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알람을 켜 두지 않는데, 브런치 알람이 울린다. 십중팔구 브런치 북 발행이다. 어떤 분이 어떤 브런치 북을 내셨나 구경 갈까~
으앗, 이런 날이 오다니! 내게, 이런 날이! 오래 살길 잘했다(!?)
오 마이 갓 언빌리버블 룩앳댓 원따우전 썹스크라이버s
구독자가 1,000명이라니!
처음 브런치 시작할 때만 해도, 브런치 4수생의 글 따위 누가 봐주겠어, 세 자리만 찍으면(100) 하산해야지, 100분과 오손도손 알콩달콩 잘 살아야지 했는데, 어쩌다 천명이 되었다.(카카오톡 소개가 큰 일했다) 물론 구독자가 만 분이 넘으시는 분들도 많으시지만(비웃지 말아주셔요), 나에게 네 자리 입성은 감사하고 땡큐 하고 셰셰 하고 아리가토 하고 멝시볽후한, 전 지구적으로 고마운 일이었다.
앗, 잠시, 천번째 구독자님! 급박하게 메일을 보냈다.
급 선물
마치 싸2월드 시절 이벤트 걸어 놓고 '누군가 걸려라, 걸리기만 해 봐라' 하며 도토리 쏘는 마음으로 기프티콘을 드렸다. 감사하고 고마운, 세상 단 한 명뿐인 나의 천 번째 구독자 분에게. 감사히도 받아 주셨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작가님!
중간에 50일 정도를 쉬긴 했지만, 브런치 6개월의 성과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돌아다니며 작가님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든 순간이 행복이었다. 그럴 때마다 묘한 호기심이 늘어났다. 이 분은 어디에 계실까, 어떤 얼굴을 하셨을까, 말투는 어떨까, 이 분이 하신 김치는 무슨 맛일까, 어쩌다 이렇게 눈물 펑펑 쏟게 하는 글을 쓰는 마음을 가지게 되신 걸까.
막연한 궁금증이었다. 궁금증이 마음속에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던 어느 날, 귀여운 본인 얼굴을 대문 사진에 걸어두신 작가님이랑 댓글 릴레이를 하다가 그분의 집이 내가 지내던 동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자주 가던 두루치기 집 근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늘 먹고 싶던 그 맛집의 주변에, 궁금하던 작가님이 계신다! 이런 건 고민할 게 없는 거다. 작가님, 아이들이 3월이면 어린이집에 다 가요, 그때 얼굴 봐요.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기꺼운 허락이 돌아왔다. 그 날을 기다리며 겨울을 보내고 막내를 어린이집에 적응시켰다.
서정주 시인은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고 했다. 그리운 사람이 지척에 있다면, 고민할 것 무엇이던가. 그리운 이가 만나준다고 하면, 미룰 것 없이 만나는 거다.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거다. 약속 시간을 정했고, 당일 아침 작가님께 카톡이 왔다.
'오늘 비가 온대요, 조심히 오세요'
서서울 톨게이트를 지나니,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친다. 이 무슨 오즈의 마법사의 진샤. 어라, 눈? 눈?? 누운??? 4월 중순에 눈이라니, 그것도 눈보라 회오리가 몰아친다. 만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와이퍼에 쓸리는 눈의 정체는 다름 아닌 벚꽃잎이었다. 아, 나의 올해의 마지막 벚꽃은 광명에서 보는구나. 작가님 만나러 가는 길,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리는구나. 곧 내가 2년을 살았던 익숙한 동네가 눈에 들어왔고, 두루치기 집 안에는 사진보다 더 맑은 얼굴의 작가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도 말간 얼굴빛은 가려지지 못했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는 세 시간 내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글을 쓰는 작가와 평범한 아내와 보컬 연습생과 인생 선후배가 나와 작가님 사이를 훅훅 지나갔다. 사람 사이의 일이라는 게 그렇듯, 진심이 있으면 나이는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린다. 작가님은 작가의 서랍에서 나오지 못한 몇십 개 이야기 중 몇 가지를 꺼내 주었고, 하나같이 재미있는 이야기들에 빨려들어갔다. 빨리 세상에 나와 빛을 발해야 하는 글들이었지만, 여름에 육아휴직이 끝나는 작가님은 그 전에 해 두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았다. 그 이야기들도 하나같이 재미있었다.
