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없는 일격에 정곡을 꿰뚫렸다.
사우나가 연상될 정도로 불쾌지수가 치솟던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다.
든든한 점심 식사 이후 혈당 스파이크로 정신이 몽롱해질 무렵,
열 명 남짓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분노조절 집단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주로 폭력 범죄나 병동에서 충동 조절에 어려움을 보이는 환자들이 그 대상이었다.
어느 때처럼 한 주의 안부를 묻고, 화가 났던 일은 없었는지, 있었다면 분노 점수가 몇 점까지 상승했는지 과제를 확인한다.
그렇게 각자의 분노 에피소드를 나누고, 당시 어떤 대처가 필요했을지 의견을 나눈다.
그리고 순조롭게 다음 주제로 넘어가려는 순간,
한 환자가 해맑은 얼굴로 물었다.
그럼 선생님은 화를 안 내십니까?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어떤 영화의 명대사처럼,
악의 없는 해맑은 질문이 정곡을 꿰뚫고 지나갔다.
그 효과는 탁월했다.
아마도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표현대로라면,
나의 마음속 감정 컨트롤타워 정중앙에 위치한 '대장' 감정의 자리는
두 말할 것 없이 빨갛게 달아오른 '버럭이' 차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마음속에 불이 붙었고,
'욱'한 감정이 종종 겉으로 드러났기에
마냥 떳떳하게 결백을 주장할 수는 없었다.
한 마디로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이다.
/
돌이켜보면 버럭이와 나는 오래전부터 꽤나 친숙한 사이였다.
뭔가 납득되지 않는 상황은
에둘러 넘기기 보다 요목조목 살펴야 했고,
일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으면,
답답한 마음에 괜히 나섰다가
그 일을 떠맡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마음은 매번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그때마다 버럭이는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마음속 불이 옮겨 붙은 날은
미숙하고 날 선 언동이 상대와 나를 가리지 않고 오갔고,
시간이 지나 마음이 진정된 이후에는
필히 후회와 자책이 뒤따랐기에
스스로 분노관리 프로그램 진행자가 아니라
프로그램 참가자가 적합하겠다고 여긴 적도 있던 터였다.
어떻게 하면 마음속 버럭이의 자리를 빼앗아
다른 감정을 앉힐 수 있을까? 하는
극적인 상상을 해봤을 정도였다.
/
과연, 나의 마음에서 버럭이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까?
단순 명료하게 답을 한다면,
지금의 나는 그 선택이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태껏 부당하게 여겨지는 상황에 물러서지 않고,
주변에서 꺼리는 일도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것.
엄두가 안나는 어려운 문제를 만나더라도 도전할 수 있고,
부끄러움을 무릅쓰더라도 당당히 소신을 밝힐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매번 마음속 버럭이가 앞장서 길을 밝혀준 덕분이었으니까.
대게 우리 삶에 중요한 많은 것들이 그런 것 같지만,
돈, 시간, 재능, 관계, 감정..
중요한 것은 이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아닐까.
그날, 프로그램 중 해맑았던 환자의 질문엔
이처럼 장황하게 설명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다만, 우리 안의 버럭이가 독이 되지 않게,
그래서 자신과 타인을 지켜내면서
우리가 이곳에서 다시 만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도록
진솔한 마음을 담아 고백했던 것으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