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전사들.

우리가 나아가는 이유

by 성북구 비둘기

전역하면 글을 쓰겠노라 다짐했었다. 역시나 가벼운 마음이었는지 그 마음은 금세 잊혔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과 조바심이 나의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고, 집 앞 작은 식당에 알바를 다니기 시작했다. 나름 바빴다. 아침에 일어나 엄마와 가벼운 아침을 먹고 집 앞 헬스장에 운동을 다녀와 알바 갈 준비를 하고, 알바가 끝나면 집에 와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고 난 그런 칭찬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내 다짐은 점점 잊혀졌다.


어느새 나에게 복학이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조금 두려웠다. 그래서 난 규칙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고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부여했다. 나는 그 계획을 지켜야만 했고 장남이자 오빠라는 책임감이 그 계획을 지키는 걸 도왔다. 뿌듯했다. 이제야 제대로 공부하는 것 같았고 규칙적인 삶을 사는 내가 대견했다. 아침에 일어나 드립 커피를 내리고 세면을 한 뒤 수업을 들었고, 수업을 다 들으면 노트를 정리하고 복습을 했다. 복습이 끝나면 집 근처에 산책을 다녀와 저녁을 해 먹고 남은 과제를 했다. 그렇게 점점 잊혀졌다.


이제는 중간고사가 말도 없이 나에게 다가왔다. 긴장되고 불편했다. 그래서 난 공부하는 시간을 늘렸고 그렇게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공부를 나름 열심히 했다. 힘들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난 열심히 잘 살고 있으니까. 규칙적이고 바쁜 삶, 그것이 내가 원하던 삶이었다. 그렇게 잊혀졌다.


첫 시험을 치는 날, 실수였는지 우연이였는지 운명인지 뒷 페이지에 있는 두 문제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내가 뒷 페이지의 두 문제를 확인하는 순간 시험은 종료되었고 나는 멍해졌다. 그래서 난 자책했다. 그렇게 열심히 해놓고, 그런 기본적인 것도 확인 못한 머저리. 너무 아팠다. 그래서 난 남 탓을 시작했다. 어젯밤에 연락 온 친구를 탓했고, 시험 문제가 몇 문제인지 알려주지 않은 교수님을 탓했다. 그러나 결국 화살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고 난 하루 종일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러다 새벽 2시쯤 문득 든 생각 '나는 왜 살지?'. 원래 자책이었지만 이내 의문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난 다짐했다.


교회를 나갔다. 처음 보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 낯설고 긴장됐다. 그래서 난 아무렇지 않은 척했고 사람들에게 나름의 방식으로 다가갔다. 즐거웠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고민을 경청했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편하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사람을 만났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대단했다. 그날 난 집에 가서 한참을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나에게 그건 참 어려운 일이었다.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는 적당한 중산층 집안,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적당히 공부를 했고 그렇게 대학을 진학했다. 남들이 다 하길래 공부도, 대학도 모두 해야만 하는 일인 줄 알았고 그렇기에 그냥 흘러가는 대로 흘러왔다. 그래서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굳이 서울로 대학을 간 이유도 하고 싶은 걸 찾기 위해서였으니까. 그렇게 난 다시 다짐했다.


내 주위에 하고 싶은 걸 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났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하고 싶은 걸 하는 건 당연한데 그런 사람들처럼 되고 싶은데 나는 왜 그 시작이 참 어렵나. 이렇게 망설이는 내가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에겐 정말 힘든 일이었다. 하고 싶은 게 처음 생겼으니까. 그러니까 난 하고 싶은 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좋아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그저 마음 한 구석에 품고 해야만 할 것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기도했다. 나를 써달라고, 나에게 용기를 달라고, 나를 도와달라고 며칠을 기도했다. 그렇게 난 굳게 다짐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을 하기 위해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빌 게이츠도, 워런 버핏도 그건 알 수 없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이유 속에서 우리들이 사는 이유는, 우리들이 나아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마다 다르겠지만 난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배가 고프면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여름이 되면 바닷가에 가고 싶고, 가끔은 먼 곳으로 여행도 가고 싶다. 이렇듯 하고 싶은 걸 하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하고 싶은 일에 크기는 없고 이유도 중요하지 않았다. 심장이 뛰는 일이니까.

때론 그 길의 끝이 보이지 않아서 불안하고 지치더라도 마음속에 저마다의 이유를 품고 기도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우리는 광야를 헤매는 전사들이다.


그렇게 난 다시 글을 쓰기로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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