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예매한 표를 출력하고 터미널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으려니 친정 엄마가 살아 계실 때 시골에 모시다 드리려고 와서 함께 커피를 마시던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엄마는 화장실 가고 싶으면 곤란하다 하시면서, "한 모금만 마실 란다." 했다.
조금 있으려니 같이 가기로 한 언니가 왔다. 언니와 나는 같은 이유로 커피를 조금만 마셨다.
이번에도 고향에서 2박 3일 예정이었다. 이맘때 고향에 가는 목적은 감을 따기 위함이다. 사실은 감 따는 것을 핑계로 다들 고향이 그리워서 가는 것일 게다.
우리 형제 자매들은 아버지나 엄마가 계시지 않아도 1년에 최소한 두 번, 봄과 가을에 고향에서 뭉치는 걸 좋아한다. 봄에는 고사리를 꺾기 위해, 가을에는 감을 따려고 간다. 하지만 저마다 이유가 따로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너른 품 같은 고향에 가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쉬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왜 고향에 가면 세상 살이의 족쇄가 하릴없이 풀어지는 느낌이 드는 걸까? 거기서는 자의 건 타의 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강요 당하는 선택에 대한 스트레스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선택에서 자유로워지니 자연히 책임질 일 따위도 없다. 어떤 행동을 해도 비웃거나 판단 받지도 않는다. 고향은 변함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 줄 것 같은 믿음을 준다.
거기에 가면 강물은 여전히 그때처럼 반짝이겠지. 대문이 삐걱대며 열리고 마당에는 잔디가 무성할거야. 방에 장작으로 군불을 땔 수야 없겠지만 보일러를 틀기만 하면 금세 작은 방답게 뜨끈뜨끈하겠지. 우리는 엄청나게 먹을 거야. 오로지 우리가 먹고 싶은 것만, 옛날 방식으로. 고향의 명물 막걸리도 마실 거야, 이번에 미친 척하고 취해볼까나? 아니야 그래도 취하진 말아야지, 취해볼까? 말아볼까?
우리가 고향이라고 부르는 곳은 바로 그런 곳이다.
시골에 도착하니 이모와 오빠와 올캐 언니, 부산에 사는 큰 언니와 형부가 먼저 와 있었다. 언니와 나는 앉자마자 점심으로 한 상을 받았다. 먼저 온 어르신들이 장만한 음식이었다.
-언니야 그래도 김치가 제일 맛있다. 김치 먹어 봐라, 클라스가 다르다.
-이 김치 누가 한 거에요?
-늙은이가 했다.
-어느 늙은이요?
-늙은이 많다, 알아맞혀 봐라.
(고사리 손으로 빨래 하던 냇가와 감이 듬성듬성 열린 감나무)
점심을 먹고 예정대로 감을 따러 갔다.
감은 산등성이 아래 감나무밭에 있다. 어르신들은 차를 타고 가고 언니와 나는 운동도 할 겸해서 걸어갔다.
집 앞에 도랑에는 알 수 없는 잡풀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다. 진성씨의 노래 '보릿고개'와 맥락을 같이 하던 어린 시절에 냇가에서 흰 고무신깨나 닦았지. 볏짚에 빨래 비누를 묻혀서 때가 다 벗겨져 나가 눈처럼 희게 될 때까지 얼마나 문질러 댔던가?
-언니야 흰 고무신 닦을 때 만큼 집중하면 뭐든지 하지 싶다.
-그럴지도, 아무 생각 없이 머리통(다른 말을 했지만 여기선 순화)를 쳐 박고 있는 힘을 다해 싹싹 비볐지 뭐.
올해는 감이 많이 열리지 않았다고 하더니 근처 감나무 밭에도 작년처럼 열린 나무가 드물었다. 감나무에 열매가 없으니 나무가 휑했다.
우리 감나무 밭은 산 아래에 있어 그런지 바람이 불지 않아 아늑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무에서 홍시를 따 먹었다. 세상에 없는 찰진 단맛이다.
-언냐 나는 감이 좀 먹고 싶어도 마트에 있는 감에 손이 얼른 안 가더라.
-나도 그래, 사람 마음은 다 같은 가베
-우리는 약을 안 치니까 더더욱 감이 다 빠져버려서 딸 것도 없네.
감따기는 금방 종료되었다.
그래도 가을에 가장 어울리는 일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고 술 상을 앞에 두고 앉았다. 막걸리를 마시며 온갖 이야기를 했다. 부자인 큰고모 집에서 대접을 잘 해 주었던 일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언니 둘이 고모집에 갔는데 고모가 머슴들이 먹는 커다란 밥그릇에 흰 쌀밥을 주걱으로 꼮꼭 눌러 담아 주셨다고 했다. 고모가 식구들 눈치 보느라고 머슴밥처럼 고봉으로 둥그렇게 쌓아 올리지 못하는 대신 주걱으로 꾹꾹 눌러 담아 주신 것이었다.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돌아서면 배고프던 시절에 고모가 언니들에게 베푸신 사랑이 평생 안 잊힌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때 왜 그랬을까 하다가, 부지런하고 인정이 많은 양반이라고 급 추켜 세우기도 했다. 사기꾼과 진배 없었던 좀 배운 친척을 실컷 욕하다가도 우리도 배운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 보다 더했을지도 모른다며 당한 사람이 바보지 했다. 이랬다저랬다 대잔치였다.
