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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Apr 01. 2021

두 번의 슬픔이 보내준 세 아이

  집으로 오는 길은 생각보다 걸을 만했다. 오전이라 그런지 날씨가 쌀쌀하게 느껴졌지만, 택시를 타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슬픔이 이미 너무 지나간 탓인지, 생각보다 슬프지 않은 건지 아니면 괜히 날씨 탓인 건지 기분이 묘했다. ‘헷갈리는 기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는 정말 이런 건조한 감정으로 걸어도 되는 걸까’를 반복해서 생각하다 보니 집에 도착했다. 티브이를 켰다. 유재석 씨와 이광수 씨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외투도 벗지 않고 멍하니 보았다. 서로 장난을 치며 뺨을 때리는 장면을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천연덕스럽게 서로 따귀를 주고받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 내 웃었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웃음소리는 조금 기괴하게 울음소리로 변했다. 참아온 울음이 그렇게 터져 나와 버렸다. 나는 그 전날, 세포분열을 멈춰 고사한 수정란을 떼어내는 소파수술을 한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유산을 한 초기 임산부였다.      





  


  임신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교과서에서 보던, 난자와 정자의 만남이 이루어지면 임신이 되는 상식적인 일은 우리 부부에게 일어나지 않았다. 결혼 직후부터 아이를 꿈꿔 온 우리에게, 일 년이 다 되도록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서로 속말은 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난임 병원을 가 보아야 하는 걸까, 우리는 이대로 영원히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걸까. 

  ‘아이를 가질 수 없다면, 조금은 서글프지만 그래도 둘이서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조금씩 커지던 어느 늦가을, 임신테스트기는 느닷없이 두 줄을 드러냈다. 기쁨보다 놀라움이 더 컸다. 내가 부모가 될 수 있다니, 나도 임신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다니. 다음 날 아침 남편과 함께 가까운 산부인과를 갔다. 초음파 검사를 처음 해 보았다. 아기집이 보였다. 내 몸에 아기가 자라날 공간이 생겼음을 물리적으로 확인했다. 임신 5주라는 말과 임신 초기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 그리고 2주 후에 보자는 말을 듣고 병원을 나왔다. 의사는 거의 매일 하는 권태로운 말이겠지만, 나에게는 30년 넘는 인생을 살며 처음 듣는 신비로운 말들이었다. 

  집에 가는 길의 단풍이 달라 보였다. 하늘과 신호등과 전봇대들이 다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의 세상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내년에 태어날 아이들과 함께 누릴, 새로운 세상의 모습이었다. 집에서 먹는 음식들도 어제 먹은 음식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내 몸에 들어가 내 아이를 키울 음식이었기에, 좀 더 천천히 씹어먹고 좀 더 맛을 음미하게 되었다.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모든 행위가 아이를 위한 것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이타(利他)적인 생활을 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부모가 되는 모든 순간은 경이로움과 놀라움으로 가득 찼다. 


  2주는 느리게 흘렀다. 그래도 예약일은 다가왔고, 초음파를 보는 선생님의 표정은 나의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그동안 입맛은 어땠어요’, ‘컨디션은 변화 없었나요’라는 질문만 반복해서 하고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생각지 못한 단어를 내뱉었다. 세포분열을 하다가 멈췄어요, 이런 경우는 수정란이 고사했다고 해요, 계류유산이에요, 소파수술을 해야 해요. 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라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 와중에 딱 한 단어는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유산. 2주 동안의 나는 아이는 키우지 못한 채 부모의 마음만 키우고 있었다. 빠를수록 좋다는 의사의 말에 그날 오후 수술을 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는 하지만 수술은 수술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밝고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마취 주사가 주는 나른함을 느꼈다. 간호사의 거친 손길과 목소리에 깨어난 후 한동안 구토와 어지러움에 몽롱했다. 조기 퇴근한 남편이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대화는 없었다. 그저 남편의 손은 여전히 따뜻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입원병실의 밤은 유난히 어두웠다. 뒤척거리다가 침대 옆 남편의 울먹임이 뒤섞인 속삭임을 들었다. 아이를 보내게 된 죄책감과 미안함을 담은, 용서를 구하는 기도였다. 남편이 겨우 진정하고 잠이 들 때까지 나는 잠들지 못했다.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니었으나, 모든 이가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하는 밤의 시간이 이어졌다. 

