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May 21. 2021

잔치를 치르는 마음으로, 잔치국수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내부도 깔끔했다. 점심시간이 되기엔 이른 시간이어서 손님은 나 혼자였다. 잔치국수를 시키고는 오롯한 혼자만의 시간을 어색해하고 있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고서 처음으로 낮잠을 자고 오는 날이었다. 갑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을 먹고 싶었다. 고민할 것 없이 국숫집으로 들어간 것이다. 단무지와 김치, 어묵볶음이 밑반찬으로 나왔다. 잠시 후 동그란 대접에 잔치국수가 나왔다. 맑은 육수에 소면이 예쁘게 말려 있고, 그 위로 당근과 달걀부침이 소복하게 올려져 있었다. 갑자기 컥, 하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정갈하게 음식 대접을 받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 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난 1년, 대부분의 식사는 서서 해결했다. 거의 국에 밥을 말거나, 김과 김치를 주 반찬으로 먹었고, 가끔 참치통조림을 까서 먹었다. 사과나 시리얼로 배를 채웠다. 그러나 아이의 이유식은 매끼가 달랐다. 늘 아이가 우선이었다. 잠이 부족했으나 마음대로 잘 수 없었다. 도대체 아이가 왜 우는지, 갑자기 왜 자지러지는지 알지 못했다. 실수의 연속이었고, 그랬기에 모든 것은 엄마 탓이었다. 홀로 육아에 던져진 시간 속에서 허우적댔다. 애를 썼으나 아이는 끊임없이 울었다. 자꾸만 커가는 아이의 몸과 울음소리를 앞에 두고 나도 같이 소리 내어 울었던 날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독박육아’라고 단순히 이름짓기엔, 서툰 엄마가 자기도 몰래 쌓은 우울의 높이가 너무나도 높았다.

  ‘엄마’라는 새로운 자아만 키워내고 ‘나’는 자꾸만 잃어가던 어느 날, 집 근처에 육아종합지원센터가 생겼다. 아이를 시간에 보육에 맡기고 나오는 데, 옆 방에 '부모상담'이라고 붙어 있었다. 문을 두드리자 따뜻한 눈빛의 여자분이 앉아 계셨다. 상담해도 되나요, 라고 했더니, '지금 예약이 없어서 괜찮아요. 무엇을 상담하고 싶으신가요'라고 말해주셨다. 갑자기 이루어진 상담이었다. 2시간의 상담 시간 중 1시간 40분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울기만 했다. 나는 아무 이야기도 안 했는데, 그 분도 덩달아 눈물을 흘리셔서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눈물만 닦아냈다. 눈물 콧물 닦은 휴지가 한가득 쌓여 내 마음을 대신해 주었다. 상담(相談)에 말이 없는 이상한 상담이었지만, 나에겐 그 자체로 큰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그다음 주에 아이는 어린이집을 나가기 시작했다.





  “국수 불어요, 얼른 먹어요.”

  

  젓가락도 들지 못하고 울기만 하는 나를 보다 못한 분식집 사장님이 말을 걸어왔다. 그동안의 고됨을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아이 키우느라 고생했지, 이거 먹고 기운 내. 동그란 잔치국수가 건네는 위로를 듬뿍 받아들고는, 젓가락을 집었다. 면이 불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조용한 분식집에서 나는 천천히 잔치국수를 먹었고, 사장님의 눈빛은 천천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아기 엄마, 오늘 내가 사주는 거야. 대신 자주 와서 먹어 줘요.”

  


  또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지만 애써 숨기지 않았다. 그저 감사의 인사만 건네는 내게 할머니의 얼굴을 한 사장님은 어깨를 꾹꾹 눌러 주었다.   


  갈 때마다 양이 늘어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쉽게도 두 달 후에 이사를 가버리는 바람에 사장님을 많이 뵙지는 못했다. 5년이 지난 지금, 사장님은 아직 그곳에 계실까. 국수 한 그릇 앞에 두고 눈물 쏟아내던 젊고 서툴렀던 아기엄마를 아직 기억하실까.






  지금도 가끔 아이들에게 내 안과 밖의 모든 것을 덜어주고 허한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날이면, 국수를 삶는다. 멸치 우려낸 육수에 하얀 면을 동그랗게 말아 넣고 휘휘 저어 본다. 잔치국수를 유난히 좋아하는 친정 식구들의 따뜻했던 한 그릇, 엄마 나이 두 살이 마주했던 혹독한 육아의 가운데에서 받아들었던 한 그릇이 새삼 떠오른다. 추억들을 돌돌 말아 입으로 넣으면, 따뜻해진 면발은 씹을 새도 없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깔끔한 멸치육수에는 육아의 노곤함을 잊게 해주는 마법의 조미료가 들어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음식의 이름이 왜 ‘잔치국수’인지 알 것만 같다. 먹는 모든 순간, 마음에 잔치가 일어나 근심과 걱정을 잊게 해준다. 먹는 순간만큼은 개운하고 풍요로워진다. 내게 잔치국수가 있어, 잔치를 치르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일상을 살아낼 수 있다.





오도독, 장소글쓰기 '광명시 소하동 국수집'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의 첫 비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