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입니다. 날씨는 좋은데 청명한 가을 느낌은 나지 않네요.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 무더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아침에는 바빴습니다. 아침 늦게 부랴부랴 일어나 명절 음식을 시작했어요. 어제 하루 종일 밖에서 외식하고 영화보고 쇼핑하고 놀면서 내일 해야지 하고 미룬 탓입니다. 그래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 한 두 가지는 미리 했습니다. 지난 주에는 배추 김치를 했고 어제는 오이 김치를 만들고 갈비를 손질해서 양념에 재워 놓았습니다. 마늘도 왕창 까놓았구요.
아침에는 나물과 동그랑땡만 하기로 했습니다. 명절에 저희 집 시그니처 음식은 갈비찜과 동그랑땡입니다. 전에는 튀김과 잡채도 했습니다만 튀김용 커다란 오징어를 쉽게 구할 수 없게 된 후로는 동그랑땡과 애호박 전으로 축소 했습니다. 잡채와 부침개는 살찌는 음식과 거리두기를 시작한 뒤로 가뿐하게 패스하고 있습니다.
느지막히 일어나서 갈비찜 안쳐서 올려놓고 동그랑땡 반죽하고, 동그랑땡 구우면서 한 쪽에는 나물을 볶았습니다. 2시간 만에 한 상 차렸지요. 두 남자에게 밥을 차려주고 부드럽다, 맛있다, 고생했다, 고맙단 말을 들으면서 반찬을 쌌습니다. 명절에 혼자 있는 딸네 집에 배달가기 위해서요. '부르릉' 딸네 집에 도착해서 밥을 차려 주었습니다. 갈비찜이 하늘나라 맛이라고 하네요. 맛있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딸과 저의 오래된 용어입니다.
딸이 미리 준비해 둔 조각 케잌과 커피, 과일로 디저트를 했습니다. 오늘은 커피를 하루 종일 마시고 싶은데 하루 허용치가 딱 한 잔이라 딸네 집에서 마감했어요.(한 잔 이상 마시면 못 잠)
따로 떨어져 살아도 식구들이 잘 먹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사실 오늘은 제가 태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진짜 생일이지요.(가족들이 챙겨주는 생일은 지났습니다. 추석과 겹쳐서 주민등록에 있는 날짜로 생일을 쇠기로 정했거든요.) 올해 저의 생일은 60회를 맞았습니다. 환갑입니다. 생일이든 환갑이든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만 환갑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보니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엄마 생각이 많이 납니다. 엄마가 몇 살때 저를 낳았을까를 따져 보니 27세더라고요. 엄마는 추석날 저녁 무렵에 저를 낳았습니다.
엄마가 살아계실 때 저의 생일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저녁 때 쯤이면 낮에 일 다했겠네. 해산이 오늘 내일 한다고 봐 주고 그런 거 없을 때잖아."
"하모, 낮에 큰집에 가서 그 많은 손님 다 쳤지."
"집에서 낳았제? 해산 구완은 누가 했노? 언니랑 오빠는 누가 돌봐 줬노?
"해산구완이 어디있노? 애 낳고 3일 만에 장작패서 밥 해묵었다 카모 말 다했지. 아구 숭악(끔찍 징글과 비슷한 경상도 사투리)해라."
저는 어릴 적부터 엄마가 살아 온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하도 숭악해서 말도 꺼내기 싫다고 하셨지요. 제가 궁금해서 뭐라도 물어 보면
"니는 그런 게 뭐가 궁금하노? 어릴 때부터 어른들 앞에서 택(턱) 받치고 이야기 듣는 거를 좋아하더만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칬나?
"응, 어릴 때 엄마가 이야기 좋아하면 빌어쳐묵는다고 했던 말도 기억난다."
'빌어 먹는 다'는 용어 자체가 좀 거칠기는 하지만 우리의 경제활동이 다 밥 빌어먹는 것에서 출발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이야기를 좋하하든 그렇지 않든 말입니다. 어렸을 적에 엄마에게서 매일 같이 들었던 '빌어 먹을 년'이라는 욕이 욕일까 하는 생각 까지 들 정도 입니다. 열심히 일해서 밥 빌어 먹는 것이 뭐가 어때서? 물론 엄마의 '빌어먹다'는 쪽박 차고 집집마다 동냥 다니던 전통적인 의미의 거지를 지칭했을 것입니다만 저는 혼자서 '빌어먹을 년'은 '열심히 일해서 잘먹고 잘 살 사람'이라고 해석해 봅니다.
