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축복

by 박일규

입을 가벼이 머금으며 소리 내는 '잠'. 차가우면서도 시원 서늘한 이불이 부드럽게 나를 머금듯,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단어. 하지만 잠은 단어로 느끼기보다는 성취해야 하는 것!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몸에게 잠을 허락받아야 잘 수 있다. 하지만 예민한 나의 몸은

나에게 잠을 쉽게 주지 않는다. 정말 쉽게 주지 않는다.


지금부터 내가 겪는 잠의 과정을 간단히 말하려 한다. 대부분의 글이 공감을 필요로 하지만 나는 이 글이

부디 공감되지 않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잠은 축복이므로.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자 허우적거리며 낮을 보낸다. 오늘은 어떻게든 일찍 누워서 깊은 잠을 자겠다고 오늘 잘 나의 잠을 걸고 나에게 약속한다. 보통은 피곤함을 느끼고 싶지 않지만 이때만큼은 피곤함이 이불에 누울 때까지 계속되기를, 오히려 더 커지기를 바란다.


집에 와서 하루를 마칠 준비를 하고 무언가를 하다 보면 풀린 눈꺼풀이 이제 잠을 자라고 말해준다. 그러면 나는 잠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놓고 갈 선물을 기대하며 크리스마스 이브날 잠을 자러 가는 7살의 나처럼. 나에게 이제 깊은 잠은 크리스마스의 선물처럼 귀중하고 소중한 것이 되었다.


처음 이불의 서늘함을 느끼며 몸을 뉘었을 때는 몸에 힘이 스르르 빠진다. 코로 들어오는 이불 냄새도 나를 잠자게 한다. 분명 잠을 자게 하는 냄새가 있다. 엄마가 내 귀를 파려할 때, 내가 엄마의 다리에 머리를 붙이고 누우면 맡을 수 있는 냄새. 어쨌든 푹신한 이부자리에 눕고 그런 냄새를 맡으면 오늘 했던 것들과 내일에 대한 것들, 재미있거나 지루하거나 짜증 나거나 하는 모든 것들이 이제는 조금씩 나와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며 (그 어떤 것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나는 잠에 빠져든다.



'아, 오늘은 빨리 자는구나.'

기쁨의 잠. 오늘의 피곤들이 내일 생각나지 않게 해 줄 잠.



하지만 이 생각이 든 순간, 내 몸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아주 희미하게 느껴진다. 이 느낌 때문에 정신이

아주 조금 돌아온다. 달콤한 잠을 빨리 자기 위해서는 이때를 놓치면 절대 안 된다. 정신을 차리고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나는 이 순간만은 정신을 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이미 잠에 한발 늦었다.

정신이 완전히 돌아온다.

정신이 돌아온다기보다는 잠이 돌아갔다고 하는 것이 맞으려나.


이때부터는 나에게 손과 발끝에서 어떤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몸이 나에게 감각들을 밀어 넣는다.

'오늘 모르고 커피를 마셨었나?'


단지 잠을 자기 위한 시간만 앞에 있으니 나는 팔과 다리의 힘을 빼보려고 하지만 힘을 빼려 할수록 오히려 점점 더 내가 느끼는 손과 발끝의 감각이 커지기 시작한다. 이 감각들이 차츰차츰 내 온몸에서 느껴지기 시작하면 아까 잠에 빠져들 때는 흐려지던 내 머릿속의 생각들(재미있거나 지루하거나 짜증 나거나 하는 모든 것들)이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한다. 방금 전까지 시원하게 닿았던 이불이 어느새 뜨거워져 있다. 기분 탓이 아니라 이때는 방의 공기도 달라져 있다. 나의 예민함이 일어난다. 나의 몸은 나에게 잠을 쉽게 주지 않는다.


내 안의 좋은 감정들(잠에 대한 희망과 기대)이 순식간에 나쁜 감정들로 바뀌는 이 찰나는 또 다른 시작이다. 누군가는 하루를 마치고 잠을 자고 있으니 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잠을 잘 수 없으니 밤이라고 할 수 없는, 그렇다고 낮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시간의 시작.


이제 나는 방금 전까지 행복을 주던 이불 안에서 잠은 잘 수 없고, 몸이 말하는 감각만 느낄 수 있다. 이건 내가 나의 주위 세상 모든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는 이어서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들까지 나에게 해결이나 결론을 요구하고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시작한다.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지고 이게 내 잠을 더 몰아낸다. 방안은 어둡지만 나는 이미 새파랗게 깨어있다. 이 순간이 어느 날은 고맙게도 예술적 영감을 주어 설레는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글을 써본다.

‘오늘은 나에게 선물을 주는구나.’


이 글은 그 시간에 나왔다.

하지만 다음날 새로운 마음으로 지난밤 썼던 글을 다시 보면 조금이라도 빨리 잠을 잘 수 있도록 그냥 자리에 누워있던 게 더 나았을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계를 보니 내가 잘 수 있는 시간은 4시간 30분. 누워서 짧아져 가는 예상 수면 시간을 생각한다. 입과 목이 메말라간다. 이제는 오늘의 피곤이 아니라 내일의 피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목이 말라 지금 내 상태처럼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얼마 있다 화장실에 갔다 오니 이제 정말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어떤 노력을 해야 잠을 잘 수 있을지 생각한다.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인 잠인데. 아기 때는 마음대로 할 수 있던 것을 어른이 돼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기처럼 자고 싶을 뿐이다.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몸에게 부탁을 한다.


‘이제 좀 재워주는 게 어때?’

‘......’


몸은 당연히 말이 없고 이 말 없음은 나를 더 예민하게 만든다.


한계를 느낀 나는 ‘제발 잠 좀 재워줘’라고 내 몸에게 소리를 지르고 이후에도 이 외침을 몇 번인지 셀 수 없이 계속한다. 몇 번의 외침과 또 몇 번의 생각 끝에는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잠을 깬 내가 작은방 안에 누워있다. 나의 짧았던 밤이 어느새 끝나 있다. 눈은 뻑뻑하고 입안은 텁텁하며 속은 메스껍다. 다시 침대로 가뿐히 쓰러지고 싶지만 허우적거리며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커튼을 열어 활기찬 햇볕을 피곤한 내 몸에 닿게 하면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새롭지만 피곤한 하루. 몸이 밤새 힘을 써서 지금은 힘이 없다. 오히려 잠을 더 자라고 한다. 나는 오늘 자고 내일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 자서 내일 일어난다.



불면증이라 하기엔 가볍고 뒤척임이라 하기엔 무거운 나의 잠.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 글을 읽는 분이 오늘 밤은 쉽게, 깊고 깊은 잠에 빠져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