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에 태양이 있었고, 우주의 나이에 비하면 거의 동시라고 할만한 순간에 잇따라 행성들이 태어났다. 그로부터 약 59억 킬로미터가 떨어진 곳에 나의 공전 궤도가 자리한다. 나는 행성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비하면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거리를 45억 년 동안 1800만 번 이상 공전했다. 그렇게 돌고 난 뒤에도 우주는 오로지 법칙적으로만 움직였다. 시시각각 충돌하고 부딪히는 것조차도 그 누구 들어줄 사람조차 없어 고요했다. 세상은 그저 있는 그대로였을 뿐이며,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조차 존재하는 것의 총량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는 것들이 도대체 왜 존재하는지, 그것들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으나, 그것을 물어 오는 자가 없었기에, 그것에 대답된 적도 없었다.
그러나, 여기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창백한 푸른 점처럼 보이는 한 행성에서 생명이라 불리는 것들이 태동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꿈틀 거리는 작은 것들에 불과했으나 이윽고 들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들으려 하고, 물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물으려 했다. 나는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 관심 가질만한 것은 하나 없었던 차에 그 시끌벅적한 것들에 주목했다. 나는 시끌벅적한 것들이 생겨나고 나서야,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제야 내가 대단히 따분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생각할 줄 알게 되고 나서야 무언가를 열심히 물었고, 나는 물음이 있은 뒤에야 답이라는 것이 있음도 알게 되었다.
그들이 전쟁을 하고, 문명을 이룩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그러다 다시 평화를 말하는 것들을 보았다. 그들에게는 엉겁의 세월이었겠지만, 내게는 그저 태양 주위를 몇 번 돌며 끝나는 일들에 불과했다. 그들은 같은 실수를 하면서도 늘 새로운 규칙을 세웠다. 그들은 분명히 나아지고 있음을 스스로 알면서도,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고,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아주 잠깐을 살다 갈 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안에서 분명히 이어지는 것도 있었으며 또 잃어가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 모든 것들은 내게 있어서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내게 흥미를 끌었던 것은, 내가 그들을 보듯이 그들 역시도 자신들의 하늘을 보며 여러 가지 이론을 세울 때였을 것이다. 그들은 도량형을 만들어서 사물을 측정하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사는 곳의 크기와, 물이 몇 도에 끓는지를 알아냈으며, 여러 가지 물질들을 섞고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언젠가 한 번은 철학이라고 불렸고, 또 연금술이라고도 불렸으며, 마침내 과학이라는 말로 일컬어졌다. 그들의 호기심은 그칠 줄 몰랐고, 그들은 하늘을 탐구했으며 자신들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그들은 태생적으로 오만했다. 그들은 모든 것들이 먼저는 자신들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었다. 하늘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믿음을 그들은 '종교'라고 불렀다. 그들은 신을 찬양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권위를 드 높였고, 점차 드러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신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을 리 없다고 말하며, 신을 찬양하는 척하면서 자신들 자신의 권세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것에 지지 않고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척도를 사용해서 결국 그 권세를 꺾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자신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음을 밝혀냈고, 세계의 중심이 자신들이 아니라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은 당황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세계가 자신들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믿음을 버리고, 자신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는 것을 긍지로 삼고자 했다. 그 이후로 그들은 이전에도 이미 있었던 '규정'과 '구획'의 작업을 더욱 가속화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아챌 수 있다고 믿었고, 모든 것을 알아내고자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체를 분해하고 쪼갰으며, 가장 작은 단위가 무엇인지 찾고자 원했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여 더는 그들 자신의 믿음으로 지배할 수 없는 것들을, 관념으로 소유하고자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들은 나를 발견했다.
57억 6천만 킬로미터. 이 숫자는 그들이 제안한 것이었다. 나는 그들로부터 이 숫자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공전 주기 248년, 나는 그 속도로 1800백만 번 정도 돌아서 45억 년을 살아왔다. 나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에 14등급의 밝기를 띄었으며, 그래서 그들은 나를 맨눈으로 절대로 볼 수 없다. 그들은 나의 '외딴곳'에 있음과, 나의 '홀로 있음'을 그런 방식으로 수치화를 했다. 외딴곳의 홀로 있음은, 바로 그러한 방식의 명명으로 자각되었고, 수치를 통해 분명하게 되었다. 그를 통해 그들은 내 이름을 지었다. 그는 저승을 관리했던 신의 이름을 딴 것으로, 지하에 처박혀 보이지 않는 음침한 존재로였다. 나를 대변하기에는 충분한 이름이다.
