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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Mar 21. 2019

<우상> : 난해한 서사의 해석과 의문점 [스포]


우상을 보고 왔다. 큰 맥락은 이해할 수 있었고, 제목이 왜 <우상>인지를 생각하면 감독이 왜 이 영화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만큼 주제의식과 의도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서사가 납득할 수 있다거나,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 결론으로 도출되지는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이해할 수 없다"였다. 주제의식과 의도는 알겠는데, 전체적인 서사 자체의 디테일이 와 닿지 않고 정말로 어떻게 일들이 발생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하나의 영화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이해가 단지 나의 수준의 문제인지 아니면 서사 자체가 문제인지를 파악해야 했다. 같이 영화를 관람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도 우리의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고, 전체적인 문제점들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합의될 수 있는 것인지를 살피기 위해 여러 영화평들을 보았다. 역시 대중들이 느끼는 문제의식은 일관성이 있다는 것으로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큰 문제는 다음의 두 가지다. 


1) 대사가 들리지 않는다. 

2) 이야기의 맥락을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먼저 이 두 가지가 말미암은 문제점과 의문을 지적하기에 앞서, 감독의 의도와 영화의 큰 줄기가 정향 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 서술해보도록 하겠다. 그런 뒤에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의문점과 정말로 해결되지 않는 의문에 관해서 차례로 나열해 보고자 한다. 


*이야기가 난해하게 느껴지는 바, 읽는 이와 나의 편의를 위해 그냥 배우의 이름으로 서술하겠다.


1. <우상>이라는 맥락 하에 전개되는 세명의 이야기


간단히 말하면, 한석규는 차기 도지사로 주목받고 있는 도의원이다. 그는 청렴한 이미지로 시민들의 귀감이 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아들이 한 남자를 차에 치어 죽게 했고, 그 시체를 집까지 데려 온다. 한석규는 시체유기가 더 큰 죄라는 것을 알기에 시체를 원래의 위치에 놔두고, 아들로 하여금 자수를 시킨다. 영화는 이러한 한석규의 끊임없는 타락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욕심 때문일 것이다. 한석규는 자신이 쫓은 권력이라는 지향점을 위해서 달려간다. 


한편 도지사의 아들이 치어 죽인 남자의 아버지로 설경구가 나온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죽도록 한 사람과 그의 아버지인 한석규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서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그러면서 지체장애인인 자신의 아들을 곁에 있었던 사라진 며느리를 찾아 나선다. 그녀가 천우희다. 당시 천우희는 임신을 하고 있는 상태였고, 죽은 남편의 자식이기도 했다. 설경구는 그 사실 때문에 교통사고 목격자이자 손자를 잉태하고 있는 그녀를 더 급박하게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설경구의 목적은 어느새 아들의 죽음의 비밀을 찾는 게 아니라, 한 핏줄인 자신의 손자를 위해서 천우희를 지키려고 한다. 그만큼 그는 한석규가 시체유기를 했다는 것도 알게 되고 또 그 사실을 은폐하려는 것도 알면서 한석규를 용서하는 쪽을 택한다. 설경구는 용서를 대가로 중국에서 불법 입국한 자신의 며느리인 천우희를 강제 추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 속에서 천우희 역시 한국에서의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이 목적인 바, 설경구와 함께 움직인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사건 속에서 천우희는 유산을 하게 되고, 설경구는 돌연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상의 머리를 폭파시켜 버린다. 천우희 역시도 한국에서 살인을 저질러 더는 한국에서의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되자, 한석규를 찾아가 가스를 터트리고 함께 죽는 것을 선택한다.


종합하면 그렇다. 한석규는 끊임없는 권력을 추구하고, 사람들의 우상으로 남는 바로 그 우상을 목적한다. 설경구는 자신의 핏줄이자 손자를 자신의 우상으로 목적한다. 천우희는 한국에서의 안전한 삶을 우상으로 목적한다. 그 가운데에서 한석규는 살인 조자 처슴지 않는 더러운 일을 대가로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손에 넣으려 하고, 설경구는 자식을 살해한 한석규를 용서하는 것을 대가로 지불한다. 천우희는 결혼과 잉태를 대가를 지불한다. 그 가운데에서 설경구는 결국 며느리가 유산하여 아이를 잃고 이순신 동상을 테러하는 일을 선택하고, 천우희는 한국에서의 삶이 좌절되자 죽음을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석규는 화상을 입은 자신의 이야기를 팔며 여전히 잃지 않은 바로 그것을 위해서 더욱 공고하게 자신의 우상적 서사를 팔아먹으며 살아간다. 그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가장 더러운 인간으로서의 한석규는 한 명의 우상이 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2. 꿰어야 보배 : 설득력 없는 인물들의 야심과 행동들


위의 이야기가 내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영화의 해석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를 보여주기 위해서 감독이 하지 못한 것은 너무나도 많고, 그래서 위의 해석은 차라리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다. 


첫째로, 한석규의 권력에 대한 야심이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드러나지 않는다. 그만큼 그가 양심적으로 가책을 느끼면서도 타락으로 빠져드는 것에 대해서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그것은 기껏해야 한 번의 시퀀스로 나오는 악몽에서 뿐이다. 그러나 그가 권력을 그토록 원했던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알지 못하므로 그 장면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아가 그러한 죄책감의 장면조차도 한 장의 씬으로 퉁치기에는 조악하다. 


