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 이야기
2020년의 장마는 기록적이었어요. 거의 두 달 동안 내내 장맛비가 내렸어요. 지긋지긋하다, 이렇게 여름이 끝나는구나,라고 생각하던 어느 저녁, 뉴스에서 듣게 되었어요. 장마로 인해 저지대의 노년의 부부가 불어난 비에 숨지게 되었다는 소식을요. 그 소식을 듣고는 설거지를 하면서 속으로 꺼이꺼이 울었어요. 노년의 부부도 자신들이 삶이 그렇게 마감될 줄은 몰랐을 거예요.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그저 저지대에서 생을 이어온 것뿐인데, 장마는 그들을 그냥 두지 않았어요. 긴 장마의 끝에 그들은 결국 생을 거두었고, 장마는 얼마 후 끝이 났어요.
지금의 옥탑방 이전 친정집은 이층 집의 1층 옆 조금 낮은 집이었어요. 1층이 계단 몇 개 올라가야 했다면, 우리 집 문은 그 계단 옆으로 들어가야 했으니 1층보단 낮은 셈이었어요. 비가 올 때마다 문을 열면, 문 바로 앞까지 비가 가득 모여 있었어요. 빗물이 빠지는 구멍은 있었으나, 그 구멍과 별개로 문 앞은 다른 지대보다 조금 낮아서 늘 물이 고여 있었어요. 비가 조금만 더 왔다면 물이 문 안으로 들어왔겠다, 우리 집은 도대체 왜 이럴까, 우리는 왜 이런 집에서 살아야 하는 걸까, 하는 서러움이 문 앞 물보다 더 많이 밀려들었어요. 저지대에서의 삶, 이라는 주제는 그래서 제게 남들과 다르게 다가와요. 비가 올 때마다 집 안의 물을 밖으로 퍼내야 하는 뉴스 속 사람들의 표정이 나의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예요.
그래도 그런 비는 삶을 허락해 줬어요. 두 달을 쏟아부었던 장맛비는 노년 부부의 생의 자리에 고여있다가 조용하고 무참하게 그들을 단명(斷命)시켰어요. 그러고는 짧고 건조한 아나운서의 음성으로 제게 알려 주었어요, 그 해의 장마가 저지른 비참함에 대해서요.
그 해의 장마는 도대체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을까요. 늘 그랬듯 똑같은 과정으로 태어났으면서, 뜨거운 기운과 차가운 기운이 만나 서로 섞이지도 못해 어쩔 줄 몰라하며 휘몰아치다가 결국에는 비나 뿌려대는, 그 뻔한 탄생에 도대체 뭐가 억울하다고 그렇게나 길게 울어댄 것일까요. 창밖을 두드리는 장마를 외면하다가 잠을 설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어요. 겨우 무시하고 잠이 들었다가 아침을 맞이하면, 해를 가린 채 여전히 하소연을 하고 있었어요. 지겨운 이야기, 뻔한 내용, 이해하고 싶지 않은 스토리, 애써 외면하며 지냈어요. 장마는 결국 그 모든 외면을 끌어안고 저지대로 향했던 거예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노년의 부부를 끌어안고는, 그들과 함께 마지막을 완성했던 거예요. 인생의 긴 자락만큼 깊게 파인 주름, 생을 이어가기엔 빈약한 세간살이들이, 내일을 맞이하기에는 미약한 잠의 소리, 모든 것들이 장마에겐 주저앉기 적당하게 보였나 봐요. 그리고 얼마 후 장마는 끝이 났어요.
올해도 장마가 올 것이에요. 2020년 이전 몇 년 동안 이어졌던 마른 장마는 반기지 않겠어요. 하지만 자신의 변덕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2020년 같은 장마는 더더욱 피하겠어요. 그저 싱그럽게 피어날 여름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비만 주고 친절하게 물러서는, 딱 그만큼 성숙한 장마를 기다리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