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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Apr 21. 2021

울산의 어느 바닷가

내 엄마의 산파가 되러 떠나야겠다

  내가 태어난 곳은 ‘울산의 어느 바닷가’라고 했다. 바다와 태어난 곳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안 된다. 문을 열면 바로 바다의 파도를 만날 수 있는 곳인지, 아니면 창문에서 바다가 보이는 정도인지, 아니면 마을버스로 세네 정거장을 가야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인지. 그저 울산의 어느 바닷가라고만 들었다. 태어나고 40년이 다 되어가도록 가닿을 수 없는 곳, 나의 고향이다. 




  

  엄마는 울산 바닷가 어느 작은 집에서 나를 낳았다고 했다. 방 하나와 작은 석유곤로가 있는 부엌 하나가 있는 집이었다고 한다. 젊은 엄마는 진통을 느끼고는 겁이 덜컥 났지만, 가위를 소독하고 빨간 대야를 준비했다고 한다. 아빠는 집 밖에서 서성였고, 엄마는 집 안에서 혼자 아이를 낳고 탯줄을 끊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처럼 ‘무슨 병원 몇 시 출생’ 이런 기록이 없다. ‘대충 몇 시 즈음일 걸’ 하는 엄마의 대답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의 탄생을 의심하곤 했다. 태어난 곳도, 태어난 시간도 ‘그즈음’인 나의 출생,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궁금해하지 않으려 애썼다. 궁금해도 알 수 없는 것은, 모르는 게 답이었다.

  젊은 아빠는 조선소에서 일했다. 이유 없이 몸이 아팠지만, 어디 말할 곳이 없었다. 돌연 퇴직했고 약을 찾으러 전국으로 다녔다. 젊은 엄마는 갑자기 가장이 되었다. 미용을 배우기 시작했다. 중매로 얼굴 보고는 갑작스럽게 결혼한, 그래서 결혼의 모든 순간이 그저 낯설었던 부부에게서 내가 태어났다. 새벽이라고 했는데, 나는 새벽 파도 소리를 들으며 빨간 몸을 드러내고는 바닷가 공기를 느끼며 12월 추위에 떨었을 것이다. 바다가 가까운 그 집에서 엄마는 혼자 나를 낳고 뒷정리를 하고 아이에게 젖을 물렸을 것이다. 

  아침이 되어 간호사인 이모가 와서 엄마에게 링거를 놓아주었다고 한다. 혼자 파도 소리를 들으며 산후조리를 했을 것이다. 할머니가 와서 미역국을 끓여 주셨는데, 아직은 어렵기만 한 시어머니의 미역국을 받아 들고는 서러움이 울컥 차올랐다고 했다. 내 할머니는 산모를 생각해서 미역줄기를 다 건져냈는데, 엄마는 그때도 지금도 미역줄기를 좋아한다. 아직은 어렵기만 한 시어머니에게 말도 못 하고, 검고 흐물흐물한 미역국을 목구멍 너머로 넘겼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강원도의 산골에서 자랐다. 눈이 많이 오고 산이 많은 그곳이 좋았다. 사람들이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그곳을 대답했다. ‘울산의 어느 바닷가요’라고 하기엔, 나의 물리적 고향은 나의 심정적 고향과 거리가 멀었다. 나는 심정적 고향을 선택했다. 내 유년의 첫 기억 역시 그곳이기도 하다. 탄광의 검은 바람이 불어오던 곳, 낙동강의 발원이라는 작은 연못을 품은 곳. 나는 신화처럼 바다를 잊은 채, 생의 근원을 산에 두고 태어난 아이로 자랐다. 


  나의 근원 바다를 다시 궁금해하게 된 것은, 내가 엄마가 된 순간을 맞이하고 난 이후였다. 첫째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태어났다. 적당하고 필요한 과정을 거치며 탄생을 맞이했다. 아이가 나처럼 어설픈 탄생을 맞이하지 않은 것, 그 자체만으로 나는 좋은 엄마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둘째와 셋째 역시 깨끗한 병원에서 필요한 조치를 거치며 태어났다. 아이들이 자랄수록 나의 탄생을 알아야 할 필요를 느꼈다. 정확히는, 내 젊은 엄마의 외로운 출산을 이제라도 함께 해줘야 할 필요를 느꼈다.      


  "순리대로라면, 엄마는 앉은 자세로 낳아야 해. 나는 지금 아이를 낳으래도 집에서 그렇게 낳았을 거야."

  엄마의 고집으로 집에서 낳았다지만, 나는 내 젊은 엄마의 첫 출산이 그저 안쓰럽다. 누군가가 옆에서 손을 잡아 주고 수고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예쁜 딸이네요'라는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고, 산모 스스로 소독한 가위가 아닌 산파가 준비한 가위로 탯줄을 잘랐으면 좋았을 것 같다. 뒤처리는 그에게 맡기고, 푹 쉬고 일어나 푹 삶은 미역줄기 듬뿍 담긴 미역국을 먹는 엄마였으면 좋겠다.  






  40년을 겨우 외면해 온 나의 진짜 고향을 찾으러 떠나 봐야겠다. 분명히 지도상에 실존하고 있으나 나의 역사에 있어 사실상 단 한 번도 실재하지 않은 나의 고향, 울산의 어느 바닷가를 가 봐야겠다. 이제는 늙은 나의 엄마와 함께 가면 가장 좋을 것이나, 먹고사는 일에 바쁜 엄마가 함께 하지 못하면 혼자라도 가야겠다. 아마 그 집은 없어졌을 테고, 멋진 호텔이나 ‘바다 뷰’ 아파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는 태어난 곳 ‘그즈음’에 서서, 나의 탄생 아니 내 엄마의 외로운 분만을 함께 할 것이다. 내 인생의 원점에 서서, 이제는 엄마가 된 내가 앵앵 울고 있는 갓 태어난 나를 안아 줄 것이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외로운 임산부였던 엄마에게 내 손으로 미역국을 끓여줄 것이다. 아이의 출생지와 시간을 적어줄 것이다. 이제 아이와 엄마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따뜻하게 잠들 것이다. 

  

  시절이 좋아지면 기꺼이 내 엄마의 산파가 되기 위해 떠날 것이다. 울산의 어느 바닷가로. 





오도독 장소 리뷰 수정



브런치 작가님 중에 시를 쓰시는 분이 DM을 주셨어요. 시의 마음을 나누다가 그분이 울산 분임을 알게 되었어요. 시를 쓰는 작가님의 말간 눈을 보러 가야겠어요. 나의 바닷가도 보고 작가님도 만나러. 

커피 한 잔 해요, 우리. 

작가님이 보내 주신, 무거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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