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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Nov 06. 2019

<캔 유 킵 어 시크릿?> :사랑의 쉽거나 어려운 문제


포디엄에서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를 주어서 영화 <캔 유 킵 어 시크릿?>의 시사회를 다녀왔다. 즐겁게 관람했다.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조금 심각하고 마이너 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고를 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애당초에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마이너스 요소는 아니다. 오히려 가볍게 데이트 영화로서는 충분할 것이다. 갈등의 깊이는 내가 여태껏 본 여러 로코물 중에 가장 낮았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하에서 더 서술되겠지만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와 근거는 영화의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만큼 웃음 포인트는 영화 전체에 고루 분배되어 있어서 지루하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다. 실제로 영화를 보는 내내 여기저기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커플들에게 있어서는 분명히 긍정적으로 볼만한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영화를 보고 난다면 자연스럽게 할 이야기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데에 있다. 영화의 제목이 <비밀을 숨길 수 있나요?>인 만큼, 영화는 각자가 숨기고 싶은 "사소한" 비밀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그것을 털어놓느냐 마느냐, 내가 상대의 비밀을 아느냐 마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서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커플들은 자연스럽게 서로가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되고, 무겁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대화의 주제 거리를 찾게 될 것이다. 


영화는 11월 7일에 개봉한다. 이하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주의를 요한다.


1. 사랑의 어려운 문제와 쉬운 문제


사랑에는 쉬운 문제와 어려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랑의 쉬운 문제는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답장이 느리게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이러한 물음이야말로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가장 큰 문제이자 고민의 원류이겠으나, 개인에게 할당되는 고민의 깊이와는 상관없이 이러한 물음은 말 그대로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것이 주는 스트레스와 고민과는 별도로 이것은 우선 사랑의 일상적인 물음이다. 사랑을 중심으로 다루는 모든 서사는 반드시 크든 적든 이러한 문제를 포괄할 수밖에는 없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랑 영화들은 사소한 머뭇거림과 고민, 망설임과 부끄러움 등의 문제들로 시작하는 일상적 요소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또한 사랑의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불치병에 걸렸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것은 일상적인 고민들을 압도하는 하나의 재앙처럼 다가온다. 주인공들이 그 재앙을 겪을 수도 있고, 주인공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 재앙을 겪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재앙을 누가 겪건 사랑하는 관계에 있어서는 둘 모두에게 재앙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러한 거대한 비극을 던져두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질병처럼 앞으로 벌어질 일일 수도 있고, 사랑을 시작하기 힘들 정도의 트라우마와 같이 과거에 벌어졌던 것일 수도 있다. 영화는 두 인물을 사랑이라는 관계를 통해 엮어 놓고 그 둘에게 넘어서기 힘든 과제를 준다. 두 사람은 그 과제를 두고 씨름하게 된다.


2. '서로가 감추는 비밀'이라는 쉬운 물음



그리하여 영화 <캔 유 킵 어 시크릿?>은 쉬운 물음을 주제로 하여 영화가 전개된다. 그리고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그러한 쉬운 물음에 초점을 맞춘다고 해서 그것이 주제로 삼을 필요 없는 것을 주제로 삼고 있다고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오히려 사랑의 쉬운 물음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문제 삼는 영역이며, 우리가 연애를 할 때마다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부분인 인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 영화는 거대한 재앙이나 시련이 닥치지는 않는다. 그 거대한 시련이나 재앙은 한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불치병이나, 가정사의 비극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영화는 일상적으로 공감할만한 소재를 다루고 있고, 또 그것에 아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만큼 연인들에게 있어서는 공감할만한 요소가 많으며, 인물들의 이야기에 몰입해 따라가기보다는 자신들의 경험들을 하나씩 끼워 맞춰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가 제시하는 갈등의 골이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은 호불호가 갈릴 여지는 있으나,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부자연스러운 단점이라고 할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캔 유 킵 어 시크릿?>이 다루는 문제는 '비밀'에 관한 것이다. 그 비밀은 출생의 비밀이나, 숨겨둔 시한부 인생에 대한 비밀이 아니다. 오히려 연인 사이에 어떻게든 털어놓거나 또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상대의 '비밀'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바로 그 비밀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심지어 바로 그 비밀을 실수로 발설해버린 히로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게 된다.


