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박완서 선생님은 '글쓰기를 언제 시작하는 것이 좋은가' 라고 묻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삶의 여러 경험이 쌓여서 내안에서 이야기들이 웅성거릴 때'라고 답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40이 되어 첫 글을 썼지만 그전부터 당신 안에 이야기를 쌓고 있었다는
말씀도 하셨고
한국전쟁 때 이념갈등의 희생자로서 억울했지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는
그것을 글로 써서 원수를 갚아 주리라는
생각을 하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누군들 이야기가 없으랴. 내 안에도 웅성거리는 이야기가 있다. 요즘에는 나이가 들어선 지 부쩍 어렸을 적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웅성대기도 하고 속삭이기도 하고 겨우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바깥나들이를 하고 싶다는 시그널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목소리들은 내 앞에 더 급한 사소한 일들에 밀기거나 게으름과 불규칙적인 생활로 쉽게 묵살당하고 만다. 그 뿐인가 수많은 매체를 주름잡는 솜씨 좋은 실력파 글쓴이들에 스스로 위축되어 그만 주저앉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백일장이 열린 것이다. 백일 동안 무슨 글이든 하루도 빠짐없이 까페에 올려야 한다.
이것보다 효과적인 조임이 있을까. 이 핑계 저 핑계로 멀리하고 회피하고 미루고 주저앉고 안 쓰는 이 연약한 인간인 내게 백일장보다 확실한 시스템은 없을 것이다.
내 안에 쌓여있는 이야기들에게 볕을 쪼여 주자. 웅성거리는 이야기든 속삭이는 목소리건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마감이 오기 전에 어서어서 끄집어내야 하리라.
백일장의 깃발이 꽂혀서 펄럭이고 있다. 백일을 채우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달려야 한다. 백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는 심정으로 버티자!
과장된 초심으로 요란한 파이팅을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