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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Jul 25. 2019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브런치 무비 패스로 시사회 관람. 


스포일러가 포함된 분석을 하기 전에, 정보 전달을 위해서 말해보자면 꽤 괜찮은 영화였다. 나의 영화 취향은 대중적인 편이라서, 천천히 곱씹고 나서야 뒷맛이 올라오는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이 영화는 서사적으로 자극적인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이 서사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면, 그제야 그것이 제 가치를 드러내는 그런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줄거리에서 명기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이 영화의 중심을 관통하는 것은 '납치극'이다. 그러나 이 서사는 범인을 찾아내는 숨 막히는 서스펜스의 여정이 결코 아니다. 범인에 대한 어떤 두드러진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여주고 싶은 것은 납치극이 아니라, 그 납치를 통해서 드러내고자 하는 가족의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의미를 찾아내고 싶어 하는 관객들에게는 좋은 영화가 될 것이다. 더불어 스페인에서 일어나는 환대와 축제 분위기를 잘 살려, 현지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스페인의 아름다운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소동과 그것을 헤쳐나가는 가족들의 이야기다. 그 결과가 극적으로 새드 엔딩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영화 안에 분명히 존재한다. 이하는 스포일러를 포함한 분석이 될 것이다. 주의를 요한다.


1. 가족들의 축제



영화는 서론을 길게 가져간다. 라우라는 스페인 한 작은 마을에 자신의 두 자녀와 함께 도착한다. 그곳은 그녀의 고향이다. 그녀가 방문한 이유는 그녀의 여동생이 곧 결혼하기 때문이다. 그녀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들이 한데 모이는 것이다. 모든 가족들이 함께 결혼식을 올리고 축제를 즐긴다. 


영화는 이것을 결코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는 '계기' 정도로 이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결혼식이 어떻게 진행되고, 모두가 어떻게 어울려 즐기는지를 보여준다. 스페인 가족들의 자연스럽고 쾌활하며, 서로가 서로에 섞여 들어 잔치를 벌이는 모습이다. 그들은 모두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거기서 유독 두드러지는 한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파코'다. 거기서 은근슬쩍 우리는 비밀 정보를 하나 듣게 된다. '라우라'와 '파코'는 원래 연인 사이였다. 그러나 이제 그 둘은 각각 자신의 가정을 따로 꾸리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 사실을 공공연하게 알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지난 과거가 되어 버렸고, 누구도 그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여하간 그렇게 결혼식 피로연이 무르익어갈 무렵에, 갑작스럽게 정전이 되면서 온 집안은 어둠으로 둘러 쌓인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라우라의 딸 이레네가 사라진다. 라우라는 패닉 상태에 빠지고 파코와 함께 사라진 딸을 찾으러 다니는 찰나에, 라우라에게 메시지가 하나 도착한다. 그녀의 딸을 납치했다는 것이다. 납치범의 메시지다.


이에 라우라의 가족들은 모두 패닉 상태가 된다. 함께 모여 해결책을 강구하고자 한다. 그 안에서 유독 '파코'가 더 열심이다. 그러나 동시에 행동하는 그의 모습은 다른 가족들에 비해 조금 더 이질적이다. 사람들은 납치된 시간이 흘러갈수록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갈등하게 된다. 그러면서 천천히 가족들이 공공연하게 침묵하는 비밀들이 드러나게 된다.


2. 가족과 외부인



사실 파코는 라우라의 가족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내다. 그는 단지 수년 전에 그녀의 집에서 잡일을 도맡아 하는 하인의 역할을 했었을 뿐이다. 그러며 그 안에서 친분을 쌓고, 라우라와 눈이 맞아서 연애를 하게 된 것이었다. 영화는 이러한 파코의 입장을 부각한다. 


범인이 몸값을 요구하면서 가족들은 돈이 나올 구석을 찾아내기 위해서 혈안이 된다. 그 과정에서 애꿎은 파코에게 가족들은 무언의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파코는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토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땅은 라우라가 파코에게 헐값에 처분한 것이었다. 라우라의 아버지는 자신의 밑에서 잡일이나 하던 그가 지나친 횡재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며 그것은 원래 자신의 땅이라고 하면서 파코를 압박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파코는 실제로 자신의 농장을 그의 동업자에게 처분할 수 있는지를 물어본다. 그것은 우선 범인이 아이를 죽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돈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다.


영화는 초반부에서 모두와 함께 어울리는 모습들을 보여주면서도, 자신의 집에서 그저 일을 도왔던 파코에 대한 배타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노골적인 방식이 아니라 아주 천천히 스멀스멀 드러난다. 이것은 가족이 가진 자체적인 배타성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우선 파코 자신에게도 아이를 찾기 위해 돈을 마련해야 할 자발적인 의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사랑했던 라우라의 가족이자, 자신이 수년간 일을 했던 가족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존재한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의 부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순수한 호의가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응집되는 반면, 파코는 어쩔 수 없이 동떨어진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몸값을 요구하는 메시지가 라우라뿐만 아니라, 뜬금없게도 파코의 아내에게까지 도착한다. 라우라의 가족들은 납치범이 그녀의 아이를 해칠까 봐 신고하지는 않지만, 은퇴한 경찰에게 이 일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 경찰은 분명히 라우라뿐만 아니라 파코의 아내에게 메시지가 도착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일은 프로의 소행이 아니라, 면식범의 소행일 것이라고도 조언한다.


