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가고 싶어 하는 회사 그만두고 인도로 떠납니다
국내 대기업 본사 및 해외 지사, 사모 펀드, 벤처캐피털, 스타트업, 해외 빅테크, 상장했다가 폐지된 기업 등 10년이 되지 않는 경력 기간 중 이렇게 다이나믹하게 커리어를 꾸려본 사람은 몇 안되지 싶다.
하지만 이 모든 경험 끝에 결국 내가 선택한 길은 나만의 사업이다.
많은 이들이 그러듯.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1년간의 화려했던 MBA 생활,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난 다양한 국적의 수많은 친구들이 나의 사고방식, 가치관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줬던 것 같다. 마지막 학기에 Career Development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이 MBA 과정이 끝나면 회사에 가고 싶은지, 사업을 하고 싶은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40명 인원에 나를 빼고 모든 친구들이 다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결론적으로는 5-10명 이내만 사업을 시작하고, 나머지는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 높지 않은 임금을 받고 스페인에서 취직을 했다.
나는 우리 반에서 가장 빨리 취업을 했다. 삼성전자 스페인, 그리고 큰 영국계 서치펌.
후자의 경우 무려 사이닝 보너스도 주고, 연봉 및 성과급도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한국에 빠르게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스페인에 남을 수 있는 삼성을 택했더랬다.
모든 친구들이 축하를 해주었지만 은근 질투의 시선도 없지 않았다. (한국인이라서 그 니치마켓을 잘 공략해서 된 거라는 둥.. 라띠노들은 스페인어가 모국어인데 스페인에서 생활하고 취업하는데 큰 이점이 있는 거 생각 안 하나?)
그 친구들은 모른다.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물론 알 필요도 없지만)
임원 및 실무진과의 영어 및 스페인어 면접, 한국 주재원과의 심층 한국어 전략 면접 등 긴 과정을 거쳐 무선사업부에 합격을 했고, 그래서 한국의 좋은 오퍼를 거절하고 삼성 입사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합격 발표 다다음날 연락이 오더니 내부 지원자가 생겨 어쩔 수 없다며 갑자기 합격을 취소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러더니 다른 부서에서 뽑는 포지션이 있으니 공휴일이었던 그다음 날의 다음날 바로 면접을 보러 오피스로 올 수 있냐고 하더라. 대기업이 맞는지마저 의심스러운 프로세스였다.
가서 두 부서에 대한 면접을 봤다. SCM 팀과 TV사업부 팀. 둘 다 좋았는데, SCM은 공장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고 스페인어와 문화가 탑 레벨이어야 해서 안 됐고, TV 사업부에 들어가게 됐다. 5월 말 기말고사만 마치고 6월 3일 월요일부터 바로 출근하는 걸로. 롤러코스터였다. 감정적으로도.. 정말 내가 스페인에 이 모든 걸 타협하면서 이렇게나 간절하게 있어야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2.5개월 후인 8월에 그렇게 어렵게 입사한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 들어왔다. 나에게 주어진 일의 수준, 스페인의 게으른 업무 문화, 그 안에 갇혀 있는 한국 사람들의 사고방식, 연봉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바라는 엄청난 커밋먼트, 삼성이라는 것에 대한 too much 한 자부심. 모두 나와는 맞지 않았다. 이렇게 살 거면 스페인에 뭐 하러 사나 한국에 살지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다.
MBA를 졸업하고 내가 단순 업무를 한다는 게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 사이에서 팀을 리딩하고 작업 퀄리티와 능력, 효율성으로 인정받고, 그리고 정말 단짝 친구들을 사귈 만큼 이들과 가족과 같은 사이가 될 수 있었는데, 그리고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단순히 스페인에 살고 싶다는 것과 삼성이라는 기업의 네임 밸류 때문에 내 능력을 과소 평가하는 곳에서 일할 수는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을 해봤다. 나의 능력을 인정해 주고, 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는 업계와 회사에 가고 싶었고 그러려면 한국에 가야 했다. 기존에 내가 잘하고 인정받았던 세일즈 업무의 연장선이어야 내 밸류 어필이 가능했다. 하지만 내가 보람을 느꼈던 일을 하고 싶었고, 그건 다양한 회사들과 고객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그리고 외부 파트너로서 그 성장 단계에 기여하는 일원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찾게 된 일이 VC와 액셀레이터였다. 삼성에 있는 동안 두 군데에 지원을 했고, 두 군데 모두 2,3차 면접에 가게 됐다. 그리고 삼성을 그만두고 한국에 가서 스페인 워홀 비자를 받았다. 두 군데 다 되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되고 그곳이 나에게 맞는 곳이라는 판단이 들면 가고, 여차하면 스페인에 다시 돌아올 심산이었다.
결국 한 곳에 최종 합격을 했고, 회사와 협의를 하고 나는 스페인에서 한 달 동안 더 머물다가 한국으로 돌아가 10월 28일에 입사를 했다.
정말 배울 것이 많았고 너무나 신났다. 이 업계는 처음이고 꽤나 폐쇄적인 금융권 분위기라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하나하나가 흥미로웠다. 연봉도 좋았고 처우도 매우 좋았다. 소위 모두가 오고 싶어 하는 업계, 회사인 만큼 다니는 직원들의 콧대도 높았다. 하지만 내 비즈니스가 아니라서 열정이 끌어 오르지 않는다는 걸 느끼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정말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사람인가? 전 회사에 4년 반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정말 코로나 때문이었나? 아니면 스페인이 나를 바꾸었나? 아니면 MBA가? 1년도 안 되어 두 번째 퇴사를 결심할 때 정말 많은 고민과, 자괴감까지도 들었다.
하지만 서른이 된 지금 이제는 나를 조금은 더 알게 됐다. 이런 생각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 이상 더 여기에 있어 봤자 산소호흡기를 붙이고 있는 환자의 신세이다.
나는 인도로 떠난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풀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