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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Feb 26. 2020

영화 <이장> : 영리한 여성 영화, 그 뒤에 가족영화

영화 <이장>을 시사회로 관람했다. "세기말적 가부장제와 작별"을 고하는 발칙한 타이틀을 가지고 나왔다. 나는 뚜렷한 메시지를 가지고 나오는 영화를 조심하는 편이다. 그러한 고집 아래에서 작위적인 것들이 드러나는 것을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계심을 가지고서 영화를 관람했다.


그리고 영화를 관람하고 나서 나는 꽤 놀랐다. 대단히 영리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분명히 여성 영화가 맞다. 분명히 가부장제를 지적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자라온 네 명의 자매 이야기를 위주로 하여 극을 진행시켜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가끔씩 터지는 웃음 코드는 작위적이지 않으며, 보는 사람을 혼내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주제의식을 우리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고 우선은 하나의 재미있는 소동극으로 다가온다. 그 안에서 네 자매가 겪는 이야기들이 납득이 된다. 그러며 이 이야기는 그런 올드스쿨 가부장제 아래에서 지내왔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며 정말로 그 올드스쿨 가부장제와 작별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천천히 제안해 본다. 좋은 작별은 그 작별 이후를 상상할 수 있는 작별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작별은 그래서 세련된 작별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영화는 여성 영화이기 이전에 '가족영화'라고 생각했다. 가부장제가 파괴된다고 해서 가족이 사라지는 게 아니고, 가부장이 사라진다고 해서 아버지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도, 남동생도, 누나도, 언니도, 아들도, 딸도 모두 여전히 우리의 가족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가족으로서 여전한 구성원과 함께 나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오는 3월 중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연기가 된 상황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향후 개봉일을 주시하는 것이 좋겠다. 이하로는 스포일러가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1. 영리한 여성 영화 : 시사성 있는 설정과, 흑심 없는 서사



이 영화의 설정은 노골적이라고 할만하다. 이제는 점점 사라져가는 전형적이고 전통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그 아래서 오 남매는 자랐다. 줄줄이 넷째까지 딸이며 마지막에 이 영화에서 가장 속을 썩이는 막내 남동생이 나온다. 그것만 해도 이들이 어떠한 집에서 자랐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아들 귀한 줄만 알아서 딸을 넷이나 낳고도 포기하지 못해 낳은 마지막 다섯째가 드디어 장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성원만 미루어보아도 네 딸들이 얼마나 차별을 받으며 자라왔을지를 우리는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러한 집안에서 어디 갔는지도 모를 막내아들을 제외한 네 자매들이 먼저 등장한다. 장녀 혜영은 싱글맘이다. 남편의 거취는 드러나지 않지만, 자신의 외동아들에게 "먼 곳으로 돈 벌러 여행을 떠났다"고 거짓으로 일러두는 것으로 보아 사별한 것으로 생각된다. 혜영은 육아유직을 요구했다. 그 휴직을 끝으로 퇴사를 권고받는다. 둘째 금옥은 돈이야 말로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바람피는 남편과 이혼을 준비하고 있다. 셋째 혜연은 이제 결혼 준비를 하느라 바쁘고, 벌써부터 시댁을 생각하고 있다. 넷째 혜연은 열렬한 여성운동을 하면서 학내 성폭행 피해자들을 돕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 넷이 모여 이들이 향한 곳은 고향에 있는 큰아버지 댁이다. 그들이 그곳을 오랜만에 찾는 이유는 이들이 예전에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 이 모든 이야기는 바로 그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를 들어내서 다른 곳으로 화장해 묻기 위함이다. 이장을 하는 이유는 묻은 묫자리가 재개발이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보상금 500만 원을 받게 되었다. 이들은 어쨌건 이장하기 위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한 내심 그 500만 원을 각자의 사정으로 필요하게 된 상황이다. 


그 가운데에서 연락 두절인 막내 승낙을 두고 큰아버지 댁에 방문한 그들. 하지만 그들은 환대 받기는커녕 되려 혼이 난다. 큰아버지는 "어떻게 장남이 없이 이장을 해!"라며 얼른 막내 승락을 데려오라고 윽박지른다. 그러며 그들은 하는 수없이 골칫덩어리인 승락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러며 또다시 알게 되는 것은 승락이 자신의 전 여자친구를 임신시켜놓은 채 잠수를 탔다는 사실이다. 네 자매는 승락의 그 여자친구를 통해 수소문하여 승락을 찾아내고, 결국 승락의 여자친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여차여차해서 다시 큰아버지 댁에 방문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설정들은 어떻게 말하면 분명히 문제의식을 함축하고 있다. 네 자매 각각의 이슈와 보수적인 큰아버지 댁의 분위기, 그리고 피임 없이 성관계를 가진 승락의 설정들은 것들은 모든 여성 이슈를 총망라해 놓았다고 할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은 상당히 무겁지 않은 방식으로 흘러간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들이 현실적인 가족처럼 행동하며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서 자신의 극중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설정들 자체가 관객들로 하여금 노골적인 고발과 폭로가 아니라, 시사성을 내포한 하나의 '소동극'으로 다가오도록 한다. 이 영화는 그래서 상당히 연극적이기도 하다. 각자의 표현과 대사, 그리고 그것에 대한 어우러지는 케미가 빛을 발하고, 설정의 뚜렷한 목적성에도 서사의 개연성은 흔들리지 않는다.


