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 읽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하 Feb 25. 2019

<위플래쉬> vs <라라랜드> ; 데미언 셔젤의 전회



어떤 상황이 있다. 꿈을 위해서 사랑을 포기하는 그런 경우다. 그때 미래에 꿈을 위한 열정이라는 것과 사랑을 해낼 그 여유라는 것은 상충되는 듯이 보인다. 데미언 셔젤이 "위플래쉬"로 화려한 데뷔를 했을 때, 그 영화는 명백하게 꿈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안에 사랑이라는 것은 최고에의 추구에 방해가 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반면에 "라라랜드"는 조금 다르다. 사랑영화다. 그것을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데미언 셔젤의 전회는 흥미롭다.

그러나 데미언 셔젤의 그런 전회는, 사실상 전혀 당혹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가 "라라랜드"에서 꿈보다도 사랑을 선택한 그런 내용을 보여줬다면, 그것은 당혹한 것이었을 테다. 그러나 결국 "라라랜드"는 꿈을 택한 사람들이 놓쳐버린 바로 그런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위플래쉬"와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꿈을 택하느라 사랑을 놓쳐버린 시나리오에서 특정한 구간만을 다르게 잘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위플래쉬는 엔드류의 젊은 날의 사진만을 보여준다. 그는 최고의 재즈 드러머를 꿈꾼다. 드럼 스틱을 잡은 손에 물집이 잡히고, 피가 터진다. 피가 터진 뒤에도 손에 붕대를 감아 끊임없이 드럼을 쳐낸다. 그 노력을 위해서 그는 연인과도 냉정하게 이별한다. 너와의 사랑은 나의 열정에 방해가 될 뿐이다. 내게는 그럴 겨를이 없다. 그러니까 안녕이다. 그런 마음으로 도전이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최고보다 더 최고, 노력보다 더 노력. 열정보다 더 열정이다. 그렇게 강박증적으로 질주하는 젊음의 끝은 어디인가. 엔드류는 결국 대단히 고압적인 스승 플래쳐조차 넘어선다. 모든 가르침을 되려 압도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어조는 달라졌지만, 사실상, 라라랜드도 마찬가지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만나 사랑을 하지만, 결국 자신의 꿈을 위해서 결별하게 된다. 세바스찬은 재즈 클럽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고, 미아는 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다. 둘은 사랑한다는 그 마음으로 되려 서로의 꿈을 독려하고, 그러한 이유로 헤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 둘은 서로의 꿈을 이뤄낸다. 결국 사랑보다 꿈을 선택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바로 그 라라랜드가 위플래쉬와는 다르게, 꿈에 대한 열정이 아닌, 사랑을 주제로 삼는 영화인 까닭은, 그 영화가 잘라낸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세바스찬과 미아의 시간은 흐른다. 5년 뒤다. 성공한 배우가 된 미아는, 이제 아이도 있다. 그런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우연히 한 재즈 클럽에 들어간다. 그 클럽은 세바스찬이 운영하는 바로 그 클럽이다. 그 둘이 만난다. 모든 것을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놓쳐버린 그들의 사랑이 드러난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세바스찬이 연주하던 그 곡이 흐르고, 그 둘은 지난날의 기억과, 그 둘이 함께 하였더라면 좋았을 그런 가정된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스친다. 잔뜩 슬퍼지는 그런 기분이지만, 결국 서로가 서로의 꿈을 이뤄 잘 살아내고 있음에, 만족한다. 쓸쓸한 웃음을 지어내며 다시 그 둘은 각자의 세계를 위해 떠난다. 안녕이다.


데미언 셔젤의 사랑과 꿈에 대한 기본 서사는 달라진 바가 없다. 꿈을 위해 사랑을 놓는 그런 젊음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위플래쉬와 라라랜드의 차이는 잘라낸 시간의 간격이다. 위플래쉬는 앤드류의 열정의 도전을 끝으로 막을 내리고, 그러니 그것은 꿈에 대한 열정이다. 라라랜드는 꿈을 이뤄낸 뒤에 놓쳐버린 그 연인에 대한 쓸쓸한 마음으로 끝을 내리니 그것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데미언 셔젤은 감독이기 이전에 이미 시나리오 작가다. 그런 점에서 근본적으로 놓은 꿈과 사랑이라는 두 관계에 대한 이러한 고정점은 그에게 있어 어떤 포기할 수 없는 꿈에 대한 열망을 시사한다. 그러나 위플래쉬에서 강박증적인 젊은 패기가 드러났다면, 라라랜드에서는 이뤄낸 자의 회한이 드러난다. 데미언 셔젤의 어떤 기억이나 믿음에 대한 것과, 그에 대하여 시간을 두고 달라지는 감정의 반영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가 이 이후에도 위플래쉬와 라라랜드와  연관된 그런 영화를 찍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두 영화 사이에 드러나는 연관성과 차이점은 흥미롭다. 우리의 인생은 희극인가 비극인가. 강박증적인 열정인가 아니면 쓸쓸히 돌아보는 후회인가. 인생은 바뀌지 않는다. 단지 시차를 두고 잘라낸 시점에 따라 다른 그림이 드러난다. 쓸쓸한 날에 우리의 인생은 라라랜드다. 그다음 날 다시 꿈을 위해 뛰어갈 때 우리 인생은 위플래쉬다. 그렇게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데미언 셔젤의 서사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리 아프고 쓸쓸해도 꿈에 대한 강박증이 우선이다. 그러니 되려 더욱 소중하고 아파 보이는 지난날의 그런 사랑이다. 꿈에 대한 강박증과 사랑의 희구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변하지 않는 행위와, 그럼에도 달라지는 감정이라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꿈을 이룬 현실이 놓친 꿈 ; <라라랜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