둘째로, 설경구의 아들 사랑에 대한 것, 혹은 손자를 보려 하는 욕구에 대한 이유에 공감할 수 없다. 처음에 아들이 죽었다며 안치실에 설경구가 달려갔을 때 그의 슬픔이 와 닿지 않는다. 아들과의 기억에 대한 회상씬이 한 장면 정도 나오지만, 역시 이 장면조차도 조악하고 짧게 다루어지기 때문에 그가 기꺼이 한석규를 용서하는 장면도 우스워보인다. 그만큼 갑자기 한석규를 용서하고 천우희의 자식이자 자신의 손자에 집착하는 이유와, 그 손자의 유산을 알게 되고 자포자기하듯 이순신상을 테러한 이유도 설득력이 없다. 


셋째로, 천우희가 무엇을 목적하고 행동하는지 잘 알기 어렵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한국에 진득하게 눌러살기를 바란다는 것과, 그녀가 살인을 일삼고 한국으로 건너왔기에 그 일이 논리적으로 절실하다는 것뿐이다. 그녀가 도대체 왜 마지막에 한석규에게 달려가 함께 죽으려고 하는지, 실제로 영주권을 위해서일망정 설경구의 아들이자 자신의 죽은 남편을 아꼈던 것 때문인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각 인물 간의 동기를 간신히 뚜렷한 것으로 만들고 논리적으로 간신히 연결 지어야 (1)에서 다룬 해석이 그나마 그럴듯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서사 자체만 놓고 보면 세 가지 다 만신창이다. 


3. 서사 자체에 대한 의문점들


1) 들리지 않는 대사 사이에 계속해서 2천만 원이 언급되는 이유 : 난 이거 모르겠다. 왜 계속 2천만 원이 언급되면서 천우희가 그 돈을 아버지한테 해준다는 건지 받는다는 건지도 모르겠고, 마지막에 느닷없이 한석규가 천우희에게 2천만 원을 딜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건 그냥 모르겠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아는 분이 있다면 말해주시면 감사하겠다. 


2) 천우희를 찾아온 전남편 : 설경구의 아들이 차에 치이던 날에, 천우희는 누군가로부터 도망쳤고, 그 현장에는 의문에 다른 한 사람이 있었다. 알고 보니 천우희가 영주권을 위해서 만나던 남자가 도망간 그녀를 찾아온 것. 그러나 도대체 그 사람이 왜 나왔으며 어떤 역할을 했고, 왜 죽었는지(사인은 익사) 알 수가 없다. 


3) 콧수염 심부름꾼의 역할 : 한석규가 처음 자신의 손으로 살해하고 대 타락의 서막을 알리던 장면은 이 콧수염 심부름꾼을 죽이면서였다. 그런데 한석규가 얘를 왜 죽이는지도 모르겠고, 그러면서 멍청하게 천우희를 도망치게 두는 지도 알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어떤 역할을 하러 나왔는지 오리무중이다.


4) 설경구가 이순신 상을 폭파한 이유 : 이게 한석규에 대한 배신의 의미인지, 그저 손자가 유산되어서 나온 좌절의 의미인지, 아니면 설경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감독이 우상의 타파를 위한 메타포인지 알 수 없다. 어느 쪽이든 설득력이 없다. 


5) 한석규 아들의 의문의 미소 : 그냥 한석규 아들은 교통사고를 낸 후에 시체를 집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이것을 덮어준 것은 한석규 자신이다. 그런데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 것처럼 한석규의 아들은 씩 하고 웃어 보인다. 그러나 이 웃음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마음이 착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6) 마지막 한석규 연설의 내용 : 한석규는 전신에 화상을 입고도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약을 팔며 이야기가 끝난다. 그런데 그가 무슨 소리를 웅얼거리면서 일장 연설을 펼치는데, 이게 어느 나라 말인지 알 수 없다. 내 해석은 말까지 제대로 할 수 없는 몸이 되어서 자막을 띄우고 웅얼거리며 연설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중국어라는 둥, 몽골어라는 둥 이야기들이 많았다. 대미를 장식하는 이런 부분조차 난해하다. 


4. 내가 그나마 이해하고 알려줄 수 있는 것 


1) 천우희가 갑자기 눈썹이 없어진 이유 : 한석규가 납치했을 때 눈에 청테이프를 붙여서 떨어진 것 같다. 


2) 한석규가 천우희를 납치해 그녀의 발가락에 주사를 놓고도 천우희가 멀쩡한 이유 : 비타민 주사라서


3) 설경구는 아들의 자위를 도왔다 : 그런갑다


5. 결론


권력자가 비리를 저지르고 피해 입은 약자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내용은 이제 너무 흔해 빠져서 지쳤다. 나는 영화 중반부까지는 그러한 클리셰를 탈피하는 것처럼 보여서 스토리가 이해되기는 어려워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해결되지 않는 의문점들이 너무나 많고, 이건 그냥 아주 나쁜 스토리텔러의 참 중요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느낌이다. 분명히 어떤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너무 길고,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것들은 너무나 많다. 삭제된 시퀀스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중심적인 주제는 그 복잡하고 나쁜 서사 안에서 함께 침강해 버린다. 주제도, 인물들의 대사도, 그들이 얽힌 서사도 모두 모호하고 흐릿했다. 대충 만든 영화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노력과 고민이 많이 투입된 아쉬운 영화였다. 어떤 점에서 하고 싶은 말과 주제의식이라는 우상을 좇다가 실패해버린 영화의 주제의식과 부합하는 결과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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