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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Mar 24. 2021

부적응과 무적응을 지나고 나서

참치회가 가르쳐준, '적응'의 단계

  결혼 후 첫 번째 월급날 저녁, 남편은 예약한 곳이 있다며 무작정 나를 이끌고 나갔다. 동네의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참치 전문점이었다. 고백하건대 그곳은 나의 첫 번째 참치 전문점이었다. 물론 참치회라는 것도 처음이었다. 생선회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무한리필’이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참치회 이전 음식들이 정갈하고 맛있어서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참치회가 나오는 순간부터 자꾸 ‘무한리필’ 글자 뒤의 가격에 눈이 갔다. 솔직히 말해 참치회는 내 입맛과는 거리가 멀었다. 생선회의 비릿함이 입안 가득 채웠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을 겨우 참았다. 게다가 차가웠다. 차가운 회를 한 점 두 점 입 안으로 밀어 넣을 때마다 뜨거운 순댓국이 떠올랐다. 육개장의 얼큰함도 그리워졌다. 남편은 고추냉이만 올려 먹어도 좋다, 참기름만 찍어 먹어 봐라, 한국 사람들은 김에 싸서 먹는 걸 좋아한다, 라며 먹는 방법을 친절히 알려 주었다. 그러나 고추냉이만 올려 먹어도, 참기름만 찍어 먹어도, 김에 싸 먹어 보아도 한결같이 비릿하고 느끼했다. 부위별 맛의 차이도 알려 주었으나, 나에겐 그저 참다랑어 한 마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중간중간 곁들임 음식도 참치 조림이나 참치구이였다.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부적응의 시간이 지나고 식사의 마무리 단계에서 선택지가 주어졌다, 마끼와 알밥과 우동. 참치회를 먹으면서 오히려 배가 고파진 나는 마끼와 알밥과 우동을 모두 부탁했다. 그날 나는 마끼와 알밥과 우동으로 배를 채우고 10만 원을 지불했다.


  그 후에도 두 번 정도 참치 무한리필을 갔다. 남편이 너무나도 좋아해서 일단 따랐다. 나에겐 콘치즈와 마끼와 알밥이 있으니까. 참치회는 아무리 먹어도 적응할 수 없는 맛이었다. 부적응의 시간을 거치며 나는 결심했다, 이 맛에 적응하려 노력하지 않기로. 그저 마음을 비우고 먹기로 했다. 나에겐 부담스러운 금액이니, 일단 무적응의 마음가짐으로 많이 먹어 보기로 작정했다. ‘손해 보지 않겠다’는 단순한 결심이었다.



  '무적응'에의 결심은 생각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무념의 마음으로 입 안에 밀어 넣은 참치회는, ‘참치 미각’을 일깨워 줬다. 특유의 고소함과 부드러움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부위마다 맛과 식감이 전혀 달랐다. 같은 부위여도 숙성된 정도에 따라 맛이 차이가 났다. 실장님께 이것저것 물어가며 본격적으로 머릿속에서 참다랑어를 해부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초록창에 ‘참치 해체 쇼’를 검색하며 예약 날짜를 잡고야 말았다. 그 날을 기다리며 마치 생물 선생님을 좋아하는 여고생처럼 형광펜을 옆에 두고 참치 부위를 공부했다.

  해체 쇼를 며칠 앞두고 안타깝게도(?!) 테스트기는 두 줄을 드러냈다. 임신과 수유는 참치회의 천적이었다. 다른 회는 가끔 먹어도 된다지만(그것마저 최대한 피하라지만), 참치만큼은 수은 중독의 위험이 커서 절대 안 된다고 한다. 결국 참치 해체 쇼는 무기한 연기되었다. 임신과 모유수유의 금욕 기를 보내고, 참치를 한 번 먹고 나니 또 임신이 되었다. 임신-출산-수유 3종 세트 2년이 끝남과 동시에 셋째가 찾아왔다. 나에게 참치는 '동ㅇ참치캔' 말고는 불가한 시절이 이어졌다.

  그렇게 내 인생 최장의 금욕 기가 몇 달 전에 드디어 끝났다. 요즈음은 근처 맛있는 참치 전문점을 검색해 보고 코로나 상황 피해 방문해 보는 재미로 살고 있다. 아이들이 미역국을 쏟고 '죽 더 줘!'를 계속 외쳐대고 먹다 잠이 들고 연달아 화장실 가겠다고 하고 유ㅌ브 보겠다고 난리를 쳐도 화나지 않는다. 눈 앞에는 참치가 있고 입 안에는 참치가 있기 때문이다.



 




  도저히 적응할 수 없어 적응하지 않기로 했다. 부적응이 이끌고 온 무적응의 끝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적응’만이 여실하게 드러나 있었다. 사실 모든 일이 그랬다. 처음에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일들이 있다. 글쓰기도 그랬다. A4용지 한 장을 채우는 일은 나에게 적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글을 쓰는 것에 적응할 날이 올까, 라는 생각만 하던 어느 날, 갑자기 커서가 부드럽게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내게 글쓰기는 적응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부지불식간에 무적응의 단계를 거쳐 어느새 글쓰기에 적응해 버렸다. 참치회의 부드러운 고소함이 혀의 감각을 깨운 것처럼, 일상에 스며든 글쓰기의 정갈한 힘이 손 끝의 감각을 깨우고 있다. 이제 글쓰기는 나의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그 무엇'이 되었다. 아, 물론 참치회도. 무야호.



       

  근래 남편이 홍어회를 자주 사 온다. 포장을 뜯는 순간 생각한다. 모든 것의 첫 단계는 부적응이고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게 되어 있지만, 홍어회만큼은 영원히 적응하고 싶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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