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홍소금 Nov 23. 2023

그러니까 우울증이죠.

양재천입니다. 세성비(세금 대비 성능) 짱이라고 생각하는 곳이지요. 

근처에 가성비 짱인 찜질방이 있습니다. 

오래된 친구를 불러냈어요. 몸이 마르는 느낌이 들지 않느냐? 몸에 수분을 공급하기에 찜방 처럼 좋은 게 없지 않느냐 하면서요.

1130에 만나기로 했는데 저는 일찍 갔어요. 양재천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서요.



사진은 묘해요. 실제 풍경은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고 멋진데 사진을 찍고 보면

아주 실망스러운가 (자주)하면 

아주 가끔은 실제 풍경은 그저 그런데도 사진은 넘나 훌륭할 때도 있어요. 

사진은 그럴싸 하지만(객관적으로는 아닐거예요)

양재천의 풍경은 여느 가을보다는 확실히 2프로 부족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것이 더 좋았어요. 부족한 모습이 도리어 친근하게 다가오더라구요.

 

이파리들이 아름다웠어요. 잠시 후면 떨어져 썩어질 텐데 말입니다. 

어딘가로 날아갈 꿈에 부풀어 있는 마른 잎을 보며 죽어지고 썩어지고 거름이 되는 것에 대해 생각했어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죽어지고 썩어지고 거름이 되는 인생에 대해서도요.

친구가 왔어요. 

-우리 너무 오랜만이지요?

-맞아요,우리 아들 결혼할 때 보고 처음이네요.

우리는 먹고 마시고 누워있다가 건강 돌멩이(천기토)에도 누웠지요.

-누워만 있지 말고 뒤집어 줍시다. 

친구는 뜨거워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어요.

-앞뒤로 골고루 지져야 몸에 더 좋을 걸요.

저는 좀 잘난 척하면서 엎드렸습니다. 

쌀쌀한데도 찜질방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요.

우리는 누워있는 채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었습니다. 

-저는 집사님이 5수해서 대학 간 게 젤 기억에 남아요, 어떻게 5수를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제가 인내의 끝판왕이죠. 무조건 참다 보니 사람들 앞에서 말도 못했어요. 말이 아예 안 나왔어요. 

-왜요? 왜 말이 안 나와요?

-그러니까 우울증이죠, 남편한테도 아무 말도 못했어요. 울기만 했다니까요.

-그럼 맨날 널부러져 있었겠네요. 

-맞아요. 집도 안 치우고 늘 쳐 누워있었어요. 제가 살려고 큐티했잖아요.

-저도 마찬가질 걸요. 아마 평생 우울증이 아닌가 해요. 

우울증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수 십가지도 넘었으니까요.

그런데 바쁘게 살다 보니 그 우울증을 앓을 틈이 없었어요.

우울증이 저한테서는 힘을 못썼다고나 할까요?

-저런, 그 집 우울증이 불쌍하네요.

-그러니까 집사님의 약재료는 5수가 아니라 우울증인 것 같아요. 집사님 얘기를 해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날 지요?

우리는 찜질방을 나와서 함께 낙엽을 밟으며 걸었습니다.

-죽어지고 썩어지고 거름이 되어 다른 사람을 살리는데 쓰임 받는 인생처럼 값진 인생이 또 있을까요?

-맞아요. 이 땅에서 잘 죽어져서 열매 맺는 복보다 더한 축복은 없지요. 

잘 밟히는 낙엽과 바짝 말라버린 풀이 살려낼 생명을 생각하며

집에서 우리를 밟아줄 누군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경쾌한 낙엽처럼 경쾌한 발걸음을 재촉했다지요.  

이래저래 아름다운 가을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