  아침에 주의 사항을 듣고 약을 받아 퇴원했다. 출근한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집으로 걸어왔다. 유산을 한 다음 날 티브이를 보며 웃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싫었다. 꾹꾹 누른 슬픔이 하필 웃을 때 터져 나와 더 슬펐다. 이렇게 못난 나이기에 아이가 떠났나 보다,라고 자책하며 스스로를 용서하기 힘든 겨울을 보냈다. 




  두 번째 두 줄을 본 것은 개나리가 피기 시작하는 때였다. 역시나 병원에서 아기집을 보고, 이번에는 임신확인서까지 받아 왔다. 보건소에서 임산부 지원 카드와 분홍색 임산부 배지도 받아 왔다. 첫 번째와 달리 나는 진짜 임산부가 되어야 했다. 일찌감치 태명도 지었다. 라온. 순 우리말로 ‘즐거운’이라는 뜻이었다. 이 아이가 자라는 동안은 즐거운 일만 일어나야 했다. 겨울에 태어날 아이를 위해 뜨개질을 배워보려 뜨개실을 주문했다. 

  ‘이번에는 일주일 후에 오세요’라는 의사의 말을 들은 지 6일이 지났다. 초음파 사진이 일주일 전과 같았다. 심장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라는 말이 마음이 걸렸지만 일단 집으로 왔다. 그날 밤 극심한 복통과 함께 산부인과 응급실 문을 두드렸다. 상당한 피를 보았고, ‘유산 진행 중이에요’라는 말을 들었다. 입원실은 여전히 어두웠고 밤새 복통으로 깊은 잠을 자지 못했으며 남편의 흐느낌은 조금 더 소리가 커졌다.

  계류유산이라는 단어도 처음이었는데, 이번에는 자연유산, 화학적 유산이라는 단어들을 듣게 되었다. 다 생소한 단어들이었다. 도저히 나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단어들이었다. 그중에 가장 무서운 단어는 ‘습관성 유산’이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렇게까지 나쁘게 살아오지 않았는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하늘을 탓하게 되었으나, 하늘을 탓한다고 ‘라온’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딱 일주일만큼의 ‘즐거움’이었다. 집에 돌아와 동그란 뜨개실이 담겨있는 상자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었다. 

  몸조리를 해야 했으나 다음날 외국에서 온 친구를 위해 남이섬에 함께 갔다. 이틀 전에는 춤을 추며 흩날리던 벚꽃이었으나, 그날은 눈물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흩날리는 벚꽃 속에 눈물을 감추느라 바빴다. 눈물을 닦아주는 남편의 손은 변함없이 따뜻했다.      



  여름이 지나고 초가을의 어느 날, 오랜만에 놀이공원을 갔다. 아이처럼 들뜬 마음으로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엄마 손을 잡은 아이들을 보다가 문득, ‘훗날 내 아이와 이곳에 오면 나도 손 꼭 잡고 다녀야지’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나를 스쳐 간 아이들 덕분에 나의 마음은 ‘습관성 부모’가 되어 있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으나 다행히 잘 참았다. 놀이기구를 타다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들었다. 이틀 후 아침, 나는 세 번째 두 줄을 보았다.       







  이듬해 벚꽃 구경은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만삭의 임산부는 오래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이가 나오기 전 마지막 벚꽃 구경이었기에, 천천히 걸으며 이따금 쉬며 봄의 마지막을 보냈다. 한 달 후 여름의 문을 열고 첫째 딸이 우리에게 왔다. 건강한 울음소리를 터뜨리며. 


  이 년 후 여름 나의 강원도 고향으로 여행을 갔다. 아이는 나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다. 그 작은 손을 보며, 몇 해 전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를 토닥여 주고 싶었다. 갑자기 뱃속에서 둘째가 힘차게 발차기를 하는 덕분에 그곳에 오래 있지는 못했다. 

 


  




  그날로부터 4년이 지났다. 전염병으로 인해 18개월 셋째는 아직 놀이공원을 가보지 못했다. 시절이 좋아지면, 막내의 첫나들이는 놀이공원으로 갈 것이다. 아이들을 번갈아 안아주고 손잡아 줄 것이다. 비록 두 번의 아팠던 기억이 있지만 그렇기에 더욱 소중한 나의 세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웃고 있는 사진을 찍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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