환갑과 일생 고생스러웠던 엄마의 삶과, 자식들은 제발이지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랐던 엄마가 했던 욕이 생각 나서 실없는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사실은 연휴에 뭐라도 써야 할 것 같고, 쓰고 싶어서 퍼뜩 생각난 이야기를 꺼낸 것 뿐입니다.
사실 이번 연휴에 조금 특별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연재하던 소설을 완성하려고 했지요.
저는 양쪽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서 갈 데도 없는데다가 장성한 자녀 둘은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아서 올 사람도 없지요. 쓰던 소설을 완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8화 까지 연재한 상태였고 올리지 않은 이야기도 몇 편 잠자고 있어서 퇴고와 남은 이야기를 써서 15화 정도로 마무리 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8화까지 썼지만 등장 인물 소개 단계였고 그 다음 화부터 오여사가 어떻게 직장생활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지를 본격적으로 쓰려고 했었습니다. 회원인가 동료인가, 친절사원으로 뽑힌 오여사, 수영장에서 만난 제자와 옛 동료, 미화여사님들의 얄궂고도 훈훈한 모습, 기관장과 오여사의 반전스토리, 새로운 기관장, 등 9화부터 암울한 사무실 분위기가 밝고 훈훈한 이야기로 진전 될 것이었습니다.
기대가 되었습니다. 힘든 오여사를 쓸 때는 저도 힘들었거든요. 배우가 작품을 찍을 동안에 작품 속의 캐릭터로 살듯이(드라마 전원일기 찍을 때 최불암씨는 명실공히 양촌리 농민회 김회장이었다 함) 쓰는 동안 자동으로 오여사의 마음이 되더라고요. 저는 소설가도 아니고 전업 작가도 아닌데 말입니다.
마치 강남8학군에서 1등 하는 학생이나 이름도 생소한 지방에서 1등 하는 학생이나 공부하는 모습을 놓고 보면 신기할 정도로 유사한 것처럼 (지방에서 1등하는 학생이 대치동으로 전학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치고 올라 오는 것을 여러 번 봤습니다.)
저도 소설을 쓰면서 어떤 지점에서는 전업 소설가의 마음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소설이 처음에 의도한 대로 써지는 것이 아니라 소설자체가 그 다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느낌이 들 때와 소설의 주인공이 겪는 감정을 그대로 느낄 때가 그랬습니다. 전업 소설가에 빗대서 쓰는 것이 죄송하지만 어쨌든 그랬습니다.
9화부터 밝고 훈훈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으니까 빨리 쓰고 싶어서 기대가 되고 연휴가 기다려졌습니다. 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글을 쓰는게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야기에 빠져서 현실적인 문제를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야기의 전환점이 될 9화를 앞두고 정신을 차리고 읽어보니 아찔하더라고요. 픽션과 넌픽션의 어디쯤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었는데 넌픽션의 수위가 너무 높은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떤 부분은 경계를 넘은 것이 명백해 보였습니다.
내릴 수 밖에 없었지요. 내려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소설 속 인물인 고상식처럼 상식 이탈자가 되면 안되는 거잖아요. 조금이라도 걸리는 것이 있으면 내리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마음이 후련했습니다. 잘했다 했지요. 잘 했는데 뭔가 허전했습니다. 연휴에 뭘하지? 왜케 불안하지? 나 중독인가? 습관이 무섭습니다.
계획했던 대로 9화 부터 계속 써서 서랍에 보관하면 되잖아,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돌아가지가 않았습니다. 소설을 막상 내리고 나니 그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이 확 달아나더라고요.
쉬지 못하는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연휴를 마냥 쉬는 것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쓰고 싶은데 뭘 쓸지를 몰라서 추석과 환갑을 소환하며 소설중단 후기도 덧붙여 보았습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연휴가 아직 남아서 너무 기쁘고 즐겁습니다.
작가님들도 남은 연휴 잘 보내시기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