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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Apr 05. 2021

인류가 멸종시킨 사상은 역사에 박제되었고

제국주의자의 처방전

 

  젊은 시절 한 때, 사상과 철학에 몰두한 적이 있었어요. 기나긴 지하를 달리던 시간, 지하철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홉스와 존 롤스와 싸우다 보면 학교에 도착했어요. 강의실로 들어서면 교수님과 또는 학우들과 쉬지 않고 토론했어요. 밤에 잠들 때까지 마르크스와 애덤 스미스가 머릿속에서 논쟁을 펼치는 것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곤 했어요. 철학가들과 사상가들에게 한 발자국 다가갈수록 그들은 열 발자국씩 멀어져 내게 적잖은 괴리감을 안겨 주었으나, 그들이 밟은 길을 따라 가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느껴진 나날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철학과 사상의 후예인 우리는 20세기와 21세기를 안전하게 건너왔어요. 그들의 치열한 논쟁 덕분에, 1990년대에는 건방진 제목을 한 책들이 많이 나왔어요. '역사의 종말' 같은 책들이 대표적이에요. 진영의 싸움은 끝이 났고, 미국은 영원한 강자가 되었으며 미국산 대표 브랜드가 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온 지구를 장악했어요. 그렇죠, 모든 역사와 기록은 승리자의 것이니까요. 이따금씩 '테러'와 같은 인류의 새로운 위협이 나타나곤 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너무나도 굳건해서 그런 것들을 '작은 소란'으로 치부해 버리고 말았어요. 이제 우리에게 제3차 세계대전 같은 단어는 생길 일이 없을 거예요. 전 세계는 '위아 더 월드'가 되었으니까요. 전쟁은 영화 속에서만 의미 있는 단어가 되었고, 영화 속 적마저도 지구 밖 존재 그러니까 외계인 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되었어요. 인류가 인류와 싸우는 것은 이제 그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해요. 우리는 하나의 사상과 철학에 잠식되었으니까요.





  결혼 전 중국어 강사를 하던 시절, 새벽 수업을 위해 매일 5시 반 지하철을 탔어요. 그래도 자리는 없었어요. 모두들 7칸의 나란한 의자에 각자의 삶을 지정받아 허락된 시간만큼 코를 골았어요. 내가 선택한 건 아니지만, 인류가 선택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우리를 지하철에서 잠들게 했어요. 고개 숙이고 팔짱을 낀 사내들, 그 사이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하는 워킹맘들을 보며 나는 다시 사상과 철학을 생각해야만 했어요. '자본주의'라는 말은, '자본'이 주(主)가 되는 념이니 우리는 모두 자본을 위해 살아야 하는구나. 그리고 나를 포함한 모두는, 자본을 위해 삶을 조금씩 떼어다가 지하철 의자 밑에 붙이고 있었어요.

  문득,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계 3차 대전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 설사 일어난다 해도 지금의 군 체계는 1,2차 세계대전 때와는 다르니 그때와 같은 전인류적 피해는 없을 수 있겠지요 -, 우리는 어쩌면 매일을 전쟁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출퇴근길, 오전의 업무 보고, 오후의 전화 통화,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상대방의 표정과 말투, 저녁이 될수록 강해지는 중력의 힘, 우리는 이 모든 것에 싸워 매 순간 이겨야 했어요. 그러고 나면 우리에게는 모든 것을 낫게 해주는 한 장의 처방전이 쥐어져요. '자본'. 그 힘으로 다시 매일 전쟁을 치러내요.






  제가 쓴 '제국주의자'는, 역사적 의미로서의 (호전적) 제국주의자의 의미는 아니에요. 그저 마음 한편에 광활한 대륙을 꿈꾸던 사내, 유년 시절 역사 속 위인들을 품어보았다가 자라면서 25평에 영혼을 끌어모은, 우리 곁을 지나 바삐 출근을 한 사내예요. 매일의 전쟁에서 싸우고 지쳐 들어오는 그에게 주어지는 자본의 온도가 조금은 따뜻했으면 하는 마음이, 진정한 처방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시를 쓰게 했어요. 그 마음이, 오늘의 전쟁에서 얻은 상처에 가닿아 연고가 될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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