3. 털어놓는 여자, 숨기는 남자



주인공 엠마는 직장 생활에 의해 출장을 갔다가 시원하게 말아 먹고 복귀 비행기에 오른다. 운이 좋게도 일등석에 자리 잡게 된 그녀는 옆자리에 잘 생긴 한 남자와 동승하게 된다. 출장 비즈니스를 말아먹은 그녀는 흠뻑 취해 버렸는데, 그 와중에 비행기는 또한 난기류를 만나 불안하게 흔들린다. 그 와중에서 그녀는 겁을 먹고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하며 자신의 모든 비밀을 한 번에 불어 버린다. 가령 승진한 동료가 미워서 그녀의 화분에 오렌지 주스를 부어 버렸다든지, 아직 자신의 성감대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다든지,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를 사랑하지 않는다든지 하는 사소한 것들이다. 그리고 나서야 그녀는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했다는 것을 깨달으며 동시에 자신이 쓸 데 없이 너무 많이 지껄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한 번 보고 말 사이인 남자이기에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여기서 영화는 전형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기내 안, 그녀 옆에 앉았던 훈남의 이름은 잭. 그는 알고 보니 그녀가 다니는 회사의 공동 설립자였던 것이다. 그녀의 모든 사소한 비밀들을 알아버린 잭은 그것을 장난스럽게 이용한다. 가령 엠마의 동료가 계산을 도와달라고 부를 때, 사실 그것은 커피를 마시며 땡땡이 치자는 사인이라는 것을 이미 잭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잭 앞에서 엠마는 쩔쩔매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엠마의 모습이 귀여웠던 것인지, 아니면 그녀가 털어놓는 이야기들로부터 그녀에게 흥미를 느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잭은 엠마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게 되고 그 둘은 그렇게 연애를 하게 된다.


너무 완벽해 보이는 잭. 거기서 그녀는 자신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낀다. 아니, 그것보다도 자신의 사사로운 비밀과 콤플렉스를 다 털어놓은 엠마는 자신이 잭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갈등의 핵심으로 두고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나는 이렇게 나의 모든 것을 말하는데, 너는 내게 네 비밀을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잭은 엠마의 비밀을 실수로 인터뷰 도중 누설하게 되고, 직장 동료들은 그것이 엠마라는 것을 알아채게 된다. 그것에 엠마는 큰 상처를 받게 된다.


영화는 이에 대해서 꽤 쉬운 해법을 제시하는데, 자신을 숨기고 있던 잭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밀들을 털어놓고 공유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꽤 싱겁다. 그러나 싱거운 만큼 흔한 공식이고, 흔한 공식은 흔한 클리셰라기보다도, 이미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이미 하고 있는 그런 일이다. 그런 점에서 그 공식에 연애를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들이라면 그것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너절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을, 영화는 곳곳에 산포되어 있는 코미디로 메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영화는 자신의 약점을 자신의 장르로서 현명하게 포장해낸다.


4. 나의 비밀을 말한다는 것



어떤 점에서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 완벽한 남자 '잭'에게 감정을 이입하기 힘들다는 점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완벽해 "보이는" 잭과의 만남 안에서 자신의 비밀을 다 털어놓고 전전긍긍하는 엠마의 입장에 철저히 맞추어져 있다. 그런 점에서 어떤 남자인지 알 수 없는 '잭'에게는 어떤 기시감이 느껴진다. 그것은 여러 로맨틱 코미디에 들러리로 등장하는 '완벽한 남자들'이다. 그들은 종종 여주인공이 최종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남주인공을 긴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다. 여주인공은 처음에는 완벽해 보이는 이상형에게 마음을 주다가, 마침내 동고동락을 같이 하는 어딘가 모자란, 그러나 그만큼 사랑하게 된 남자 주인공을 선택하게 된다.


잭은 마치 그러한 흔해 빠진 들러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서사의 실패가 아니라, 철저하게 그 서사가 '잭'이라는 사내가 '완벽한 것처럼' 보이도록 의도했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관객들은 잭이라는 사람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주인공 엠마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녀도 잭이 아주 부자에 유능하고 복근이 탄탄하고 합지증을 앓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외면적인 것뿐이다. 그리고 자신이 사사로운 것들을 알고 있는 잭 앞에서 그녀는 불안하다. 자신은 부족하고 열등하며 어딘가 모자란, 그래서 그저 로또를 맞은 운 좋은 사람에 불과한 것처럼 생각된다. 언젠가 잭이 자신을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스럽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비밀'이라는 것이 사랑을 할 때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알게 된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비밀을 숨긴다. 그것은 비밀의 한 가지 특성을 나타낸다. 비밀은 '약점'이다. 사람들이 그 약점을 숨기는 이유는 그러한 약점을 들키는 순간 자신이 불리한 입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사람들은 언제나 그러한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털어놓지 않으면 답답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답답함을 언제 어디서나 털어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며, 바로 그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비밀을 오직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에게 털어놓게 된다. 


