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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반짝이는 눈빛의 뜨개 할머니!

좋아하는 것을 이어가며, 내 삶을 사랑하는 할머니가 되는 꿈

by 삶을짓다

어느 날 시윤이가 물었다.

“엄마, 엄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그리고는 신나는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엘사가 되고 싶어!”

역시 아이의 생각에는 그 어떤 제한도 없다.


이 질문이 갑작스럽지는 않았다.

나도 스스로에게 많이 던지는 질문이니까.


초·중·고 12년을 지나, 휴학 한 번 없이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예정대로 2년간 임용고시를 준비한 뒤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때때로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세상이 정한 기준에 맞춰 나름 성실하게 살아왔다. 교직이 적성에 잘 맞았기에 이 삶에 대한 큰 불만도 없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하게 된 건 아이를 낳은 이후였다. 출산을 두 달 앞두고 이사를 하고 학교를 그만뒀다. 일했던 학교로 다시 가기엔 물리적 거리가 너무 멀었고, 친정과 시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남편 직장 때문에 자리를 잡으며 아이 양육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친구도, 직장도 없이 처음으로 ‘소속’이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그동안 묻고 살았던 질문들이 다시 떠올랐다.


‘나 이제 뭐 하지? 나는 뭐가 되고 싶지?’


지난 5년간 이 문장은 내게 아주 중요한 화두였다. 학교로 돌아가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 뭘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찾으려면, 내게 찾아오는 기회들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모두 시험해 봐야 했다.


출산과 동시에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기였다. 하지만 온라인의 가능성이 확장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기회였다.


운영하던 블로그를 이어가며 집 안에 갇힌 나와 세상을 연결했다. 자기계발 커뮤니티에 참여해 줌으로 강의를 듣고, 소모임을 운영하고, 독학으로 익힌 영상편집과 노션으로 스터디를 열었다.


그렇게 36개월간의 가정보육이 끝나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했을 무렵 나는 완전히 소진됐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서 그토록 원하던 내 시간이 생겼는데 6개월간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무기력이 극에 달했다. 찾아오는 모든 기회를 시험해보고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 되겠다는 나의 완벽해보였던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아이의 낮잠 시간을 쪼개 쓰며 찾아오는 기회를 마다하지 않고 육아와 가사, 진로 탐색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는 이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르겠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제 겨우 아이가 없는 시간이 생겼는데, 이제 세상으로 다시 날아올라야 하는데, 나는 일상생활조차 간신히 해내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행동 없이 속만 끓이는 상태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게 내가 내린 결정이었다. 나는 과연 죄책감 없이 쉴 수 있는 사람인가, 그게 궁금했다. 처음엔 잘 안됐다.계속해서 불안했고, 무언가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낯설고 두려웠다. 그렇게 불안에 갈팡질팡하는 시간을 1년쯤 보내고 나서야, 나는 조금씩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동안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몰랐던 스스로와 다시 친해지는 시간을 2년 정도 보내고 나서야 나는 나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사랑한다. 시간이 생기자 내 몸과 마음을 돌보기 시작했다.

전에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운동과 명상을 시작했다.


나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요리, 뜨개, 영상편집 같은 취미가 내 삶에 더욱 깊숙이 자리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나누는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싶어서.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나는 비로소 미래의 내 모습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반짝이는 눈빛을 간직한 뜨개 할머니가 되고 싶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세상의 아름다운 면면을 포착하고, 나의 행복을 위한 취미에 열심인 할머니가 되고 싶다.


뜨개가 평생 취미가 될지 아닐지는 나도 모른다. 피아노 할머니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여행 할머니가 될지도 모르지. 중요한 건 좋아하는 것이 있는 할머니가 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하는 행복을 기꺼이 누리는 것.그렇게 좋아하는 것들로 삶을 채우고자 하는 사람들과 영감을 나눌 수 있는 삶을 이제는 그릴 수 있다.


이제는 아이의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엄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엄마는 내 삶을 사랑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

반짝이는 눈빛으로 즐겁게 세상을 살아가는 뜨개 할머니가 되고 싶어.”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고, 릴스를 만들고, 뜨개를 하며 뜨개하는 할머니가 되는 꿈을 향해 한 발짝 더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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