마, 언니를 응가라고 불렀다. 어마어마한 사투리를 썼지만 사투리의 거의 대부분은 번역이 가능하다.


예를 들면

베릉박-담벼락

자겁하다-기겁하다, 깜짝놀라다

쑥쑥타-지저분하다

하모-응, of course

응때다-문지르다

갈비-소나무 낙엽

오이-어디

가리늦까-뒤늦게

늘쭈다-떨어뜨리다

더무-큰 도라무깡 물통

살강-선반

속풀은-부추

꼬치-고추

문질다-자르다

꿩은 꽁, 심지어 ‘파리’도 ‘파리‘ 라고 부르지 않고 ’포리‘라고 불렀다.

도회지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경스러울 수 있는 사투리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표준말로 옮길 수 있다.


그러나 오빠가 말한 엉성시럽다는 말은 같은 뜻을 가진 표준말을 찾을 수가 없는 사투리이다. 혹시나 하고 네0버 사전에 ‘엉성스럽다‘ 를 검색해 봤지만 ‘북한어로써 매우 엉성하거나 엉성한 데가 있다.’ 라고 나와 있었다.

엉성시럽다의 뜻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누군가 뭔 소린지 비슷하게라도 한 번 말해보라고 한다면,

엉성스럽다-속이 울렁거려서 떠올리기조차도 싫은-이라고나 할까. 사실 이 뜻풀이도 엉성시럽다는 말이 주는 뉘앙스를 전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엉성시럽다라는 말은 한이 들어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우리는 가난했다. 우리 동네가 집집이 다 고만고만하게 가난했지만 우리 집은 그 가난한 집들 중에서도 유별나게 더 가난했다.

가난해서 끼니를 좀 건너뛰거나 차림새가 허름해도 사실은 별 상관이 없다. 좀 무시당하거나 괜스레 놀림을 받아도 참을 수 있다.


가난이 치명적인 아픔으로 한을 남기는 것이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가난으로 인해 배움의 기회가 막혀버리는 것이다. 오빠가 전교회장을 했다거나 어려운 입학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해서 온 동네가 후끈 달아올랐다거나 하는 것이 실제로 입학하는 데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입학이 현실이 되려면 등록을 해야 하는데 우리 집에는 등록금을 낼 돈이 없었다. 오빠의 화려한 시절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묻혀버렸고, 오빠는 상급학교 진학의 꿈을 접어야 했다.


또래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교모를 쓰고 학생가방을 들고 학교를 다닐 때 오빠는 지게를 지고 꼴을 베러 가거나 나무를 하러 갔다. 엄마는 오빠의 그런 모습을 보며 남모르게 눈물을 훔쳐야 했다. 엄마는 교복을 입은 오빠 또래의 학생들을 보면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고 했다.


그때로부터 40년도 더 세월이 흘렀고 오빠는 이제 더 이상 못 배우지도 가난하지도 않다. 그래도 우리 중에 누가 무심결에 “그때가 좋았지” 하면 “좋기는 무신(무엇이 좋다는 말이고) 엉성시럽지!” 한다. “하모요, 오빠, 오빠 말이 맞십니더, 맞고 말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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