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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도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었다.

학습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

by 분홍소금

<일러스트 by Min>

아이들과 독서토론글쓰기를 할 때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잘 할 수 있느냐고 묻는 학부모님들께 글쓰기는 글쓰기로 훈련되므로 자꾸 써보는 것 밖에 별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었다.

글을 쓴 다음에는 자기가 쓴 글을 꼭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했다. 읽다 보면 스스로 재미없다고 느끼거나 자기가 써 놓고도 무슨 말인지 모를 때, 조금씩 고쳐 쓰다 보면 글쓰기가 늘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말은 그 동네의 아이들에게는 적절한 처방이 되지 못했다. 글을 느긋하게 쓸 시간도, 자기가 읽은 글을 찬찬히 읽어 볼 여유도 그들에겐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글쓰기는 다른 학습과 마찬가지로 그날 쳐내야할 숙제 같은 것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오직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어머니들은 자녀가 글을 잘 쓰기를 바랐지만 아이들은 글쓰기를 정말 지겨워했다. 특히 솔직하게 쓰는 것을 어려워하고 때로는 부러 쓰지 않으려고 했다.


내가 아이들과 함께 독서토론글쓰기를 함께 한 지역은 서울에서 교육열이 가장 놓은 지역 중의 한 곳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방면에 걸친 학원수업 혹은 개인 수업으로 날마다 해 내야할 학습량이 엄청났다.

영어와 수학은 물론이고 미술과 악기, 발레나 수영 같은 스포츠 활동, 그리고 책읽기와 글쓰기 수업, 각종 학습지 등 시간표에 적혀 있는 수업이 끝이 났을 때 비로소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부모님들은(주로 엄마)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보살폈다. 질 좋은 간식을 시간마다 내 주었고, 애정표현도 자주 해 주었다. 주말에는 강원도나 제주도에 함께 여행을 하며 그간의 고된 학습노동에 시달린 아이의 심신을 회복할 수 있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아이는 그런 부모님을 사랑했고 엄마는 아이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헌신적인 지원이 있음에도 아이들은 부모님이 바라는 만큼 썩 잘 해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아이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지나친 학습량을 버거워했다. 그리고 잘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했다. 자기가 게으르고 머리가 나빠서 잘 못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모든 원인은 부모님의 욕심으로 인한 과중한 학습량에 있다는 것을 아이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 리가 없었다. 부모님은 자기가 원하는 좋은 것을 사 주고 주말에는 여행도 하고 함께 놀아주는 나이스하기 이를 데 없는 분들이었으니까.


한계에 부딪힌 아이는 여러 가지 증상을 나타내었다. 무기력하여 어떤 것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거나, 이유 없이 분노를 폭발하거나, 심지어 선생님에게 욕설을 하기도 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엄마가 아이의 상황과 의견을 존중하여 시시때때로 조정하고 맞추는 경우도 있고, 아이가 이 모든 수업을 훌륭하게 해 내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도 대개는 엄마의 원함과 기쁨에 기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진실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엄마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며 엄마가 웃으면 아이도 웃고 엄마가 속상하면 아이도 속상해했다.

사실은 나도 오랫동안 그 엄마들 중의 한 명이었다. 다만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은 일하느라 아이들을 관리할 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손을 놓아 버린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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