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박일규

겨울밤, 우울함을 느끼며 혼자 길을 걸어갈 때면 나의 마음을 좋게 해 줄 것을 찾기 힘들다.

내 손이 많이 차가워 따뜻한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있어도 손의 차가움이 잘 녹지 않고 신발은 이미 얼어있다.

그나마 달이 뜨면 조금은 기분이 나아지지만 달도 없으면 겨울밤의 차갑고 어두운 공기가 찐득 텁텁하게 느껴지며 가로등 불빛이 너무 밝아 눈이 아파진다. 내 검은 그림자가 가로등에 비추어져 바닥에 늘어진다.

낮의 뜨거움이 수그러든 여름밤은 사람에게 밖으로 나가게 할 활기를 주지만 겨울밤은 그냥 더 춥기만 해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만든다.



내 우울한 그림자를 보지 않으려 고개를 들고 걸어가려 하는데 갑자기 눈이 온다. 하얀 눈.

눈은 어른 아이 모두에게 설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아니 어른도 아이로 만들어버리고 나 역시 눈의 분위기 속에서 아이가 되어 마음속으로 눈과 손을 잡고 빙그르르 춤을 춘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장난을 치려 뛰어다니고 눈에서 뒹굴고 있는데, 눈이 내리는 이때만큼은 아이들이 부럽다. 내가 지금 저렇게 아이들처럼 논다면 주위 사람들이 나를 못 본 체할 거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어른의 품위를 지키며 천천히, 하지만 눈이 내리는 리듬을 헤아리며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신나하며 걷는다.

내 어깨에 눈을 조금씩 쌓으며.

내리는 하얀 눈에 번지는 가로등 빛은 이제 내 눈에 부드럽게 느껴지고 내 그림자는 눈 때문에 한결 하얘졌다.

까만 밤하늘과 하얀 눈의 대조처럼 지금 내 기분은 방금 전 눈이 없던 기분과 정반대이다.


'너에게 이 눈을 보여주어야겠다'


그래서 나는 어깨 위의 눈이 떨어지지 않도록 느리게,

하지만 너에게 서둘러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빠르게 집으로 걷는다.

잠깐 멈춰 저 위에서 빠르게 떨어지는 눈 하나를 보는데,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은 보통 나를 어지럽게 하거나 정신없게 하지만 눈은 그렇지 않다. 떨어지며 코 끝에 살짝 닿는 눈을 보니 비와 다르게 눈은 언제나 계속 맞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속으로 빙그르르 추던 춤이 조금은 몸으로 나오려 한다. 전세계의 겨울 왕국에 사는 사람들은 다들 춤을 잘 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살짝 힘을 주어 차분하게 걷는다.


그런데 계단을 올라 집 앞에서 어깨를 보니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눈은 어느새 다 녹았다.

축축해져서 차가워진 어깨처럼 눈으로 달아올랐던 내 기분이 조금은 식고 아쉬운 마음과 시무룩한 표정을 가지며 현관문을 연다. 손으로 잡은 문 손잡이의 차가움을 느끼고 나는 더 차가운 아쉬움을 느낀다.


그리고 문을 열어 내가 너를 본 순간, 나는 내가 눈 때문에 행복해진 게 아니란 걸 깨닫고

지금 당장 같이 나가 내리는 눈을 함께 맞자고 말하며 차가운 나의 손으로 따뜻한 너의 손을 잡는다.

나의 손은 어느새 약간의 온기가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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