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홍소금 Nov 09. 2023

밟아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운동을 하려고 산에 올라 갔더니 갈비(낙엽이 되어 떨어진 솔잎)가 지천으로 널쩌(떨어져) 있었습니다.

갈비를 보니까 당장 갈고리를 갖고 와서 나무를 한 짐하고 싶은 얼토당토 않은 충동이 불일 듯 일어납니다. 땔감과는 담을 쌓은 지 40년도 넘었건만 그 생각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몸 어딘가에 단단히 새겨진 기억이 이토록 위력이 있을 줄이야.



갈비는 소나무의 마른 잎을 뜻하는 사투리입니다. 갈비라는 말이 우리 시골에서만 쓰는 사투리 인줄 알았는데 검색을 해보니 다른 지방에서도 널리 썼던 말이더군요. 다만 현재는 아니고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어렸을 때요.



지금은 아주 비현실적인 생각이지만 불과 50년 전만 해도 땔감을 마련하는 일은 가을 추수가 끝나면  농촌에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이었죠. 겨울방학이면 어김없이 산에 가서 땔감을 해다 날랐습니다.

그 때는 소나무 밑에 가도 지금처럼 갈비가 많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많이 있었어도 내 차지가 되지 못했습니다.

니집내집 할 것 없이 밥만 먹으면 산으로 올라가서 땔감을 해 다 날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갈비를 한 짐 하려면 바람이 세게 분 다음 날 아침 일찍 나서든지 아니면 사람들의 발이 덜 닿은 곳으로 가야 했지요.




함께 간 아이들과 함께 자리를 잡고 갈비를 여기저기에서 긁어 모은 후 가로세로 30센티 가량 되게 사각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갈비는 찰져서 모양 만들기가 어렵지 않았지요.




집에서 챙겨 간 새끼줄을 두 줄로 나란히 놓고 그 위에 솔가지를 충분히 편 후에 네모 반듯하게 만든 갈비를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중간에 부러지지 않게 잘 겹친 후에 적당한 높이가 되면 그 위에 다시 솔가지를 얹고 묶으면 한짐이 완성 되었습니다.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나뭇짐을 꾸리는 동안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요.




갈비는 주로 불쏘시개로 쓰였습니다. 장작에 성냥불로 불을 붙일 수는 없으니까요.

먼저 갈비에 불을 붙인 후 그 위에 장작을 얹으면 어떤 장작이든지 타지 않고는 못 배기죠.

장작이야기가 나오니 벌써 타닥타닥 리드미컬하게 타오르던 기분 좋은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합니다.




장작불로 무쇠 솥에 밥도 짓고 소죽도 끓이고 군불도 지폈지요. 아궁이 앞에서 장작불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 오르던 일이 어제 같습니다. 장작이 다 타고 나면 거기에 밤이나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했지요.




우리의 겨울을 훈훈하게 해주고 낭만까지 불어 넣어 주었던 사랑하는 솔 잎과 소나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대단한 소나무에 대해 입이 닳도록 말하고 싶어서요.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

맞아요. 소나무는 상록수입니다.



그런데 산길을 덮어버릴 만큼 낙엽이 된 솔 잎이 수북이 쌓인 것은 무슨 일일까요? 까닭이 있습니다. 솔 잎의 많은 부분이 가을이 되어도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나무에 굳건히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올해 새로 난 잎은 떨어지지 않지요. 2년 이상 된 솔잎만 낙엽이 되어 떨어집니다. 그러니 항상 푸르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랍니다.




솔잎은 낙엽이 되어 땅에  떨어져도 그 멋짐은 변함이 없습니다. 고급진 아우라를 뿜어내지요. 뒹굴뒹굴 구르는 활엽수와는 품격마저 다르게 느껴집니다.




솔잎은 황토색입니다. 나무를 심기운 흙과 동일하지요. 주변의 풍경과 잘 어울립니다.

소복소복 소복히 쌓인 솔 잎은 밟아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낮은 곳에서 자신을 뽐내지 않는 겸손함으로 조용히 있습니다. 하지만 튀지 않아도 매력이 있습니다. 단순하지만 세련미가 넘치지요.




솔잎이 그렇게 멋진 자태를 뿜어낼 수 있는 까닭은 한데 뭉쳐있기 때문입니다. 색이 바랜 솔 잎 한 개가 길에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솔 잎은  눈에  띄지도 않을 뿐더러 눈에 띄어도 아무런 볼 품이 없을 것입니다. 갈비는 함께 뭉쳐있을 때 비로소 멋짐이 장착되지요.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좀 갖춘 사람들은 마음을 터 놓고 허심탄회 하게 나누는 공동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더군요. 겸손한 사람들이 잘 뭉치더라고요. 자기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 자신의 눈에 들보를 보는 사람만이 겸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잘 모르는 것은 물을 줄도 알지요.



갈비가 불쏘시개가 되어 장작을 활활 타오르게 하듯이, 겸손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힘이 있지요.



브런치 스토리도 그런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하, 벌써 그런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