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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Mar 29. 2021

봄비가 전해준 새치

  그 봄비는 내가 8살이 되던 해 내렸다. 봄비치고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학교가 끝나고 천천히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친구가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진샤, 너네 할아버지 왔어!”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는다. 외할아버지 한 분 계시긴 하는데, 먼 곳에서 살고 계신다. 도대체 누가 온 거지, 누가 나를 찾은 거지. 건물 입구에 가 보니, 아빠가 우산을 들고 서 있다. 아하하하하하하, 아빠, 친구가 아빠 보고 할아버지래. 친구가 그렇게 말하는 건 당연했다.

  마흔의 아빠는 새치가 많았다. 새치가 너무 많아 흰머리처럼 보였고, 8살 아이에게 흰머리의 남자는 모두 할아버지이다. 한편으론 우스웠지만, 한편으론 부끄러웠다. 저렇게 흰머리 많은 사람이 우리 아빠라니. 우리 아빠는 왜 다른 아빠들이랑 다르게 흰머리가 많은 거야. 우산을 쓰고 집에 가는 내내 아빠의 흰머리를 쏘아보았다. 이 에피소드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봄비가 오는 때가 되면 자주 우리 가족에게 웃음을 준다.     


  아빠의 새치는 야속하게도 유전자 싸움에서 엄마를 이겼다. 나와 동생은 서른이 넘자 여기저기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했다. 다 아빠 때문이었다. 아빠가 미웠다. 아빠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젊은 나이에 새치가 이렇게나 많지는 않았을 텐데. 다행히 아직 ‘할머니’ 소리를 듣지는 않지만, 아빠와 동년배이신 시어머니보다 흰머리가 많아 보이는 건 확실하다. 특히 한 부위에 집중적으로 많이 나 있어서 ‘흰색으로 브릿지 넣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새치라고 대답하며 ‘돈 안 쓰고 천연 브릿지 넣었다’고 덧붙으면 다들 ‘그렇네’ 하며 웃는다. 그나마 그렇게 보일 정도로 부분적으로 나는 거면, 미용실 값 버는 거니 성공했다고 해야 하는 건가 싶다.

  

  동생은 안타깝게도 아빠처럼 꽤 많이 새치가 난다. 30대 중반인데 염색을 시작한 지 꽤 되었다. ‘너는 왜 머리만 늙니’라고 하고 동생을 보면, 그 얼굴에는 어느새 아들자식을 둔 한 가정의 가장이 새겨져 있다. ‘누나도 마찬가지야’라고 대답하는 동생의 얼굴에 아빠와 엄마가 묘하게 섞여 있다. 나와 동생의 새치 한 올 한 올에 아빠가 유전으로 남긴 것들이 심겨 있었으면 좋겠다. 쉽게 화내지 않는 인성, 일 마치고 집에 올 때 늘 간식이 손에 들려있는 따뜻함, 다정다감함, 독서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 사랑보다 더 큰 자식 사랑 같은 것들.



  엄마의 이야기를 뺄 수 없다. 엄마는 장장 30년 동안 아빠의 전속 염색사가 되었다. 내가 결혼 전만 해도 아빠는 '새치가 흰머리처럼 많다'였는데, 얼마 염색 아빠를 보았을 새치가 아니었다. 세월이 하얗게 내려앉은 머리였다. 칠순이 다 되신 아빠는, 이제는 염색을 하지 않으면 완벽한 백발이 되신다. 그렇기에 염색을 자주 해야 하는데, 순수한 검은색으로 하기엔 뭔가 얼굴과 머리색의 매치가 영 조화롭지 못하다. 늙은 할아버지가 젊어 보이려 애쓰는 얼굴이 된달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뿌리부터 올라오는 흰색과 선명한 투톤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검은색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조금 진한 갈색으로 염색하는데, 그야말로 최선이 된 차선이다. 물론 컬러리스트인 엄마의 센스 돋는 선택이다. 나라면 그렇게 아빠의 피부와 얼굴에 어울리는 색을 쉽게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의 '새치와 백발'이라는 문제의 정답은, 평생 엄마의 손에만 쥐어 있다.      




      




  지금도 조금 무거운 봄비가 내릴 때면 아빠를 할아버지로 둔갑시킨 새치가 가끔 생각난다. 지금은 백발에 묻혀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빠의 새치. 그 모양 그대로 자식에게 전해졌으나,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젊은 날 그 우산 속 아빠의 새치이다. 그렇다, 나는 나의 젊은 아빠가 그리운 것이다.

  지금의 내가 딱 그때의 아빠의 나이이다. 그때의 아빠의 나이가 되어 보니, 오히려 새치는 일종의 ‘훈장’이라는 기분이 든다. 아빠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몰래 전해 준 ‘일족’의 증거를 내가 모르는 사이 갖게 된 기분. 왜 하필 새치의 형태로 훈장을 물려주는 걸까, 싶으면서도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그런 훈장을 나와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쥐고 살아 왔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첫째 딸이 한 말이 떠오른다.


  “엄마는 할머니도 아닌데 왜 하얀 머리가 많아요?”

  

  그러게. 너는 너의 아이에게 그런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할 텐데, 그것이 걱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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