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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편한엄마

by 분홍소금


-드디어 쉬는 거야?

-응

-대답이 어째 시큰둥할꼬?

-급한 일을 끝내서 쉬면되는데...

-현타 왔구나

-바로 그거야

-쉬지 못할 날이 오리니, 쉴 수 있을 때 푹 쉬어

-나는 확실히 쉴 때보다 달달 볶일 때가 더 행복한 것 같아

두 아이가 학창시절을 끝낸 지 꽤 되었다. 딸은 졸업을 하고도 평생을 고3처럼 산다.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한다.

반면에 아들은 학창시절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를 정도로 느긋하기만 했다. 공부도 안하고 그렇다고 다른 흥밋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구장창 게임만 해대었다.

나는 아들이 왜 그러는지 그 아이의 마음을 살피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면서 못마땅해 하며 질책을 했다.

그 중에서도 18번은 너가 '너 스스로 달달볶지 않으면 타인에 의해 볶이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였다. 엄마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에게서 다그치는 소리를 안 들으려면 스스로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잔소리를 하고 또 했다.

엄마라는 사람이 아들이 얼마나 힘든지 물어봐 주며, 괜찮다고 위로해 주지는 못할망정 별 미친 소리를 다 한 것이다.

한참 물류센터에서 알바를 할 때 아들이 나의 과거 전적에 쐐기를 박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들은 그 때 물류센터에서 스티로폼으로 만든 포장 박스를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스티로폼에서 나는 소리인데 그 소리를 날마다 들으니까 학교 다닐 때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났다고 했다.

-엄마가 무슨 말을 했는데?

-내가 공부 안하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스티로폼 만지는 일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지. 생각 안나나?

-기억이 전혀 안 나는디.

-엄마 말이 현실이 되었다고 생각하니까 웃기더라.

-내가 그리 흉한 소리를 했나?

잔소리하고 밀어붙인다고 아이들이 내가 바라는 대로 따라 준다면 잔소리를 마다할 엄마가 없을 것이다. 엄마들은 그 방면에 너도나도 전문가이다.

하지만 잔소리, 충고, 옳은 소리, 정답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숱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깨달아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달달 볶는 자녀이든, 느긋하기 짝이 없는 자녀이든

이제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해 주고 지켜봐 주며, 그들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편안한 엄마가 되고 싶다.

아이들 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로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지지하며 응원해 주는 내편인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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