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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Mar 25. 2021

결혼하면 뭐가 좋아요? 라는 질문

그에 대한 세 가지 대답

  남편과 '오늘부터 1일' 하기로 한 날부터,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사실 남편은 정식으로 사귀기 전부터 '결혼'을 꺼냈다. 오랫동안 '혼자 살기'를 고집해 온 나에게 결혼은 생소한 단어였다. 사실, 남편과의 교제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만나다 아니다 싶으면 헤어지면 되지, 결혼하지 않아도 돼'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만남이었다.(그때만 해도 내가 애셋 엄마가 될 거라곤 진심정말진짜아주매우완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데이트 때마다 남편은 대화의 76% 정도를 결혼으로 이끌어 가려는데, 나는 자꾸만 주저되었다. 결혼을 해서 도대체 무어가 좋은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봐온 결혼생활은 엄마 아빠였는데, 그들은 좋은 본보기가 되지는 못했다. 엄마는 생계와 가사를 모두 책임졌다. 늘 피곤해했고 잠이 부족했다. 우울했고 밤에 흐느꼈으며 화가 많았다. 아빠는 엄마의 푸념 받이였고, 좋은 아빠였지만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자주 싸웠고 소리를 질렀다. 도저히 결혼의 좋은 점을 쉽게 찾아낼 수 없는 부부였다. 행복하지 않은 가정은 아니었지만, 자녀로서는 보고 배울 것이 없는 부부라고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만 결혼 이야기를 하는 이 사람이 좋았다. 결혼의 긍정적인 모습을 떠올리고 싶었다. 쉽지 않았다. 결혼의 좋은 점을 다른 이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세 표본을 구했다. 첫 번째는 결혼한 지 5년이 채 안 되는, 어린 딸을 키우는 한 살 많은 언니였다. 두 번째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지만 인생 경험이 풍부한 대학원 동기였다.(동기였으나 나이는 10살 많았기에 선배라고 칭하겠다) 세 번째는 결혼한 지 20년 가까이 되는 대학원 동기였다.(동기였으나 나이는 거의 20살 많았기에 선생님이라고 칭하겠다) 30대, 40대, 50대의 기혼자 인터뷰 대상들과 연달아 3일 약속을 잡았다.




  한 살 많은 30대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결혼하면 뭐가 좋아요?"

  언니는 단 두 글자로 대답했다.


  "해 봐!"


  아니 언니, 그런 대답 말고 좀 자세하게 좋은 점 말해줘 봐요.

  "야, 말로 표현 못 해. 결혼은 해 봐야 알 수 있어. 결혼의 좋은 점 알고 싶으면 해 봐. 해 보면 결혼의 좋은 점 나쁜 점 알 수 있어!"

  쏘쿨 언니였다. 더 묻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근황 토크를 하며 헤어졌으나, 근황 토크의 대부분이 형부 이야기여서 어쩐지 결혼의 나쁜 점에 대해 듣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0살 정도 많은 40대 선배에게 물었다.

  "홍샘, 결혼하면 뭐가 좋아요?"

  "결혼하면 좋은 거 엄청 많지요. 안정적이고 집에 가면 예쁜 아이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 같이 있잖아요."

  선배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는 늘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결혼에 대해서도 당연히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럼 나쁜 것도 있지요? 좋은 점과 나쁜 점 중에 뭐가 더 많은 거 같아요?"

  "나쁜 것도 당연히 있지요. 청소도 안 되어 있고 매일 힘들다고만 해요. 내가 다 해 주는 것 같은데. 그래도 뭐, 그런 건 괜찮아요.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좋아요, 결혼. 누구와 하느냐가 관건인데, 사실 누구와 해도 그 사람을 향하는 진샤 씨 마음이 더 중요해요. 결혼의 좋은 점 나쁜 점은 결국 진샤 씨 마음에 달려 있어요."

  너무나도 바람직하고 교과서적인 대답이었다. 더 물을 수가 없었다. 좋은 인생 선배이기에, 딱 그만큼 좋은 대답을 듣고 왔다. 그러나 너무나도 정해진 듯한 대답 같은 기분은 떨칠 수 없었다.



  20살 정도 많은 50대 선생님께 여쭈었다.

  "선생님, 결혼하면 뭐가 좋아요?"

  대답 대신, 웃으시더니 술을 들이켜신다.

  "결혼.. 좋을 게 있나. 그저께도 이혼하고 싶었는데."

  아, 이거다. 이런 대답. 날 것의 대답. 역시, 20년 사신 분이 여전히 이혼을 생각하신다면 좋을 게 없는 거야.

  "이틀에 한 번씩 이혼하고 싶은 게, 그게 결혼이에요."

  하시더니 안주를 한 입 드신다. 그러고는 말씀하신다.

"진샤 씨, 그런데 왜 내가 이혼 안 하고 살고 있는지 알아요. 나보다 더 훌륭한 여자가 못난 나를 데리고 살아주는 걸 알아요. 그게 고마워서 그래요."


  정답을 찾은 것 같았다. 결혼은 그런 거였다. 이틀에 한 번씩 이혼하고 싶어 져도,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붙잡고 지내는 것. 아내는 남편과 가정을 우선으로 하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향한 존경의 마음을 감추지 않는 것. 이런 마음을 잊지 않고 지내는 것. 이런 인격을 지닐 정도로 성숙되는 것. 그것이 결혼의 좋은 점이었다.



  20대의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단 하나의 문장을 붙들고 결심해 왔었다. 그 유명한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면 하고 후회해라.' 나는 선생님 말씀을 기둥 삼아 결혼을 하고 후회하기로 결심했다. 선생님이 알려준 결혼의 좋은 점은, 결혼의 자잘한 안 좋은 점들을 상쇄시킬 정도로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5개월 후, 나는 5월의 신부가 되었다.







  그로부터 8년 후, 나는 애셋 엄마가 되어 매일 지지고 볶고 샤우팅 하고 후회하고 안아주고 또 혼내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며 지내고 있다. 나를 늘 치켜세워주고 나를 아이처럼 혼내고 달래주고, 나에게 늘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있다. 나 역시 그 사람에게, 책임지느라 고생해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실로 고맙고 그러다가 울컥하고 또 한없이 미안하고 한편으론 안쓰럽고 그래서 속상해한다.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결혼해서 후회한 물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혼하지 않았으면 더 후회하며 지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결혼 생활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소소하면서도 거대한 그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결혼하면 뭐가 좋냐고 물어오면 대답해줄 것이다.

"그건 말로 해줄 수가 없어. 일단 결혼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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