하지만 수치를 통해서 분명해지고, 관찰을 통해서 확실시되자 누군가가 문제 제기를 했다. 왜소한 크기를 가진, 그래서 하나의 궤도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들은 행성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 그때 나는 그들이 사는 행성의 위성보다 작은 존재가 된다. 이 문제 제기를 통해서 확실해진 것은, 나는 '외딴곳에 있음'과, '홀로 있음'이면서 동시에 '왜소하게 있음"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이유로 나를 다시금 태양계의 행성에서 배제시키고자 하였다.
이에 과학적 논쟁이 불거졌다. 누군가는 산처럼 생긴 모든 것은 산이며, 우리가 산이라 이름 붙인 것에서 그 이름을 박탈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는 작은 외딴섬을 대륙으로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나를 배제하기 위한 명확한 기준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어떤 이들은 바로 그렇기에 지하의 신이 천상에 존재하는 다른 신과는 다른 더욱 고독한 존재이며, 그래서 그는 신으로 격상되었다가, 땅 아래서 신도 무엇도 아닌 존재로 되어 버린 것이라며 나를 추모하기도 했다.
그저 존재했을 뿐인 바로 그것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고, 또 얼마나 작은 존재이며, 또 얼마나 희미하여 불쌍한 존재인지를 그들은 숫자를 통해서 표현했고, 또 시와 이야기를 통해서 노래했다. 그래서 나는 57억 6천만 킬로미터에, 그 지름은 그들의 위성보다 작은 존재이며, 그 질량으로는 그 어떤 두드러진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고, 규정한 뒤에, 다시 배제하고, 그런 나를 가엽게 여겼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물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다. 어쩌면 그들은 나를 통해서, 결국 한 철만 살다 죽을 뿐인 자신들을 투영하려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어떠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무언가를 배제하여 마침내 객관적인 무언가를 찾아낸 뒤에, 그를 그들의 존속들에게 전하여 영생에 다가가고자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그를 위하여 외딴곳에 홀로 존재하는 존재로 전락하였고, 사실 그렇다 하여도 내게 유감이랄 것은 없었다.
나는 그저 무심하게 존재했던 그런 존재일 뿐이다. 그것은 그들의 모든 규정을 배제하는 의미로의 내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포괄하고 난 뒤에도 그에 아무런 괘념조차 하지 않는 나일뿐이다. 나는 45억 년을 살아왔고, 메탄가스와 얼음으로 되어 있는 내 존재가 녹아 사라질 때까지는 존재할 것이다. 혹은 그렇게 되지 않는 한 존재할 것이다. 작은 시끌벅적을 통해 나는 지루함을 조금 덜었을 뿐이고, 그러나 나는 여전히 한 바퀴를 돌기 위해서 200여 년의 세월을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떠한 결론을 내겠지만, 적어도 내가 한 바퀴를 돌고 난 뒤에 그런 시끌벅적함 조차도 곧 끝나게 될 터였다.
그를 생각하니 지루함이라는 것은 내 앞의 영속을 통해서도 지워질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또한 그들의 덧없음을 모욕하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는 나의 삶조차도 고작 46억 년이라는 말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 그들이 태양이라고 부르는 것에 속하는 모든 이가 경외하는 바로 그 태양보다도 더 오래 영속한 것들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우주라는 것이었고, 나는 그 아무리 어떤 애를 쓴다 한들 여기 놓인 나일 뿐이었다.
1800백만 번가량의 공전을 하고, 나는 내가 몇 번을 돌았는지를 잊어간 채로 또다시 내 길 위에 나를 옮겨 놓았다. 그 어떤 개념에서 배제된다 하여도,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그들이 노래하던 쓸쓸함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움트려는 찰나에,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