그러면서 드러나는 특이한 사실이 있다. 관객들은 분명히 가족들 사이에 범인이 있을 것이라는 강한 의혹을 느끼고, 그 부분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가족들은 절대로 서로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 분명히 그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고, 그래서 몸값을 지불할 능력조차 없는데, 그만큼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알리바이 따위를 묻지 않는 것이다. 영화는 그러한 '침묵'을 결코 부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들로 하여금 '왜 그것을 묻지 않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즉 관객의 시선에 있어서 의심의 부재는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차라리 서사의 답답함으로까지 다가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라우라의 남편의 사업이 망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그녀의 남편이 자신의 딸을 납치한 자작극을 벌인 것은 아닌지를 의심한다. 여기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두 번째 배타성이 있다. 자신들은 스스로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고, 외부에서 유입된 사내를 의심하도록 하는 것이다. 즉, 이들은 외부인이었던 라우라의 남편이 범인일 가능성을 제시하면서도, 그 몸값을 지불할 사람으로 가족의 구성원이 아닌 파코를 은연중에 지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강압적이고 극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파코는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몸값을 지불해야 할 의무와 당위가 없다. 그것도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3. 외부인에서 가족 구성원이 되는 방식



그런 과정에서 범인은 아주 뜬금없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라우라의 조카와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러나 이는 맥 빠지는 내막이다. 왜냐하면 그녀가 특정될 수 있을만한 복선이 없었으며, 그녀가 범인이라는 것을 영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추론할 수 있도록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저 그녀가 이 일을 모의 작당했다는 것을 단순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은 이 영화의 서사가 허술하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사전에 암시했듯이, 이 일은 면식범에 의해서, 즉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어야 했다. 그리고 핵심은, "가족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라는 것이다. 만약 범인이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면 반드시 특정해야 하지만, 가족 중에 벌어진 것이라면 누군지 알 필요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관객으로서는 그 범인이 누군지가 매우 중요하지만, 그들은 그 부분을 절대로 주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는 한편, 라우라는 자신의 딸을 구하기 위해서 파코에게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는다. 라우라의 딸 이레네는 사실 파코의 딸이기도 했던 것이다. 라우라는 그것을 털어놓으며 자신의 딸은 파코의 딸이기도 하기 때문에 농장을 정말로 정리하고 그 돈으로 몸값을 지불해 주기를 간청하는 것이다. 이에 파코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지만, 기꺼이 농장을 팔아버리고 몸값을 지불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는 범인과 약속한 장소에 돈을 가지고 가고, 거기서 무사히 자신의 딸 이레네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간다. 


4. 누구나 아는 비밀[Everybody knows]



그렇게 영화는 속 시원하지 않은 결말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답답한 관객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파코의 모습은 그리 피로해 보이지 않는다. 그가 그렇게 된 로직은 확실하다. 파코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이레네가 라우라와 파코의 딸이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을 노려서 이 범행을 기획했던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라우라가 파코에게 그 비밀을 알려줄 것을 알았고, 파코는 순순히 자신의 지갑을 열게 될 것을 예상했던 것이다. 이 모든 소동이 '범인 색출'과 '응징'으로 끝나지도 않았고, 파코의 표정이 평온해 보였던 이유는 이 모든 것들이 마침내 '가족'들의 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외부인으로만 존재했던 파코는, 결국 라우라와 자신 사이에 딸이 있었던 것을 깨닫고 됨으로써 가족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농장을 파는 행위조차도 결국 가족으로서 했던 일이 된다. 어떤 점에서는 가족의 일부임을 기꺼이 증명하는 하나의 계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누구도 그의 행동의 당위를 의심하지 않고, 또 파코 스스로도 그러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파코 역시도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누구나 아는 비밀(Everybody knows)"에서 "누구(Everybody)"는 결국 "가족"이다. 가족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물론 그 사실이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범행을 작당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고, 모두가 명시적으로 모든 것을 세세하게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누가 진짜 범인이었는지를 라우라의 큰 언니는 짐작으로나마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굳이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그저 그대로 두는 것이다. 


영화는 라우라의 큰 언니가 그녀의 남편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그것은 폭로가 아니라 그저 가족끼리의 은밀한 대화일 뿐이다. 결국 모든 것은 가족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 될 것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결과와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 그저 공동체가 공동체로서 굴러가면 그뿐인 것이다. 이러한 진실은 첫 장면에서 열리는 즐겁고 하나 된 파티와 대조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전체를 하나로서 묶어주는 이유이기도 했던 것이다. 


부모는 자식들이 사춘기 때 몰래 방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또 그것을 제대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존재하는 것을 알지만, 또 자신이 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알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는 못해도 사실은 알고 있음을 알고, 또 알 것이라 기대한다. 그 말하지 않는 비밀을 공유한다는 것은 가족이 된다는 것에 대한 두드러진 하나의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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