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연두야
벚꽃이 만발했단다. 그 다정하고 부드럽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으로 보는 이의 마음의 불순물을 씻어 주는 것 같아. 벚꽃을 해마다 보는 데도 올해 핀 벚꽃이 유난히 예쁜 것 같아, 희한하지?
연두야
오늘부터 큐티인 본문이 다시 욥기로 돌아왔어.
오늘 본문은 너무나 유명한 본문이라 믿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단다.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찬양에도 이 구절이 그대로 쓰이고 있을 정도야
욥의 이 놀라운 믿음의 고백으로 후세의 숱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위로와 은혜를 받고 살아났는지 몰라.
하나님은 어떤 환경에도 믿음을 잃지 않는 욥을 자랑하지만 (욥2:3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그 분의 최종 목적이 구원이라면 욥은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잘 알고 믿음으로 순종한 사람이 아닐까 해
욥은 자신이 받는 고난을 하나님이 자기를 단련하시는 것이라고 해.
하나님이 자기를 단련하고 나면 후에 자기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겠다고 하는 거지. 욥의 이말을 목사님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라고 했어.
하나님이 단련하도록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겠다는 능동적인 고백이니만큼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지. 예수님이 자신을 십자가에 능동적으로 맡기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니겠냐고?
그렇다면 나의 거룩과 성숙을 위해 제하여야 할 나의 불순물은 무엇일까?
연두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니?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카드 서두에 날짜를 쓰면서 알았어.
헛 결혼기념일이잖아. 흐음 그래도 감사해. 진심이냐고? 73%는 진심이야
그 말이 진심이 되게 하기 위해 엄청난 단련이 필요했지.
그때는 꿈에도 몰랐지만 하나님이 나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남편이라는 용광로를 마련하셨더구나.
그노무 용광로! 인간의 힘으로는 피할 수 없었단다. 하나님, 남편, 나 셋 중에 누가 가장 수고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우린 때마다 시마다 아찔한 수고들을 감내해야만 했어. 그리고 하나님 남편 나로 시작한 수고가 나중에는 아들과 딸, 우리를 둘러싼 환경까지 고생을 바가지로 해야만 했단다.
단련의 시작은 단연코 결혼식 날 부터라고 할 수 있어.
삼십 5년 전 그 날 결혼식을 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지 않았겠니? 그런데 제주도로 출발하는 공항에서 비행기도 타기 전에 내 인생이 지대로 꼬이는구나 했단다.
남편이 패키지가 계약과 다르다는 거야, 계약에는 신혼부부 패키지라고 했는데 공항에 가보니 신혼부부는 우리 밖에 없었거든, 담당자를 찾아서 엄청나게 따지기 시작하더라고. 나는 이제 와서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제발 그만두라고 했지. 남편은 신혼여행이 끝날 때까지 투우장의 황소처럼 씩씩거렸어. 호텔도 5성급이라 했는데 4성급, 식사도 가는 곳마다 엉터리였으니 남편으로서는 그럴 만도 했어. 남편이 충분히 화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나는 남편을 공감해 주기는 커녕, 제발 그만하면 안되겠니? 짜증만 냈단다.(속으로 내가 또0이와 결혼한 게 아닐까 했어)
23장 2절
오늘도 내게 반항하는 마음과 근심이 있나니 내가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무거움이라
욥이 반항하고 근심하는 마음을 하나님께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토로하는 구절이야, 어떤 말을 해도 들어 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봐.
나도 마음에 근심을 가득 안은 채 항변을 했지. 다만 항변의 대상이 완전 달랐어.
욥이 전능자 하나님께 항변했다면 나는 나와 성정이 같은 수준의 피조물, 남편에게 화을 참지 못하고 분출하는 항변이었어. 내가 그 때 남편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대화를 하자 였어. 나랑 이야기 좀 해. 대화가 필요해. 대화 안 할거야? 동백꽃에 나오는 점순네 싸움닭처럼 독이 올라서 말이지.
겁나 많이 싸웠어, 지치지도 않고. 저 개념땡이 없는 남편을 기필코 고치리라, 말도 안되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서 말이야. 미친 거지. 당연히 상처만 쌓는 패자 뿐인 싸움이었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단련이 시작되기에는 멀어도 너무도 멀었어.
23:13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욥은 하나님이 마음먹고 작정하신 일이라면 그 어떤 힘든 과정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 맡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지?
단련을 통해 옳고 그름이 없어지고 잃어버린 용기와 희망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역지사지의 마음, 나아가 원래는 내게 찾아 볼 수 없었던 이타심도 생긴 것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이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까지 내려오지 않을 때가 많단다.
가슴까지 내려 올 때는 기꺼이 적용도 해 보지만 대개는 머리와 가슴 의 중간 어디 쯤에 있으면서 오르락내리락해. 예배와 공동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란다.
내가 욥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의 신분인 건 확실하니까
하나님이 단련할 때에 욥을 생각하며 제련되어야 할 불순물이 무엇인지 잘 나누며 기도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