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우리집에는 재봉틀이 없었다. 사실 중학교 가사 시간에 가정 선생님이 내준 재봉틀 과제를 받기까지 우리집에 재봉틀이 없는 지도 몰랐다. 재봉 과제를 해야 하는데 재봉틀이 없어서 어린 마음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남들은 다 있는 것 같은 재봉틀이 우리집에만 없는 것 같아 부끄러운 마음이 앞섰다.
동네에서 점빵이라 부르는 구멍가게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그 집에 가서 과제를 하기로 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보기만 해도 무서울 정도로 엄했고 친구 엄마는 바빴다. 용기를 내어 학교를 파하고 친구집으로 건너 갔다. 우리가 다니는 중학교는 걸어서 한 시간이 걸렸다. 학교를 파하고 친구집으로 건너가면 어둑어둑했다. 친구집에서는 식구들이 저녁밥을 먹고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무서워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쭈볏거리고 있으니까 친구 엄마가 재봉틀을 써도 된다고 허락해 주셔서 겨우 숙제를 했다. 천에 박음질을 하는 간단한 숙제인 데도 마음이 무척 어려웠다. 그 뒤에도 가사선생님은 몇 번이나 더 과제를 주셨다. 그 때마다 친구집에 가긴 갔는데 재봉 숙제 때문에 왔다는 말이 안 나와서 친구랑 그냥 놀다가 간 적도 있었다.
지금 같으면 과제점수 못 받는 것 쯤은 개의치 않겠지만 그때는 선생님이 주신 과제라면 무조건 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지라 재봉틀 없는 설움으로 마음 고생을 제법 했다.
당시에 우리집에도 00네 처럼 재봉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네의 처녀들이 시집을 갈 때 혼수로 재봉틀을 해 가는 것을 보며 나도 이 다음에 시집 갈때 혼수로 재봉틀을 해 갈수 있겠지 했다.
시대가 변하고 품도 안 들이면서 훨씬 저렴하게 기성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 재봉 바느질이 모습을 감추었다. 마을 처녀들도 혼수로 더 이상 재봉틀을 해 가지 않게 되었다. 그즈음에 뒷북처럼 우리집에 재봉틀이 들어왔다. 재봉틀을 갖고 싶은 마음은 나뿐 아니라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재봉틀이 들어오던 날의 엄마의 표정이나 엄마의 반응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재봉틀이 들어오고 나서 한 엄마의 행동을 보면 엄마가 재봉틀로 인해 얼마나 신났을지 짐작할 수 있다.
엄마는 쉴 새없이 재봉틀로 무언가를 박았다. 엄마가 재봉틀로 가장 많이 한 것은 남자 와이셔츠를 간편한 생활복으로 리폼하는 것이었다. 어디서 그 많은 와이셔츠를 구해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는 긴팔 남자 셔츠의 소매와 칼라, 길이를 잘라내고 잘라낸 곳을 박아서 간단한 반소매 셔츠를 만들었다.
가위로 도려내고 도려낸 곳을 박음질만 하면 되는 단순해 보이는 작업을 엄마는 심혈을 기울여서 했다.
리폼한 셔츠를 요리조리 뜯어보고 '이만해만 되겠지? 아닌가?' 하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시고는 착착 접어서
고모도 주고 친척 아지매에게도 주었다.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마루 한켠을 재봉틀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엄마의 즐거운 리폼시대를 함께한 재봉틀이었는데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언니는 재봉틀을 식탁 위에 올려 놓고 쓰고 있었다.
"언니야 재봉틀을 여기다 놓으면 형부는 밥을 어디서 드시노?
형부는 거실에 있는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신다고 했다. 언니가 거실에 있는 테이블을 써야 하지않냐고 하니
그러면 형부가 거실에서 티비를 보는데 방해가 될거라고 했다.
언니와 내가 한켠에서 소품을 만들고 있을 때도 형부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뜩잖아서 쓸데없이 음음거렸다.
"언니야 아무래도 내가 재봉틀을 배워야 할 것 같아, 한 대 주문해야겠다."
언니와 나는 둘 다 직장인이라 주말에 만났다. 웅이가 주문한 대로 샘플작업을 시작하며 그동안 나름 업무 분장도 이루었다. 내가 본을 뜨고 재단한 것을 언니가 주우욱주욱 박았다. 몇 번의 수정요구를 받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인간이 왜케 까탈스럽노?" 같은 토를 달지 않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감에서 눈과 손을 떼지 않고 일했다. 언니에게
"아지매야 좀 쉬었다 하자, 우리 이제 늙었다아니가, 주제를 알아야지, 무식하게 일하면 안 된다, 허리도 펴고 산책도 하고 오자" 라고 해 보았으나 언니가
"힘들면 너는 쉬었다 해라 나는 괜찮다"고 하는 바람에 쉴 수가 없었다. 덕분에 10점 가까이 되는 샘플을 빠르게 마무리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샘플이 거의 완성되어 마지막 한 점을 남겨 둔 시점에서 문제가 또 터졌다.
이번에는 재봉틀이 말썽이었다. 밑실이 자꾸 끊어진다고 했다. 언니가 북을 꺼내서 여기저기 살폈다. 청소도 다시 하고 실도 바꿔 끼워보았지만 여전했다. 나는 유투브 검색창에 '재봉실 밑실이 끊어질 때' 와 같은 단어로 검색한 화면을 보여 주었지만 수리 내용이 언니의 재봉틀과 상관이 없다고 했다.
"언니야 재봉틀이 왜 자꾸 말썽이고?"
"재봉틀이 늙어서 그렇다."
"얼마나 늙었는데? 우리보다 더 늙었나? 언제 샀노?"
언니는 15년도 더 전에 동네 벼룩시장에서 2만원에 샀다고 했다. 재봉틀 주인이 30년 쯤 쓰고 나서 벼룩시장에 내다 놨다고 가정했을 때 대략 45년 쯤 되지 않았을까 했다.
"아니 재봉틀 말만 들어도 징그럽다는 사람이 그런 고물단지를 왜 샀노?"
"내가 지나가는데 재봉틀이 '나를 데꼬가 나를 데꼬가' 하면서 나를 부르는 것 같더라고, 싫다고 일부러 외면하고 가다가 결국 다시 돌아가서 샀어. 재봉틀과 함께한 세월도 내 인생이다 싶어서 '내랑 가자' 하면서 샀지."
"시절인연인데 지꾸 고장이 나는 것보니인연이 다했나보다."
우리는 자꾸만 끊어지는 밑실 때문에 결국 샘플을 완성하지 못했다.
언니는 태연하게 "실도 술술 잘 풀리다가 끊어지는데 우리가 하는 일이 술술 풀리기만 하겠나? 샘플은 다음 주에 완성하자."했다. "승질도 좋다, 언냐, 당장 재봉틀부터 주문하자 제발."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