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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Apr 13. 2021

부활절에 부활한 것들

뒤늦은 부활절 회고

  4월 2일, 어린이집 차량에서 내리는 둘째 아이의 손에 딸랑딸랑 무언가 들려있다. 아 또 장난감.. 지겨워.. 하는데, 자세히 보니 작은 계란 두 개가 담긴 종이컵이다. 아, 부활절이구나. 교회 소속 어린이집에 다니다 보니, 부활절 계란 꾸미기를 해온 것이다. 엄마, ㅈㅇ이가 만들었어요~ 그래그래, 너무너무 예쁘게 잘 만들었네.

계란 품은 닭 꾸미기


  교회를 2년 정도밖에 다니지 않아서 부활절의 참된 의미가 아직 깊이 와 닿지는 않는다. 장사한 지 3일 만에 우리 곁에 다시 오신 예수님을 기리는 날이라 크리스천들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날이다.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뜻인지 조금씩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기려는데, 코로나가 우리의 일상을 덮쳤다. 교회는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올해 부활절은 나에게 여러 가지로 '부활(復活)'의 의미를 돌아보게 해 주었다. 예수님의 진정한 은혜가 새로이 이 땅에 내려진 시절에 새삼 감사하며.





  겨우내 새 잎이 돋아나지 못하고 시들기만 하던, 우리 집 유일한 화분에 싱그러운 초록빛이 돌기 시작했다. 죽은 줄로만 알았다. 언제 버리지, 생각만 하고 게으름 피우다 차마 버리지 못한 화분이었다. 아이들 손에 닿을까 봐 싱크대 위에 두었다. 그러니까, 이 화분은 바람도 햇빛도 안 드는 곳에서 설거지의 세제와 뜨거운 물을 견디며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미안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둘만한 곳이 없었다.

  잎이 4개였는데, 천천히 시들더니 두 개만 겨우 남아있었다. 그마저도 하나는 꽤 많이 갈변된 상태였다. 버리려는 내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4월 초 새 봄의 새 초록을 틔었다. 이 봐, 봄이라고. 나도 생명이야. 봄의 증거가 되어 줄게, 라며 말간 얼굴을 보였다.

새롭게 올라오는 아이 보이시나요



  이 뿐만이 아니다. 약속이나 한 듯 나의 영양제들이 똑 떨어졌다. 나이가 들수록 '1일 1회, 물과 함께 복용하세요'라고 적힌 동그란 통들이 늘어간다. 비타민 D 위주의 종합비타민제, 철분, 칼슘, 거기에 구독자님께서 보내 주신 눈 건강 영양제까지!(감사합니다. 잘 먹고 글 열심히 쓸게요!) 모두 4월 4일 일요일에 새로이 뜯은 것들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몸은 필요로 하는 것들이 많아진다. 매년 달라지는 몸에 영혼의 나이는 그대로니, 그 간격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영양제를 쌓아두게 된다. 내 눈 앞에 새롭게 정열 하여 부활한 영양제 통들이여! 앞으로도 한동안 잘 부탁한다!

 




  평온하기만 해도 부족할 일상을 꽤나 거슬리게 괴롭히는 마음의 가시가 있었다. 한 군데도 아니고 여러 군데서 돋아나 이리 눕고 저리 누워도 여기저기를 찔러댔다. 드라마를 보아도, 책을 읽어도, 설거지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의 열등감과 시기심이 끊임없이 괴롭혔다. 내 감정들이 나를 비웃으며 마구 흔들어 대고 있었다.

  문득 아빠가 떠올랐다. 택배일을 하는 아빠는, 사회적으로는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평생의 마음의 스승이다. 아, 어찌 아빠를 잊고 있었을까. 누구보다 훌륭한 마음의 스승을 곁에 두고 나는 어찌 이리 겉돌았을까. 오랜만에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는 대부분 운전 중이라 통화를 오래 할 수 없는데, 그 날따라 휴게실에서 물건 나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늘 그렇듯 몇몇 실없는 소리를 하다가 이야기를 꺼냈다.

  "아빠, 나 상담이 필요해."

  조용히 듣던 아빠는 나의 고민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해 주었다.

  "목소리 큰 사람하고 목소리 작은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겨.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지. 그런데 목소리 큰 사람은 누가 이기는지 아나. 목소리 없는 사람이 이겨. 상대방이 아무리 목소리가 커도, 그 목소리를 다 품을 수 있는 마음이 큰 사람은 목소리 없이도 이길 수가 있어."
  "석가에게 제바달다가 있었고, 예수에겐 유다가 있었어. 제바달다는 석가가 깨닫고 나서도 계속해서 석가를 괴롭혔어. 모든 큰 사람에게, 큰 일에는 언제나 그런 존재들이 있어. 그런 존재들에 휘둘리면 일을 그르치는 거야. 예수님이나 붓다는 그런 존재들을 곁에 두고도 큰 일을 이루셨잖아. 너는 그냥 너의 일을 하면 돼."

  

  아빠는 큰 울림이 있는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 주고는, 나 이제 일 나가봐야 된다 또 전화해, 하고는 끊었다. 통화 중에도 말로 표현 못할, 딸에 대한 사랑과 그에 응하는 감사의 마음이 이 쪽 저 쪽 수화기를 통해 흘렀다. 눈물이 자꾸 흘러 대답을 잘하지 못했다. 아빠의 마지막 말에도 겨우 '응' 할 수 있었다. 칠순의 인생을 관통한 가르침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주는 아빠의 사랑을 받고, 내 마음은 다시 태어났다. 부활절에 어울리는 마음가짐이었다.






  여전히 작은 감정의 소란들과 일상의 부침이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화분은 창가에 두었다가 무거운 암막커튼이 바람에 흩날리는 바람에 부러져 부목을 대주고 있다. 영양제는 바쁜 주말 이틀을 챙겨 먹지 못했지만, 월요일 저녁엔 한 알씩 톡톡 털어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아빠의 가르침만큼은 마음속 영양제를 챙겨주지 않아도 자꾸만 내 마음에서 커지고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햇살과 은혜를 양분 삼아 매일 마음의 구멍을 메워 주고 있다. 세상의 소리를 다 덮을 만큼 마음의 크기를 가질 것, 그 마음의 주인이 되어 무성(無聲)으로 갈등에 임할 것, 삶의 장애들에 의연한 태도로 그들과 함께할 것. 오늘의 한가한 오후에 감사하며 가르침을 다시 정리해 보고 있다. 헝클어진 마음결을 가다듬고, 매일 다시 태어나는(復活) 나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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