한편 이 서사의 가장 영리한 점은, 이 영화의 중심 갈등이 '잠수탄 막내 승락 찾기'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승락을 찾아야 하는 이유와 그를 통해 발생하는 갈등은 '가부장제도'와 적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들이 승락을 찾아야 하는 하나의 목적은 '이장'을 통해서 발생하는 보상금 500만 원이다. 곧 직장을 잃게 된 장녀 혜영, 이혼을 예감한 둘째 금옥, 결혼을 준비하는 금희는 돈 생각이 절실하다. 그를 통해 이루어지는 '승락 찾기 대작전'은 유쾌하다. 그러면서 또한 알게 되는 것은 임신한 승락의 전 여자친구인 윤화가 보상금으로 제시한 금액 또한 500만 원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체적 설정과 분위기로 전제되는 올드스쿨 가부장 제도의 향기와 문제의식은 천천히 우리곁에 다가온다. 그러는 새  관객들은 네 자매를 따라서 함께 승락 찾기에 열중하게 되고, 이 영화의 서사적 결말을 기대하게 된다.


2. 따뜻한 가족 영화 : 가부장 제도를 지우고도 남은 것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장녀 혜영의 아빠 없이 키운 아들이다. 그녀의 아들 동민은 초등학생이다. 주변 친구들을 괴롭히며 수업을 방해하는 사고뭉치이고, 선생님한테 욕을 하는 욕쟁이에, 엄마 혜영의 말은 지지리도 듣지 않는다. 네 자매가 막내 승락을 찾아다니는 동안 동민은 큰아버지, 큰어머니 댁에 남아 있기로 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도 영화의 시선은 계속해서 혼자서 돌아다니는 동민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리고 장녀 혜영은 승락을 찾으려는 소동 속에서도 계속해서 동민을 걱정하고 우려한다. 그러며 아직도 제 아비가 살아 있는 줄 아는 동민에게 어떻게 말을 해주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한 동민에 대한 혜영의 우려와 시선이 관객들로 하여금 쉬어갈 공간을 만들어준다. 나는 이 점이 가장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끔찍하게 싫어했으면서도, 아비 없이 커야 하는 동민을 엄마는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우려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향수가 아니다. 오히려 가부장적이지 않은 아버지의 모양, 그러나 여전히 내 아이가 필요한 그 아버지의 모양을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하도록 한다. 사고뭉치로 자라고 있는, 그럼에도 아직 어려서 귀엽기만 한 그 아이에게 필요한 아버지는 어떠한 모습이란 말인가? 우리는 그것을 물으며 다시 또 가부장과 한발짝 더 멀어진다.


그리고 더 나아가 무책임하게 아이를 임신시킨 승락의 전 여자친구인 윤화. 영화는 결코 윤화가 승락을 용서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윤화에게 필요한 것은 확실하다. 정당한 보상과 낙태. 그녀는 무책임한 남자를 거절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래서 그녀는 승락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딱 잘라서 그녀에게 필요한 것들을 냉정하게 요구한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것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인과응보에 대한 시선과는 별개로, 여차저차 큰아버지 댁으로 찾아온 윤화는 어린 동민과 유독 친하게 지낸다. 동민은 윤화에게 안겨서 장난을 치고, 윤화도 그런 동민이 싫지 않은 눈치다. 여전히 어떠한 남성에게 피해를 받은 여성을 대변하는 윤화와, 아버지 없이 큰 아들 동민의 친밀한 모습들은 영화의 긴장감을 적절하게 완화하고,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의 세대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윤화도 거기에 있고 동민이도 거기에 있다. 그들은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이장하는 날. 아버지의 유골을 건져서 화장터에서 당신의 유골을 불태웠다. 당신의 유골을 나무 아래 묻는다. 가장 열렬히 여성운동을 하는 넷째, 혜연은 갈비탕을 먹으며 평펑 울었다. 혜연은 "장남 없이 어떻게 이장을 해!" 라며 소리친는 큰아버지에게 가장 바락바락 대들었다.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자식 아니에요? 딸은 자식 아니냐고요!" 


그녀가 그렇게 말할 때 그녀는 지긋지긋한 세기말적 가부장 제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아래에 놓여 있는 것은, '우리도 자식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가 미웠다. 미웠던 이유는 나도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 나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칭찬을 받고 싶기 때문이었다. 가부장 제도가 미운 이유는 여성들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고, 차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뿐은 아니다. 아이들은 딸 아들 가리지 않고 관심과 애정을 받고 싶다. 그것을 주지 않았고 그래서 아버지가 미웠다. 미웠던 이유는 가부장을 지워도 아버지는 여전히 내 아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지긋지긋한 추억과 상처와 다사다난에도 불구하고, 오 남매는 여전한 남매로 남아 있다. 언니들은 장남 승락 때문에 입고 싶은 옷도 못 입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으며 자랐다. 그럼에도 여전히 제일 어리고 어설픈 막냇동생이다. 그래서 더 미웠는지도 모른다. 그런 남동생도, 그리고 그 남동생만 이뻐한 아버지도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이렇다. 우리는 가부장 제도와 이제는 결별하고 싶다. 그 이유는 가부장을 지워도 아버지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 딸이 있고 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한다. 어린 동민과 윤화의 잡은 손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이제 이장을 마치고 떠나며 다시 고난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오 남매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어떠한 가정을 꾸리고, 어떠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그것을 영화는 묻고 있고, 이 이야기는 여성 영화이면서 동시에 가족영화가 된다. 이별 후 살아내야 하는 삶을 떠올리며 그곳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이 영화는 정말로 하나의 멋진 '작별'이라 불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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