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들어가기 전이었어요. 나이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아빠는 늘 내 손을 잡고 가까운 기원(棋院)으로 갔어요. 그곳엔 바둑판과 바둑알과 말 없는 아저씨와 앞마당이 있었어요. 아빠와 말없는 아저씨는 바둑을 뒀어요. 아빠는 늘 검은 돌이었어요. 저는 그 옆에서 돌들을 쌓아보려 노력하다가, 새로운 바둑판을 옆에 두고 모양 만들기 놀이를 하다가, 바둑알 튕겨 더 멀리 나가게 하다가 이내 마당으로 뛰어나왔어요. 무얼 해도 심심했어요.
마당에는 돌이 있었어요. 돌을 던져보고 모양을 만들고 쌓기를 했어요. 바둑알로 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지만, 지겹기는 마찬가지였어요. 혼자 마당을 열 바퀴 돌아보고 민들레 씨앗을 불어보고 개미들의 종착지 구멍찾기 놀이를 했어요. 무얼 해도 심심했어요.
아빠의 무릎에 파고 들어가 까무룩 잠이 들었어요. 눈을 떠 보면 파란 하늘은 좀 더 파랗게 되어 있었어요. 구름이 흘러가는 모양을 자세히 보았어요. 구름은 단 한순간도 똑같은 모양이 아니었어요. 그건 좀 재미있었어요. 다시 검은 돌 흰돌로 된장찌개를 만들고 모양을 만들었어요. 얼굴 모양을 만들어 아빠를 보여 주면 아빠는 흘끗 보고 '어, 그래' 하고는 다시 검은 돌을 쥐었어요. 아빠의 등을 타고 올랐다가 아빠의 흰머리를 잡아당겼다가 아빠 양말을 잡아당겼다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어요. 아빠아, 집에 가자. 늘 마무리는 어린 딸의 울음이었어요. 아빠는 말없는 아저씨에게 '내일 올게' 하고 일어섰지만, 나는 '내일 싫어' 하며 더 크게 울었어요. 신발을 신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해진 후여서 어린 나는 더 속이 상했어요. 이렇게 재미없는 하루는 너무 싫어.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억울함을 엄마에게 토로해요. 억울함을 키우며 잠이 들고는, 해가 뜨면 여지없이 아빠의 손을 잡고 기원으로 향해요. 또다시 시작되는 쌓기와 만들기와 던지기.
그 시간들이 30년동안 나의 무의식 속에 묻혀 있었어요. 기원 앞마당에서 시절을 보낸 나의 나이와 내 아이들의 나이가 같아지자, 그 풍경들은 돌멩이 하나 변하지 않고 의식 위로 떠올랐어요. 그리고 그 풍경은, 시가 되었어요.
아이의 마음으로 과거를 추억하니 동시가 되었어요. 제 시는 모두 어둡고 슬프고 무겁고 씁쓸해서, 저는 동시를 쓸 수 없는 사람이에요. 가슴을 열어 하늘을 보라, 같은 파랗고 예쁜 노랫말의 시는 쓸 수 없는데, 이 시는 동시로 쓰였어요. 동시도 주인의 그늘을 벗어나지는 못해서 안쓰럽고 불쌍하고 애달프네요. 어쩔 수 없어요. 저는 저의 시와 글로 저의 인생을 드러내야 해요. 동시와 시, 수필과 에세이라는 형식만 빌릴 뿐 그 모든 이야기는 저에게서 시작해요. 그러니까, 저도 몰랐다는 말이에요. 그 찬란한 지겨움이 30년의 시간을 숙성해서 시가 될 줄은요.
'교육'이라는 제도가 아직 저를 더럽히기 전, 순수한 지겨움을 마음껏 누렸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펼쳐보았어요. 그리고 알게 되었어요. 제 생의 알맹이가 들어차는 껍데기의 다양성, 그 가능성의 확장을 말이에요. 이제부터 '동시는 쓸 수 없는 사람'이 아닌, '동시를 써 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 소개할 수 있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