나에게 글 말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 물으셔서,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니며 불상을 만져보고 싶고 테드 강연에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맞아요, 그래야 세바시 언저리라도 가볼 수 있어요, 꿈은 클수록 좋으니까요'라고 말하며 서로 깔깔댔다. 창 밖의 비가 언제 그친지도 모르게 서로의 생의 부분을 나누었다. 왕복 130킬로가 전혀 아깝지 않은, 오히려 편도 130킬로였어도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작가님 손이 나와야 해요!
광명 작가님을 만나기 며칠 전 전화주신 작가님, 이젠 작가님 차례입니다.
브런치 시작하고 며칠 만에 어쩌다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알게 된 작가님이었다. 이 필력을 어쩜 좋지, 하고 보니 전직 신문기자에 카피라이터 경력이 있으셨다. 막말로 타고난 '글쟁이'였다. 프로젝트에 올려주신 글을 10번을 연속으로 읽었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이런 글을 쓰시는 분은 어떤 분이실까,라고 생각했었다.
서로 구독자가 되어 읽고 읽히는(?!) 브런치 생활을 하던 중, 작가님께서 오는 이 안 막는다는 류의 글을 쓰셨다. 오호라, 치덕치덕 대야지. 나는 작가님이 궁금하고 알고 싶으니 막무가내로 들이댔다. '작가님께 제안 메일이 도착했습니다'라는 브런치 알람이 오더니, 아니 이 분 찐이다, 010으로 시작하는 11자리 숫자를 보내오셨다. 일하니까 2시 이후 연락해요, 라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문장까지 곁들이셨다. 심장아, 나대지 마. 일상에 치이다가 며칠 후 답장을 드렸고, 또 며칠 후 그 번호의 전화가 걸려 온 것이다. 심장아 나대지 마 22.
아, 이 분 뭐지. 이 쾌활한 보이스의 정체는 뭐지. 작가님의 어떤 글은 문학의 정수를 이루는 듯하고 어떤 글은 개그감 폭발하고 어떤 글은 인생을 관통하는 사유를 보여 주시는데, 이 모두를 아우르는 듯 살짝 빗나간 유쾌함. 다행이다, 너무 어렵지 않게 생각해도 되겠어.
지난 화요일, 문제의 데이트 신청을 했다. 작가님 뭐하시나요, 15분 후 온 답은, 술 먹음요.아 이 분 찐이다. 금요일에 컵휘 사주세요. 금욜 오후 콜~~~. 아니 뭐가 이렇게 쉬워. 이러면 더 매력 폭발인데. '작가님께 뭐부터 여쭤봐야 하지, 궁금한 게 너무 많은데'라고 나름의 리스트를 짜며 잠자리에 들었다.
2시에 보기로 했는데, 나의 시각은 뇌에 잘못 전달되어 1시에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뭐 어떠랴, 근처에서 짬뽕을 먹으며 작가님께서 어제 올려주신 글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최종면접을 앞둔 것처럼 긴장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물론 최종면접까지 가 본 적은 없었으나, 최종면접의 심리 상태를 알 것만 같았다. 주황색 옷으로 발랄함을 시각적으로 표현해주신 작가님과의 한 시간은, 역시나 예상대로 빨랐다.
언니라고 불러, 작가님의 아메리카노와 나의 바닐라라테
작가님도 글의 소재로 고민하셔서 놀랐고, 브런치에 꺼내지 못하는 마음이 있으시다는 것에 놀랐고, 그 이야기들이 나의 것들과 많이 비슷해서 더욱 놀랐고, 대단해 보이기만 한 작가님이 아이들 앞에서는 그저 엄마라는, 그 모든 사실이 놀랍고 놀라웠다. 열네 살어린 나를 대해 주시는 눈빛과 마음이 한결같으셔서 그것도 또한 놀라웠다.
"브런치 작가님들 만나는 거 너무 좋아요, 이걸로 글을 써볼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자기 괜찮네, 그렇게 주변 사람들 취재해서 글로 쓰는 거 좋을 거 같아."
'취재'라는 단어가 마음의 밑바닥에 눌어붙었다. 얼마 만에 듣는 단어인가. 대학생 기자, 인턴기자 하는 동안 들어본, 평생 듣고 싶고 뱉고 싶었던 단어를 내 앞의 인생 선배님께서 아무렇지도 않게 해주셨다. 눈물이 한순간 날 뻔했지만, 다행히 티 나지는 않았다.