여기서 비밀을 털어놓을 사람을 찾기 위해 사랑한다는 것 역시도 사실이 아니고, 비밀을 털어놓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너무나 많고, 그중 하나는 엠마가 잭을 사랑하게 된 것처럼 그의 외형과 자상한 성격 등이 영향을 미치게 되기도 한다. 어떤 점에서 비밀이라는 것은 섣부르게 드러나기도 하고, 오래 사랑하고 경험하면서 천천히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밀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심층적인 영역, 그 사람의 아주 사사롭고 은밀한 영역이며, 바로 그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팀에게 공감하고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던 이유는 엠마가 팀에게 불안을 느끼고 그를 잘 알지 못한다고 느꼈던 이유와 같다. 그는 극 중에서 자신의 비밀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그러한 '비밀이 사랑에 미치는 역학'을 토대로 전개된 영화라는 것을 우리가 염두에 둔다면 잭이라는 인물이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못한 것은 그 자체로 단점은 아니다. 다만 관객들이 진정한 사랑의 과정을 체험하고자 한다는 욕구까지 고려했다면 영화의 서사는 조금 더 슬기로워야 했을 것이다. 


5. 쉬운 문제에서 어려운 문제로 : 사랑에 있어서의 '비밀'의 역학



사실상 우리가 관계를 진전하며 느끼는 오류는 그 관계에 처한 두 사람이 '평등'해야 한다는 요구일 것이다. 관계는 결코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일을 벌이면 누군가는 그것을 수습해야 하고, 누군가가 많이 말하면 다른 누군가는 들어주는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끌어주고 누군가는 보살핀다. 그것이 관계의 진실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엠마가 푼수처럼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은 것에 대해서 잭이 그녀에게 이끌렸다는 것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누군가는 종종 수다쟁이처럼 말하고 그것에 대해서 후회하곤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만큼 타인을 이해하고 들어주고 있다.


그러한 관계의 역학 속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만큼 종종 서로의 역할을 뒤바꾸고 싶다. 너무 많이 말해 버렸을 때 그만큼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지도 모른다. 너무 많이 들어버렸을 때 자신도 이해받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타이밍이 언제나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운이 좋다면 역할극을 강제로 바꾸면서 서로의 욕구를 충족하기보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수도 있다. '비밀'을 알게 된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듣고, 또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만남을 지속하며 알게 된다. 숨기려 하는 이들은 그러한 자연스러움 속에서도 자신의 드러난 비밀에 수치스러워할 수도 있다. 


그때 알게 되는 것이다. 비밀을 숨기는 사람 역시도 비밀을 쉽게 털어놓고 취약해지는 사람들보다도 종종 더 약하고 연약하다. 끝까지 숨기는 이들은 그만큼 자신의 나약한 모습에 대해서 더욱 취약하기 때문이다. 나는 쉽게 말했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종종 그저 입을 열고 닫는 문제가 아니라 조급함과 오해와 다툼과 서운함들이 문제를 야기한다.


그리고 사실은 그러한 사사로운 문제들에 현실적으로 대응하는 것이야말로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한부 인생의 사람과 사랑하지 않고, 또 대단히 힘든 과거를 가진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다. 대체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 관계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지 않았다고 해도 여전히 그 사사로움이 어렵다. 기다리기 어렵고, 견디기 어렵고, 종종 지치고 또 권태롭고, 권태가 지나가면 다시 또 불안하다. 그 안에서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 것. 그러다 종종 그것에 대처하지 못해 이별하고 아파하고 또다시 그를 견디는 것. 바로 그것이 어렵다. 


사랑의 어려운 문제를 다룬 서사들조차도 이러한 쉬운 문제를 넘어서지 못하면 절대로 자신들의 어려운 문제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도대체 수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자신의 관계를 사사로운 것에서부터 지켜내서 또 대단한 삶의 문제를 맞이하게 되었던가. 그것에 대해서 되물어 볼 때, 쉬운 문제는 어려운 문제가 되고, 또 현실적인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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