1950년에 이승만 대통령이 단행한, 세계사를 통틀어도 전무후무한 위대한 토지 개혁에 대해서도 한참을 떠들었다. 뜬금없이 올캐의 조상인 남명 조식 선생님이 얼마나 훌륭한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했다. 우리 끼리만 아는 이야기를 할 때 그저 조용히 있는 올캐를 띄워주기 위해 다분히 의도적으로 꺼낸 화재거리 였다. 예상대로 언니는 으쓱해져서 대화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덕천서원과 산천재에도 한 번 가보자고 했다. 나도 홍의장군 곽재우가 조식 선생의 제자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지난 해엔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많이 열린 감을 따느라 밖으로 나갈 생각을 못했는데, 올해는 가는 날에 감을 다 따고 나니 하루가 온전히 남아서 고향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통영 군산 여수가 물망에 올랐다. 검색하고 추천하는 것은 내 몫이었지만 나는 사실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속으로 집 앞 생태 공원에 갔다가 둘레길 한 바퀴 돌고 와서 추어탕 집 가서 식사하고 삼천포에 가서 회 떠다가 맛있게 먹으면 되겠고만 어르신들이 왜 저러지? 했다.
대세가 여행이라 나는 스마트폰에 머리를 박고서 여기 어떠냐 저기 어떠냐 이것 먹을까 저거 먹을까 쉬지 않고 여쭈었다.
목적지는 여수 오동도로 정해 졌다.
-순천에 벌교 꼬막이 유명하네, 가는 길에 먹으러 갈까?
-벌교 꼬막이 어디 있노? 요즘에 벌교 꼬막 주는 데 없다.(속고만 살았능교)
-얼마 전에 꼬막 비빔밥 먹었는데 꼬막을 서너 개 밖에 안주더라.(허걱 과장도 심하시네)
-여수는 게장이 유명하다 카네, 게장 잘하는 식당 있네 여기 갈까?
-요즘 꽃게 살이 꽉꽉 찼다. 너는 왜 수산 시장에 가서 사다가 쪄 먹을 생각을 안 하노, 머리를 그렇게 틀어라.
-어엉? 방금 전에 맛집 찾아보라고 한 사람은 누군데? 언니 남편 아이가? 형부하고 진영 싸움 하나?
-여수 불낙 전골은 어때?
-여수 수산 시장에 문어가 전국에서 제일 싸다 카더라, 거기 가서 문어 살 건데 만다꼬?
-그럼 뭐 묵어?
-걱정 마라, 아무거나 사람 바글바글한데 가서 먹으면 맛나다.
(여수 가는 길에 보았던 군산 화학단지)
고향에서 오동도까지 1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섬으로 가기 위해 동백 열차는 타지 않기로 했다.
아이구 다리야를 입에 달고 사는 이모가 "멀쩡한 두 다리 놔두고 그걸 왜 타노?" 했다.
방파제 길을 따라 걸으니 얼마 가지 않아 섬에 닿았다. 그다지 멀지 않아서 걷는데 부담이 없었다.
가을이라 동백꽃은 볼 수 없었지만 섬에 설치된 데크 길을 따라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되었다.
-부산에 동백섬 둘레길하고 다른 멋이 있네, 바다 색깔도 희한하다. 파란 색도 아니고 소라색 비슷하제 그렇제?
용굴, 대나무 터널, 등대 등 가는 데 마다 어르신들이 사진 찍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언니하고 형부는 사진 찍는 게 진짜 좋아하시나 봐?
-배경이 다르다아이가? 이제 앞으로 늙을 일만 남았다. 지금이 젤로 젊을 때다, 너도 마이 찍어라
오빠는 올캐가 사진 찍느라고 조금만 뒤쳐져도 어디갔냐고 자꾸 물었다.
이모가 귓속말을 했다.
-너거 오빠가 왜 자꾸 올캐 찾는 줄 아나? 심심해서 그런다
-아니, 우리가 있는데 뭐가 심심해
-너거 오빠는 우리가 같이 있는 거 아무 소용없다. 너거 올캐랑 싸워야 안 심심하다
-아이구 얄궂어라
어르신들이 자녀들과 다니면서 젊은이들 눈치 보느라 하지 못하던 말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편하게 하는 통에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웃었다.
가을 한 철 웃을 걸 다 몰아서 웃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점심으로 게장 백반을 먹었다.
(우리 일행을 행복하게 해 주었던 게장 백반과 생선구이)
나는 엊저녁에 필요 없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검색해서 찜해 놓은 식당으로 안내했다. 시청 근처에 있는 맛집이었다.
결과는 대 성공이었다. 뚝배기에 가득 담은 게장을 2인분에 한 사발씩 주었다.
-역시 전라도 음식이 맛있다.
김무침과 톳나물을 먹으면서도 재료는 특별한 것 같지 않은데 유달리 맛있다고 하며 맛없는 반찬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엊저녁에 여수하면 게장이라고 하니까 시끄럽다고 하며 사서 쪄 먹자고 했던 어르신이 제일 먼저 한 그릇 뚝딱하셨다.
집으로 오는 길에 수산시장에 가서 횟거리와 문어, 해삼, 새우젓, 말린 건어물을 샀다. 어르신들의 내공 넘치는 눈썰미를 믿어 의심치 않는 나는 그들이 고르고 사는 것을 따라서 샀다.
저녁 먹을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여수에서 공수해온 회를 옆집에 사시는 고모집에 먼저 갖다 드렸다. 사촌 오빠도 오시라고 불렀다. 회와 문어와 해삼으로 한 상을 차렸다.어르신들은 가을에 먹는 회가 가장 맛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일하지 말고 놀러 다니자 했다. 나들이가 만족할 때만 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