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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Mar 27. 2021

태양계와 커피 믹스

커피 한 잔의 여유

  “달달한 라테가 너무 먹고 싶어.”

  

  모니터 구석에서 주황색 깜빡거림으로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그날 역시 믹스커피를 휘젓고 있던 나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우리는 오전에도 업무 미뤄두고 서로의 학자금 사정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나는 ‘88만 원 세대’라는 단어가 나오기 이전, 88만 원보다 10만 원 많은 98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었다. 그중 절반은 매달 학자금 상환에 쓰이고 있었다. 다행히 부모님과 함께 지내서, 기본적인 생활비는 아낄 수 있었다. 나보다 수입이 더 많았던 친구는, 학자금도 더 많았다. 결혼 생각이 없던 나와는 달리, 빨리 결혼하고 싶어 한 친구는 결혼자금까지 모으느라 늘 빠듯했다. 우리에게 학자금은 태양계의 우두머리 ‘태양’ 같았다. 우리는 수성이나 금성처럼 작아서, 거대한 태양의 힘에 꼼짝도 못 한 채 끌려다녔다. 태양의 크기와 열기 모두 엄청나서 우리는 그저 압도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 우리에게, 사천 원의 커피는 사치였다. 당시 나는 매달 월급날만 프랜차이즈 커피를 먹기로 나와 약속하고 실천하고 있었다. 사치를 부릴 여유 따위 없었다. 프랜차이즈 커피가 먹고 싶으면, 괜스레 믹스커피를 더 세게 휘저었다. 얼음을 적게 넣으면 진한 커피가 된다. 후루룩 들이키고 나면, 단맛 뒤에 약간의 쓴맛이 그을음처럼 혀에 남아 있었다. 그래, 이렇게 커피 먹으면 됐지. 다 똑같은 커피인데, 뭘 더 바래. 


  실은 믹스커피를 미워하는 마음이, 믹스커피 밖에 먹을 수 없는 내 처지를 미워하는 마음이 명왕성처럼 내 안에서 빙빙 돌고 있었으나 애써 무시해 왔다. 20대는 그 자체만으로 태양처럼 찬란해야 하지만, 나는 늘 태양계의 가장 언저리에서 돌다가 어느새 관계의 중심부에서 퇴출될 것만 같은 불안함이 있었다. 경제적인 부분, 그로 인한 인간관계, 사회적인 지위 모든 면에서 그랬다. 그 불안함의 손끝에 늘 노란색 믹스커피의 노란 봉투가 있었다. 그렇게 20대의 끝에 믹스커피가 늘 함께 했다.      


  한 달 한 번 사치는 커피와 더불어 영화와 미술관이었다. 꼭 보고 싶은 영화 하나, 꼭 가고 싶은 전시 하나로 추리는 데 시간이 오래도 걸렸다. 그렇게 커피 한 번, 영화 한 번, 미술관 한 차례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98만 원이 입금되었다. 거대한 학자금과 미미한 월급에, 나의 20대 후반은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었다.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정을 나눌수록 프랜차이즈 커피는 더 갈증 났다. 시럽을 두 번 더 펌핑한, 달달함이 시원함에 녹아내린 아이스 라테는 그 시절 우리에게 그저 단순한 커피가 아니었다. 단순한 욕망을 넘어선, ‘일상의 소중한 사치’ 비슷한 것이었다.

  친구의 말에 나는 갑자기 용감해졌다.     

  “먹어. 우리, 단순해지자. 커피 한 잔 정도 여유는 갖자.”

  나의 이 말은, 친구에게 하는 말이면서 동시에 나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회사 건물 1층으로 갔다. 시럽 펌핑 두 번 더 한 달달한 라테를 받아 들었다. 단맛 가득 라테는 신기하게도 마음의 견적을 넓혀주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너무 복잡하지 말자, 인생 단순해지자. 먹고 싶은 커피 마시고, 우리의 스물아홉에 여유 좀 주자. 


  친구 역시 덕분에 너무 잘 마셨다고, 고마웠다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오늘 커피 진짜 맛있었어. 별것 아닌 나의 말에 친구는 종일 고마워했다. 매일 똑같은 지하철과 사무실 책상과 귀갓길과 잠자리, 학자금에 억눌린 일상 그 어느 즈음에 맛있는 커피 한 잔 두는 틈을 갖고 싶었다. 그 틈을 나뿐 아니라 친구와 나눈 것 같아, 내 마음의 얼굴이 더욱 해사해졌다.          







  10년이 지났다. 친구는 남편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아들 둘을 낳았고, 나는 딸 셋을 낳았다. 학자금은 과거가 되었고, 프랜차이즈 커피는 이제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믹스커피를 마신다. 육아에 치여 집에서 카페인을 섭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믹스커피를 휘젓다가, 컵 안의 동그란 갈색을 새삼 마주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유년 시절 아빠에게 커피와 프림과 설탕을 각각 두 스푼씩 같은 비율로 타서 저어줄 때부터 믹스커피의 맛은 늘 같았다. 내가 푸르렀던 학창 시절을 보내고 마음이 소란스러웠던 20대를 지나 출산과 육아의 바닥에서 기어 다니고 있는 동안 믹스커피는 변치 않았다. 주위가 변해도 나 자신만큼은 흔들리지 말고 변하지 말 것, 변함없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아낄 것, 믹스커피의 한결같은 고소한 향이 일깨워 주었다.

  

  이십 대 후반 그 시절을 함께 한 친구가 떠오른다. 연락하면 고된 육아에 지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가벼운 수다로 서로의 육아에서 서로를 건져내는 시간을 갖는다. 지금의 우리에겐 태양같이 거대한 육아가 놓여 있지만, 그래도 태양같이 밝은 얼굴을 한 아이들이 곁에 있다고 위로하며.     

  삼십 대 후반의 커피 역시 후루룩 들이켜야 한다. 아이들이 나를 향해 뛰어오기 때문에 음미할 시간이 없다. 아이들을 안아 주고 뜨거운 커피를 삼키며 한 번씩 되뇐다, 나와 친구의 한 시절을 달게 했던 그 한 마디. 

  “인생 단순해지자. 커피 한 잔 정도 여유는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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