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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맑건만

해피앤드 금요일

by 분홍소금
하늘은 맑건만.jpg

오늘은 금요일이다. 아침부터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오늘만 일하면 내일은 쉴 것이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사무실 뒷 편에 잘 닦여있는 산책로를 따라서 걸었다. 넉넉한 품을 자랑하는 우람한 나무와 자유롭게 가지를 뻗고 춤추는 잡목과 낮은 곳에서 겸손하게 피어있는 작은 꽃들까지 모두가 금요일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새들도 아침부터 뭐가 좋은지 분주하게 날아다녔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나를 환대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오늘은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노래하고 싶었다.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한데, 사무실 뒤편에 잘 조성된 산책로를 걸어가며 이런 날이 올 줄은, 이런 호사를 누리는 날이 올 줄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구나,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았을 뿐인데 오월 찬란한 봄날에 웬 떡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그러나 퇴근 무렵에 아름답고 찬란했던 금요일은 산산히 부서졌다. 웬 떡이 떨어졌던 같은 하늘에서 이번에는 웬 날벼락이 쿵하고 떨어졌다.






나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속으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직원이 와서 민원이 있다고 알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 일에 대해서 민원이 들어온 것이다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면 나의 새파래진 얼굴을 모두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공공기관 근무자가 가장 기피하는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수요일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고 잘못을 했으면 진심으로 사과를 하며, 다음부터 그러지 않겠다고 하면 해결되는 문제인데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나라고 지목을 하니, 모함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분이 왜? 도대체 나한테 왜?




민원인이 자기를 부끄럽게 만든 것이 나라고 콕 찝어 말했다고 하면서 그 분이 거짓말을 했겠냐고 할 때는 정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분인데, 내가 자기를 부끄럽게 했다니, 무엇을 어찌했는지도 자세히 말하지 않고 무조건 그랬다고 하니까 미치고 폴짝 뛸 노릇이었다.





인생을 살다보면 잘 닦여지고 아름답게 조성된 길을 갈 수도 있다고 이런 날이 불쑥 찾아와 뜻하지 않는 위로와 기쁨을 누릴 수도 있으니 어떤 길이든 각자에게 주어진 길을 계속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다. 바위덩어리가 가로막고 돌부리가 다리를 걸어도 다시 일어나서 걸으면 된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이런,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바위덩어리 앞에 서고 말았다.





사람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해석이 되지않은 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일까? 앞으로 올 더 큰 일을 막아주시는 하나님, 나를 낮추시고 겸손을 가르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으리라. 그렇다면 내가 지혜롭게 잘 당하게 해달라고. 그래서 이번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내 앞에 놓인 바위를 잘 타고 넘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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