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만 원짜리 옷을 뜨는 기쁨에 대해
『휴식 찾기의 기쁨』이라는 책에 소개된 수도사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번아웃에 대한 연구를 위해, 번아웃이 절대 없을 것 같은 집단인 ‘수도사’를 연구했더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수도사들은 생각보다 얼리 어답터였다는 것이다. 느리게, 고요하게 현재를 살아갈 것만 같은 그들이 효율을 추구한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기도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단 한 가지, 그들이 효율을 따르지 않는 유일한 영역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기도였다. 효율성을 따진다면 생략할 수 있는 수많은 절차들을 그들은 굳이 지켜가며 기도를 했다.왜냐하면 기도는 그들 삶의 기둥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소개하며 작가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 삶에서 단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은 비효율은 무엇인가요?”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미 짐작했겠지만, 내게 그건 ‘뜨개’다.
온라인 쇼핑으로 옷을 구매하면 탭 몇 번이면 간단히 끝나는 일을 나는 굳이 실을 사고,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더해 떠내려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때로는 야근(?)까지 해가며 말이다.
옷 한 벌을 뜨는 데 드는 시간은, 매일 2시간씩 뜬다고 해도 한 달 반쯤. 이조차도 소매가 없고 두꺼운 실로, 간단한 무늬로 뜰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실제로는 ‘푸르시오’(잘못 떠서 수정하는 것)를 여러 번 해야 하니 이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내 시급을 계산하기 쉽게 최저시급보다 낮게, 1만 원으로 잡아도 1만 원 × 2시간 × 45일 = 90만 원.
여기에 실값 1만 원(나는 주로 다이소 실을 쓴다)을 더하면 91만 원. 내가 만든 니트는 최소 한 벌에 91만원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니트의 퀄리티는, 클릭 몇 번으로 산 니트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 객관적인 기준에서 본다면 틀림없이 못하다. 완성하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실수가 늘 뒤늦게 발견되곤 하니까. 그러니까 옷을 떠서 입는 다는 건 그 행위로만 보면 세계 최강의 비효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손끝에서 자라나는 편물을 보는 즐거움, 스스로 옷을 만들어냈다는 뿌듯함, 그리고 내가 만든 옷을 직접 입는 기쁨은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 다시 말해 이 기쁨을 알게 된 이상, 나는 도저히 뜨개를 포기할 수가 없다.
내 삶을 세워주는 비효율은, 뜨개다.
당신의 비효율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