우리 아가들 먹으라고 샀어, 하며 손에 케이크를 들려주시고는 차가 출발하는 것까지 봐주셨다. 집에 오는 내내 울었다. 내가 한 거라곤 쓰고 싶은 글을 쓴 것뿐이었는데, 이렇게까지 힘과 위로와 용기를 받을 일인가 싶었다. 감사한 말들, 눈빛, 표정, 말투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취재'는 어쩐지 한동안 마음 밑바닥에 계속 그렇게 눌어붙을 것만 같은 기분을 간직하고 집에 도착했다.
글에 파묻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슬럼프, 글럼프, 브태기 이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글을 쓸수록 더 쓰고 싶은 생각만 들고, 글의 욕구를 글의 현실이 따라가지 못하는 나날이었다. '써내야 한다'는 압박이 중량을 더하고 있었다. 환기가 필요했다.
중국어 강사를 하던 시절, CNN방 선생님이 해 준 이야기는 지금도 자주 떠오른다. 세 가지 유형의 멘토에 대한 이야기였다. 첫째는 누구나 아는 멘토이다. CNN방 선생님은 '유재석'이나 '김연아' 같은 사람을 예로 들었다. 두 번째는 '경험'이었다. 경험에서 얻고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경험은 제한적이니 그 경험을 무한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책'을 읽어야 했다. 고개를 숙이고 끄덕이며 들었다. 세 번째 멘토는 '주변의 사람'이었다. 힘이 들거나 충고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물어 보고 기댈 수 있는 사람. 이때 고개를 들어 선생님을, 선생님의 눈을 봤다. 나의 인생관과 정확히 일치했다. 나는 늘 '사람 부자가 진짜 부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기회가 되면 이 이야기부터 꺼냈다. 나에게 진짜 부자는 사람 많은 사람인데, 당신을 만나 나는 부자가 되었다고.
브런치를 하며 교류하는 작가님들과 구독자님들이 늘 궁금했다. 어떤 마음과 표정으로 이 글을 쓰신 걸까,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시는 순간의 눈빛이 알고 싶었다. 나의 글을 읽는 얼굴들이 궁금했다. 결국 모든 글은 사람이 쓰는 것이고,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사람의 한 부분을 떼어내는 행위와도 같다. 나는 글 뒤에 숨은 '작가'들이, 그 작가들을 향하는 구독자들이 늘 궁금했다.
글에서 한 발짝 멀어져 사람을 만났다. 그들이 웃을 때 눈이 얼마나 작아지는지, 그들의 목소리는 어떠한지, 말할 때 손은 어디에 두는지, 그들이 나의 글을 보는 폰은 어떻게 생겼는지를 내 눈으로 보았다. 무엇보다, 그들 글 밖의 진짜 인생을 보았다. 그들의 글은 그들의 작은 일부일 뿐이었다. 글 밖의 진짜 인생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차마 글에 담지 못하는 '진짜 이야기'들을 '육성'으로 들려주었다.
무엇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을 얻었다. '작가님 글만큼은 무조건 챙겨 봐요', '자기 글은 힘이 있어, 빨아들이는 힘'과 같은 말들을 반복해서 들은 것이다. 결코 이런 이야기를 들으려고 만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의 인간적인 매력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들은 하나같이 내 글에 힘과 용기와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에 대한 힘과 용기와 위로와 같은 것이다. 내 글은 나 자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광명 작가님 앞에서는 함께 하는 내내 눈물을 닦았다. '언니' 작가님과는 오래 하지는 못했지만, 집에 오는 동안 뜨거워진 마음을 쏟아냈다. 그래서 이렇게 남겨두고 있다, 이 소중한 경험의 기록을. 글로 만난 사이에서 얻은 것에 대해, 서로의 글과 인생을 아끼고 응원해주는 마음에 대해.
여전히 궁금한 작가님, 구독자님들은 많다. 전화번호 남겨주신 작가님, 카페 사장님 작가님, 나의 신혼집과 가까운 곳에 계신 작가님, 카톡으로 농담뿌셔먹기 하고 두 시간 후에 눈물 질질 나게 하는 글 쓰시는 작가님, 미국 주소 남겨주신 작가님, 인도에서 한국행 비행기 끊자마자 연락 주신 작가님, 그리고 이 글을 보시는 모든 작가님, 구독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