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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Feb 25. 2019

꿈을 이룬 현실이 놓친 꿈 ; <라라랜드>


"잘 지내나요. 나는 바라던 꿈을 이루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바라던 그 모습으로 여기 이곳에서 살아내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꿈을 걷고 있고, 바로 그렇게 걸어냈으므로 이 모든 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닙니다. 당신은 잘 지내나요. 당신도 꿈을 걷고 있나요. 부디 지난날의 그 꿈이 더 이상 꿈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런 꿈 아닌 현실에서 부디 늘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영화는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하였다. 심야영화다. 뻑뻑한 렌즈를 빼지 않은 채로 봤다. 모두를 하나하나 이해할 것만 같아서 마음이 일렁인다. 그러나 뻑뻑한 렌즈 때문인지 눈물은 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해"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용감하게 이렇게도 말한다. 

"영원히 너를 사랑할 거야" 

꿈을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고도 말하면서, 동시에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도 여전히 사랑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둘은 마치 우리의 꿈속에서 양립 가능할 것처럼 울려 퍼진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그 두 메아리는 모순처럼 울려 퍼졌고, 메아리인 덕으로 한동안은 울렸을 것이나, 메아리인 탓으로 한동안일 뿐이었다. 점차 날들이 쌓여 지금이었던 모든 것은 과거가 된다.

젊은 날에 꿈을 위해 살았다. 어린아이에게 꿈이란 것은 영영 닿을 수 없을까 봐 두려운 그런 꿈이었고, 그러나 미래인 탓으로 여전히 내게 다가오는 그런 꿈이다. 그렇게 미래에 대한 꿈을 가졌으므로 "지금" 쥐고 있는 사소한 행복은 그저 사소한 현실이다. 그러니 그들은 젊은 탓으로, 그 '지금'을 벗어나 미래로 나아간다. 바로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미래를 쥔다. 그 미래에서 크고 작은 꿈을 이루고, 이루지 못 했다 한들 어떻게든 적응하며 살아낸다. 그때에 우리가 젊은 날에 이루고자 했던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들, 결국 무언가를 이뤘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게다.

그러는 새, 우리가 이뤄놓은 모든 것들은, 이루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 했을 '무엇'이지만, 바로 그 '무엇'은 이뤄 냄으로 해서 현실이 된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해" - 그 말이 이뤄지는 그 순간, "영원히 너를 사랑할거야"라는 말은 낡은 무엇이 되고, 마침내 우리의 손을 벗어나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간다. 그럼으로 그때 그 시절의 사랑은, 현실이었던 그 사랑은 다시 꿈이 된다.

꿈을 이뤄낸 자들이 놓친 꿈에 대한 이야기. 지난 사랑이다. 시간이 흘러 그들이 우연히 다시 만난 그날 밤의 이야기. 그때 그 시절 남자가 여자 앞에서 처음 연주했던 바로 그 곡이다. 피아노 반주가 흐르고, 마치 마법처럼 모든 시간들은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처럼. 사랑했던 모든 순간과, 차마 가지지 못 했던 "만약에"라는 상황들. 그러나 시작된 것은 어떻게든 끝나게 되듯이, 마침내 남자는 곡을 그친다.

보라고, 여기 내가 있다고, 나는 너의 말대로, 성공한 배우가 되었다고. 보라고, 여기 내가 있다고, 나는 마침내 재즈 클럽을 차려 여기서 여전히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그들의 눈빛이 교차하고, 그러나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바라던 대로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이 미래를 꿈꿔왔고, 마침내 그 꿈은 이루어져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 꿈은 현실이 되어 버림으로 인해 더 이상 꿈이 아니고. 우리가 지난날에 두고 온 것은, 놓쳐버린 까닭으로 다시 꿈이 된다. 그러나 그 꿈은 지난날이 두고 온 그런 꿈이므로, 젊은 날에 갈망했던 것처럼 갈망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그 모두를 알아서, 그들은 그들이 놓쳐 버린 모든 꿈들을 반주에 맞춰 꿈꿔본 뒤에도, 그리고 더 이상 그것을 쥘 수 없음을 안다. 그러니 그들은 눈물 흘리지 않는다.

서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은 바로 그 느낌이다. 그 느낌의 공유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러니 그들의 마음은 일렁여도, 그들의 눈시울은 붉어질 새 없이 건조하다. 그러면서 또한 서로가 이룬 그 꿈 아닌 현실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없이도 축하한다. 

이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쓸쓸하게 웃는다. 쓸쓸함은 비관이지만,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낙관이다. 그들은 현실이라는 미소를 지을 줄 안다.

살아낸다는 것은 바로 그 쓸쓸한 미소를 어떻게든 지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괜찮다. 이 세계 어디서든지 간에, 잠시만이라도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낼 수 있다면. 그 존재가 존재로서 행복하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괜찮다고 말하자. 우리는 괜찮을게다.

그러니까, 안녕.

하고 말한 뒤에야. 헐레벌떡 모든 것을 써 내린 뒤, 렌즈를 빼고, 안경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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